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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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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 9시30분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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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육십대 중반이라고 소개된 탈랜트 나한일씨가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짙고 검은 일자 눈썹에 무사의 강한 눈길을 가진 미남이었다. 그 시절 조폭의 중후한 보스급으로 나오던 모습과는 달리 몸이 많이 굼떠 진 것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인생의 어느 지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세요?”
 
프로그램 진행자가 물었다.
 
“하루의 시간으로 치면 저녁 아홉시 반쯤 된 것 같아요.”
 
“인생의 오후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연기자로 한참 잘 나갈 때 어떤 분이 연예기획사를 차리는 데 잠시 동안만 대표이사를 해 달라고 했어요. 연기와 운동만 하던 놈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앉았는데 얼마 있다가 제가 불법대출 혐의로 입건이 됐다고 하더라구요. 검사가 저보고 왜 ‘바지’노릇을 했느냐고 딱해 하더라구요. 제가 법적 책임만 뒤집어쓰는 속칭 바지사장으로 이용당했다는 거죠. 그때부터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렇게 십년을 보냈어요. 그렇다고 내가 불법대출 받았다는 돈 한 푼 눈으로 본 적이 없어요. 교도소에 있을 때 한 겨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교도소에서 귀휴를 줘서 나가 어머니 장사를 지내고 묘 앞에서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인 채 호송차를 타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이혼을 당했죠. 감옥의 독방 안에서 정말 앞이 깜깜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죠. 제 인생이 그랬어요. 그렇게 인생의 황혼이 다 가고 이제 밤이예요.”
 
“이제 어떻게 사실 건데요?”
 
“이제는 다른 데 휘말리지 말고 30년 만에 다시 만난 지금의 아내와 함께 남은시간을 한 톨 한 톨 아끼면서 살아야죠.”
 
그의 첫사랑이었던 여성이 그가 감옥에 왔을 때 면회 오게 되고 두 사람은 다시 결합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한 말 중에서 육십대 중반을 인생 오후 9시 30분쯤 된다고 표현했다. 나도 바로 그 나이였다. 아파트의 창문 밖으로 2018년의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20층 아래 도로 건너편의 교회 마당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은빛을 반짝이고 있다. 주변 내 또래의 친구들은 햇빛이 뜨거웠던 오후를 어떻게 보냈지? 하고 돌아본다. 높은 직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많은 돈을 벌어 번쩍번쩍 빛이 나는 성공을 거둔 경우도 많다. 정직과 성실로 정년퇴직할 때 까지 무사히 인생길을 완주한 친구들도 있었다.
 
인생의 오후 한창 무르익을 때는 남보다 사다리를 조금이라도 높이 올라가기 위해 경쟁을 하고 애를 썼는데 어느새 모두 사다리에서 내려와 어둠이 내리는 적막한 운동장에 모여 있는 것 같다. 성공과 실패 모두가 한 때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어릴 때 골목길에 나가 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열심히 딱지치기를 하고 구슬놀이도 했다. 딱지와 구슬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부자가 됐다고 좋아했다. 동네 여자아이들의 소꿉장 놀이에서 아빠가 되어 주기도 하고 인형을 자식이라고 하면서 안아주기도 했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엄마가 불렀다. 그만 놀고 들어와서 씻고 밥 먹고 자라고 했다. 어느새 그런 밤이 다가왔다.
 
햇빛이 밝던 낮을 나는 게으름과 타성에 젖어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인생을 주저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며 후회하지 않았는지 살펴본다. 어떤 시인은 이 세상에 산책을 와서 잘 놀다가 다시 하늘로 간다고 했는데 나는 어떻게 놀았는지 잘 모르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2-20 09:14   |  수정일 : 2018-12-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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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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