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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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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갈이배추 된장국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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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 by 조선DB
목요일 저녁 강남의 삼성역부근 메가박스 에서 아내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영화관이 들어있는 재벌의 쇼핑몰은 현란한 티지털 조명으로 번쩍거렸다. 먼지 한 점 없어 보이는 매끈한 상가들 끝에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 귀퉁이에 얼갈이배추를 쌓아놓고 앉아있는 노파를 보았다. 칠십대 중반에서 팔십대사이쯤되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햇볕에 탄 거무죽죽한 얼굴에는 고랑 같은 굵은 주름패여 있었다. 앞에 쌓아놓은 배추는 분위기상 전혀 팔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시든 배추들을 무겁게 끌고 도로가지고 갈 것 같았다.
 
“여보 저 할머니 배추 좀 사가지고 갑시다.”
 
옆의 아내도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톱니같이 바삐 돌아가는 도심의 귀퉁이에는 더러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 지하철 계단모퉁이에서 보자기를 깔고 더덕을 까는 노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쑥떡 몇 개를 팔아달라고 손을 내미는 노인, 다양한 늙은 사람들이 인생의 짙은 황혼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저녁 무렵에도 서초역의 화단 앞에 야채를 놓고 있는 노인을 보고 아내는 그걸 다 샀다. 무거운 걸 다시 가지고 어깨에 힘이 빠진 채 돌아가는 걸 보기 딱하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얼갈이배추를 앞에 수북이 쌓아놓고 있는 노파에게 물었다.
 
“할머니 이거 얼마예요?”
“이 천원에 전부 다 가져가요”
 
거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에서 랩에 깨끗하게 포장해서 파는 야채와 비교하면 몇십 분의 일 가격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반만 가져가면 안 될까? 무거운데”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할머니 이거 반만 주세요”
 
아내가 할머니한테 이천원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노파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큼직한 종이백에 얼갈이배추를 모두 채워 넣었다. 귀가 어두운지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분주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큰 양동이를 내놓고 배추를 가르고 깨끗이 씻어서 한동안 물에 불렸다가 그걸 다시 짜서 데쳤다. 멸치와 다진 마늘 다시마와 고춧가루를 푼 된장국물에 넣어 끓이면서 말했다.
 
“아이고 힘들어 이천원 어치 배추 사다가 이틀 동안 중노동을 하네.”
 
아내와 둘인 육십대 부부가 사는 집에서 한 솥이나 되는 된장국을 먹는 건 나의 의무였다. 아내가 나가고 오후 늦게 혼자 전기밥솥에서 밥을 푸고 얼가리 배추 된장국을 대접에 담아 전기레인지에 데웠다. 그 사이 텔레비전을 켰다. 내가 좋아하는 ‘심야식당’이라는 소박한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같은 직장에서 퇴근을 하는 젊은 남녀가 지하철역 앞을 지나가다가 그 앞에서 찐 옥수수를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를 보았다. 남자가 잠시 주춤하더니 발길을 돌려 옥수수를 샀다.
 
“옥수수 좋아해요?”
 
같이 있던 여자가 물었다.
 
“아니 그냥 마음이 짠해서----”
 
남자의 대답이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따뜻한 온기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산다는 게 그런 게 아닐까. 관념적인 거창한 구호보다는 따뜻한 곳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모인다. 생활 속의 작은 걸음들이 곧바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2-12 09:55   |  수정일 : 2018-12-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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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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