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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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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이 진실인데, 흰색과 검은색의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상식과 괴리된 판결, 공공서비스 차원에서 개선해야

글 | 김승열 변호사,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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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모습. 일러스트=이철원 조선일보 기자
법률을 공부하면서 필자가 제일 먼저 당황스럽게 느낀 이야기가 “법은 상식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일반인들 역시 당황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법이 상식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식에 기초하여야 한다”로 바꾸면 이제 누구나 공감하는 진리가 된다.
민법 제1조는 ‘민사에 관하여 법률의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리(條理) ’를 법률사전에서 찾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승인하는 공동생활의 원리인 도리(道理)이며 사회통념,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상식을 의미한다.
 
최근 “법은 상식이 아니다”를 넘어 “법은 상식에 기초하여야 한다”라는 문구에도 맞지 않는 듯한 사건들이 법조계 주변에서 일어났다. 사회가 일원화 되었던 과거와 달리 다원화, 다극화된 현대사회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상일지 모른다. 법은 ‘구체적 타당성’과 ‘거래의 안전 내지 법적 안정성’이라는 상반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기에 상식과 구별될 수 있다. 그러나 법이 상식과 너무 괴리되면 “법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하는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비근한 예로 회색이 진실인 경우 법은 그 자체 제약성 때문에 회색과는 동 떨어진 흰색과 검은색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민사사건은 승 또는 패, 형사사건에서는 유죄 혹은 무죄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과실비율’ 또는 ‘양형’이라는 조정변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적정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무죄가 애매하고 경미한 사건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특히 과거의 형법 조문이 현재의 행위를 생각하지 못한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조속한 입법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한데 이를 방치하거나 게을리하면 법과 상식의 괴리현상이 심각하게 발생한다.
 
과거 법조문이 예상하지 못한 행위와 관련한 사건을 배당받은 재판부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재판을 거부할 수 없다. 이 사건에 해당되는 적정한 법조문이 없어 무죄 판결을 내린다고 생각해 보라. 사회적인 비난에 재판부가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조문 중 관련성이 있는 항목이나 판례를 다소 무리하게 확대 적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형사법에서 이 같은 접근이, 만에 하나 이루어진다면, 심각한 위험성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적용 조문이 없어 입법기관인 국회에 공을 돌리거나 무죄 등을 선고할 경우 사회적 비난여론이 들끓을 것이다. 어떻게든 민심을 반영해 기소된 사건을 관련 조문에 따라 판결하기를 바랄지 모른다.
 
“유전무죄” 나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
 
이 경우 진실, 즉 ‘회색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배제될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억울한 나머지 재판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인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여부”에 대하여도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오로지 흰색이냐 검정색이냐를 판단하는데 집중하기에 그 다음 단계인 ‘입증정도’에 대한 판단은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고차원적인 이런 생각(입증정도)은 유무죄를 판단하는 2차원적인 생각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필자의 개인적인 이론적인 가설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실제 형사사건에서 그 입증의 정도 부분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주장은, 일부 형사 변호사에게 틀에 박힌, 교과서 문구 같은 취급을 당하고, 이를 주장하는 변호사는 ‘초짜’라는 비아냥을 당하기 십상이다. 쉽게 말해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무죄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물론 이는 형사법원칙에 반한다. 기본 원칙은 검사가 공소사실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과서적인 주장만으로는 무죄를 얻기 어렵고 또한 더 문제는 이의 결과가 좋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는 비난에 직면해 ‘괘씸죄’의 위험성에 노출하게 된다. 이 같은 현실은 피고인 입장에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고통스럽지만 당사자 외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무심하게 넘어갈 뿐이다.
 
물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에 대해 극렬하게 주장하면 세간의 관심을 끌 수도 있다. 더욱이 유명하거나 유능한 변호사가 강력하게 주장하면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연유로 ‘유전무죄’ 나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온다. 신약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어느 눈 먼 소경이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있는 힘껏 “내 눈을 뜨게 해달라”고 외쳤다. 주위 사람들이 시끄럽게 소리치지 말라고 야단을 하였으나 계속 소리쳤다. 마침내 지나가던 예수가 그를 발견하고서 “네 신앙이 너의 눈을 뜨게 하였다”며 치유한 대목이 생각난다. 소경이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예수는 소경를 그냥 지나쳤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소경은 평생 눈 먼 채로 비참하게 살았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판부가 일단 유무죄 판단을 내리면 그간 유무죄의 판단과정에서 고려했던 사항들은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폐기해 버린다. 그 다음 단계인 양형기준에 적시된 요소만을 추출해 찾아내고 적용 판단한 뒤 거의 기계적으로 양형을 적용한다. 이런 과정에서 내린 판결은 사안에 따라 상식과 너무나 괴리된 듯한 느낌을 갖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민사보다도 형사 사건에서 이 같은 현상 즉 상식과 너무 괴리된 판결이 양산되는 부분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원인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법정 형의 적정성, 입법적인 업데이트 필요, 특정 법조문의 무리한 확대해석, 기본 법원칙의 충실정도, 재판에 대한 적정한 통제제도의 완비여부, 재판소원의 필요여부, 사법절차적 기본권의 충실정도 등등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일반생활의 가치 기준은 다소 난해한 “법”보다 “상식”
 
이제 이 같은 왜곡현상을 계속 방치하거나 어찌할 수 없다고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본다. 전통적인 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체적인 분쟁해결 절차가 도입되고 나아가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온라인 분쟁해결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시대는 역설적으로 국민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다. 국가는 하나의 사회 인프라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좀 더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가기관 역시 과거의 관존민비가 아니라, 공공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역할과 서비스 품질을 제고할 때가 왔다.
법의 영역에서도 이제는 과거 귀족들만이 영위하는 독점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법소비자의 수요에 부응하는, 상식에 부합하는 사법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물론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소시민이 가지는 일반생활의 가치 기준은 다소 난해한 ‘법’보다 ‘상식’이다. 모든 법의 해석 및 집행 역시 적어도 상식에 기초하여야 소시민은 소속감과 평온함을 느낄 것이다. 법과 상식의 괴리정도가 너무 심각할 정도라면 공공서비스 제공자는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여야 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2-06 15:14   |  수정일 : 2018-12-0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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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 변호사,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KAIST 겸직 교수
⊙ 55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美 보스턴대 국제금융법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LL.M.
⊙ 사법시험 합격(24회), 환경부·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금융위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미국 뉴욕주 Paul, Weiss 변호사,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 산하 지식재산활용전문위원장 역임. 現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대한중재인협회 수석 부협회장(PRESIDENT EL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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