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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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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나비와 편지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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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년대 말 우이동의 한 허름한 집에 일곱 명의 소년이 모여 있었다. 한 남자한테 노래를 배우려고 모인 소년들이었다. 그 중 눈이 크고 해말싹 하게 생긴 아이가 그 옆의 서너살 많아 보이는 소년에게
 
“형, 학교에서 공부 못하지?”
“응, 나는 성적이 나빠. 그리고 공부하기도 싫어.”
 
잠시 후 나이가 어린 소년이 다시 물었다.
 
“형네 집 되게 가난하지?”
“맞어, 우리 집 아주 가난해. 나는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자랐어. 6.25때 아버지가 총 맞아 죽었어.”
 
“우리 집도 아주 가난해, 형. 우리 아버지는 국악인이야”
 
두 소년은 그 집에서 열심히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연습했다. 나이어린 소년이 어느 날 친해진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 우리가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지만 노래로는 한번 세상을 막 흔들어 놓자.”
“그러자”
 
두 소년은 눈빛을 마주쳤다. 몇 년 후 거리의 전파사 스피커 마다 남자듀엣 오니언스의 ‘편지’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가수 김정호의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의 ‘하얀 나비’가 허공에 너울을 일으키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두 소년은 가수가 되어 국민들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늦은 밤 잠 이 안 올 때 본 TV다큐멘터리 프로에서 가수인 임창제 씨가 하는 얘기였다. 1973년 대학입학 무렵이었다. 편지란 노래가 마음에 촉촉하게 물기를 고이게 했다. 통기타를 들도 청바지에 체크무늬셔츠를 입은 젊은 가수는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 속에서도 영원히 청년으로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눈덮인 얼어붙은 남한강가의 한적한 집 방을 빌려 혼자 고시공부를 하던 무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 김정호의 ‘하얀 나비’의 멜로디는 방안의 메마른 공기를 독특한 쓸쓸한 빛으로 채색하곤 했다.
 
한내지 슬픔의 결이 묻은 가수의 음성이 그대로 파동이 되어 나의 영혼을 흔들었다. 영원한 젊음일 것 같은 편지의 가수는 텔레비전화면 속에서 어느새 칠십 노인이 되었다. 어깨가 쳐지고 화면에 비친 걸음걸이에 힘이 없어 보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보고 노래로 세상을 한번 흔들어보자고 했던 김정호가 기타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한번은 새로 기타를 구했다고 하면서 어떻게 좋아하는지 몰라요. 그리고는 일주일 만에 죽었어요. 서른 세 살이던가? 폐결핵이면서도 목숨을 걸고 끝까지 노래를 불렀어요.”
 
그는 지금도 너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한다. 노인이 된 지금도 불러주는 무대에 달려가는 모습이었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끝까지 정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풋풋해 지는 것 같다. 흔들려도 마지막까지 걸어가는 거다.
 
비슷한 나이의 그를 보면서 상대적으로 나는 어떻게 살았나를 반성해 본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우리들은 경주마같이 인생트랙의 출발선을 박차고 뛰기 시작 했었다. 공부에 일등을 해야 판검사나 의사도 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목표를 설정 받았다.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고 뛰어야 했다. 나의 경우는 열심히 뛰던 어느 순간 나의 모습이 보였다. 능력이 없었다. 집념도 없었다. 최고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미 출발부터 정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내면의 어떤 존재가 경주트랙을 벗어나 초원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 존재는 내게 이렇게 가르쳤다. 삶은 심오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가치와 의미가 눈에 띄지 않는 초라한 곳에서 꽃을 피울 수도 있다고. 소년과 청년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모두 경주를 마치고 돌아와 허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주연역할을 맡은 친구들도 많았다.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고 인기와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인생무대의 공연이 끝나고 객석의 불이 켜졌다. 요즈음은 인생무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주연급을 하지 못하고 조역이나 단역이었더라도 최선을 다할 건데 하는 후회가 앞선다. 공부를 못하고 가난했더라도 ‘하얀 나비’와 ‘편지’로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흔든 그들이 가장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1-30 09:33   |  수정일 : 2018-11-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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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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