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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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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언니 은열의 회사생활 (7)]
최고의 처세, 교언영색

까칠언니의 한마디
하고 싶은 말, 내고 싶은 표정
굳이 숨기며 살기 싫다고?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

글 | 은열

“넌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제일 솔직해.”

언젠가 한 선배가 말했다(그것도 여러 번). 처음엔 그런가 했고 거푸 들었을 땐 칭찬인가 싶었다. ‘가식적이란 말보단 훨씬 듣기 좋네!’ 은근히 우쭐해 했던 것도 같다.


포커페이스가 되지 못해 슬픈 짐승

한참 후에 알았지만 제대로 헛다리였다. ‘감정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날 절반은 놀리려, 절반은 걱정하며 내린 평가였으니까. 굳이 구분하자면 칭찬보다 지적에 가깝달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내 얼굴은 포커페이스이길 극렬히 거부했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만큼 예외 없이 티가 났다.

학창 시절까진 그럭저럭 괜찮았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건 회사에 들어오면서였다. 조직의 일원이 된 후 만난 사람 중 내 ‘솔직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그것도 훅 들어오는 표정에서 읽어내는 일을 달가워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혹자는 신기해했고 혹자는 당혹스러워했다. 좀 친해지고 나선 (‘솔직함’의 당의정을 입혀 우회적 충고를 건넸던 선배처럼) 조심스레 우려를 표했다. “그렇게 읽히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판판이 네 손해야.” 대놓고 꾸짖는 이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몇몇은 내 ‘리트머스 표정’에서 “당신이 끔찍해요!”란 속마음을 읽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날 떠나갔다.

그런 반응을 접하는 내 심정은 다소 양가적이었다. 일면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괜히 부루퉁해지곤 했다. ‘그게 진심인 걸, 뭐. 어쩌라고!’ 꽤 고집스러웠던 소신을 바꾸게 된 계기는, 이번에도 역시 논어였다(논어에서 얻은 회사 생활의 첫 번째 깨달음은 이전 글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사이’에서 고백한 적이 있으니 참조하시길).


문질빈빈의 핵심은 ‘형식’의 재발견

논어 ‘옹야(雍也)’ 편에 ‘문질빈빈 연후군자(文質彬彬 然後君子)’란 표현이 나온다. 군자의 자질에 관한 공자의 생각이 집약된 이 것으로 ‘문(文)’은 ‘형식’을, ‘질(質)’은 ‘내용’을 각각 대표한다. 그 뜻을 넣어 해석하면 ‘꾸밈과 바탕이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 정도가 되려나. 하지만 이런 식의 풀이는 너무 뻔해 딱 ‘공자 말씀’ 같다. 아무런 울림이 없다.

그런데 이 말을 하나씩 뜯어 다시 들여다보면 새로운 단면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형식과 내용의 경중을 논할 때 은연중 후자를 더 중시한다. 더 나아가 본질이 진짜라면 겉으로 보이는 모양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생각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들었던 논어 수업에 따르면 문질빈빈의 하이라이트는 ‘형식도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에 있다. 제아무리 오랜 연인 사이라 해도 사랑하는 마음(質)은 굳이 말(文)로 해야 전해지고, 진심(質)이 어떻든 공적 자리에서 타인을 마주할 땐 낯빛(文)을 가지런히 하는 게 사회생활의 도리란 얘기다.

부정적 의미로만 통용돼온 사자성어 ‘교언영색(巧言令色)’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는 게 그날 강의의 핵심이었다. 남 듣기 좋게 말하고(巧言) 얼굴을 아름답게 꾸미는(令色) 데에만 정신이 팔려선 곤란하겠지만, 문질빈빈의 참뜻에 비춰볼 때 그런 노력 역시 엄연히 절반(文)을 차지하는 만큼 덮어놓고 폄하하는 건 옳지 않단 얘기였다.

깨달은 바가 컸다. 그날 이후 누굴 보든 늘 생글거리던 후배, 도통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했던 선배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도리 없이 나도 ‘궤도 수정’에 들어갔다. 수십 년간 방치해뒀던 표정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보기로 한 것이다. 요즘은 주름 잡히는 미간이 느껴질 때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이마를 편다. 출근 전 화장대 거울을 보며 입꼬리도 한 번씩 올려본다. 도무지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은 사람과는 대면(對面) 횟수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단,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뿜어져 나올 레이저를 의뭉스레 숨길 수 있을 때까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노력하면 안 될 게 없을지니!). 그런데 며칠 전, 내 ‘솔 메이트’를 자처하는 한 선배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귀엣말을 했다. “있지, 내가 요 며칠 두 사람한테서 자기에 대해 똑같은 얘길 연속으로 들었거든.

‘○○씨는 사석에선 한없이 친근하게 굴다가 다음 날 사무실에서 마주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무뚝뚝해지더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으이구, 표정 관리 좀 해.”

하긴, 문질빈빈이 그리 쉽게 되는 거였으면 세상 사람 전부 벌써 군자 됐지. 나도 아직 멀었다.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1-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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