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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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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거절하는 세상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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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감옥으로 간단한 글을 보냈다. 책을 그 도서관에 선물로 보낼 테니까 받아주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변호사로 평생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돈으로 밥을 먹고 아이들을 키웠다. 생업을 마감할 무렵인 지금 얼마라도 신세를 갚고 싶었다. 책을 선물로 보내기로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감옥 안에서도 저마다 시각이 달랐다. 어떤 사람은 하늘의 별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바닥에 괴어있는 웅덩이의 진 흙탕물을 봤다. 영혼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신적 양식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몇 달 전이었다. 나이 칠십의 잘 아는 노인이 감옥체험을 했다면서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서민아파트의 구석방에서 나 홀로 잡지를 하는 괴짜였다. 수사기관에서 외면하는 아파트의 비리들을 글로 써서 집집마다 찾아가 우편함에 넣었다. 그에게 명예훼손죄로 벌금 30만원이 선고됐다. 그는 돈 대신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그가 내게 한 감옥여행의 내용은 이랬다.

“토요일 오후에 구치소 담 안으로 들어가 신체검사를 하고 수의와 신발을 받아 감방에 들어갔어요. 죄수 몇 사람이 있더라구요. 그중 한 사람이 내게 바둑을 둘 줄 아느냐고 하면서 종이로 만든 바둑판을 펼치더라구요. 계속 바둑을 뒀죠. 끼니때가 되면 음식이 나오는데 닭고기도 나오고 돼지고기 반찬도 나왔어요. 밥을 먹고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한 후 빈 시간에는 책을 읽었죠. 거기 있는 책들을 보니까 무협지 같은 게 많고 좋은 책들은 별로 없더라구요. 그렇게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 새벽 네 시 쯤 됐는데 교도관이 나보고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아침이나 먹고 나가자고 했더니 안 된대요. 빨리 가래요. 그래서 나왔어요. 책을 읽는 정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들어가도 별로 힘들지 않겠더라구요. 그리고 하루 일당 십만원으로 쳐주는 데 그게 어딥니까?”

그의 말을 들으면서 감옥이야 말로 독서당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핸드폰이나 인터넷을 못하니까 진지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기도하고 불교에서는 선정에 들지만 유교에서는 책을 읽는 게 수도의 방법이다. 변호사생활을 30년이 넘게 하면서 듣고 본 체험들을 직접 써서 책으로 만든 것들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그걸 사서 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출판사도 좋고 그들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굳이 그렇게 돈을 쓰려고 마음먹은 동기가 있었다. 이혼소송을 맡긴 여인이 있었다. 어느 시점부터 그녀는 자신의 변호사인 내가 소송상대방인 남편에게 돈을 먹고 자기를 불리하게 한다고 의심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편집증을 가진 그녀의 뇌리에 내 말은 들어가지 않았다. 워낙 확신을 가지고 집요하게 덤벼드니까 법관들도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 증오의 화살이 자기들에게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것 같기도 했다. 법관들은 내게 책임을 지우는 어정쩡한 판결을 내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판결 선고를 앞두고 나는 악한 그녀에게 돈을 빼앗기느니 하나님께 돈을 바치겠다고 기도했다. 그 돈만큼 책을 감옥에 보내기로 마음먹은 배경이었다. 그러나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교도소 담당자들의 연락을 받은 사무실의 여직원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 교도소에서 어떤 책을 몇 권을 보낼지 써서 신청을 하라고 하네요. 그러면 자기네가 받을지 안 받을지 심사를 하겠다고 하네요.”
 
선의가 저울대에 올려지는 느낌이었다. 여직원이 말을 계속했다.

“또 어떤 교도소는 변호사님이 직접 만든 책을 넣으면 자기광고가 될 수도 있으니까 받기가 곤란하다고 하네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의 생업을 그만두는 마당에 내가 무슨 광고가 필요한 것일까. 속으로 픽 웃었다. 여직원이 덧붙였다.

“서울 근교의 구치소는 마음만 받겠다고 말하면서 거절했어요. 그리고 보니까 지방에 외떨어진 교도소 한두 군데만 감사하게 받겠다고 하고 나머지는 모두 거절하는 것 같아요.”
어느새 따뜻해지려고 했던 내 마음은 찬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이 서늘해졌다. 순수한 성의도 그들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것 같았다. 차고 넘치는 세상인가? 어쩌다 선한 마음이 들어도 실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1-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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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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