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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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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기꺼움.

까칠언니 은열의 회사생활 (4)

까칠언니의 한마디
탄탄대로이기만 한 회사생활 같은 건 없다.
삶의 지혜는 구불구불, 제멋대로 난 길을 헤치고 가야 비로소 ‘득템’할 수 있다.

글 | 은열

“저는요, 요즘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 몸부림을 치거든요. 선배님은 그러셨던 적 없어요?” C는 식어가는 피자를 한입 베어 물더니 한숨을 쉬었다. 처음 만났을 때 대학생이었던 C는 3년 전 한 외국계 기업 법무팀에 입사했고 지독한 ‘3년 차 직장인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이런저런 말을 두서없이 지껄이다 C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나 무슨 수로 여태껏 버텼지?’

1999년 2월,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냈다. 당시 이미 꽤 견실한 중견기업 홍보팀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동기들이 취업 시장에서 휘청거릴 때 비교적 순탄하게 구한 첫 직장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도통 재미가 없는 거다. 두어 달 버텨봤지만 허사였다. 일을 호구지책으로만 여기기에는 당시의 난 너무 젊고 피가 뜨거웠다. 딱 석 달 버티고 사표를 던졌다. 월급이 70%만 나오는 수습 기간의 마지막 날이었다. “개중 좀 오래 다닐 것 같아 뽑았더니만, 그것참.” 인사하고 돌아 나오는데 담당 임원이 뒤통수에 비수를 꽂았다. ‘그래, 그런 이유로 내가 선택된 거라면 더더욱 나가자!’ 후임자가 뽑힐 때까지 한 달을 더 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챙겼다.

거기까진 좋았다. 부모님께 받던 용돈은 취직과 동시에 끊긴 지 오래. 취업의 환희에 취해 앞일 생각 않고 부린 호기 덕에 통장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사흘에 한 번꼴로 입사 지원서를 썼지만 절반은 서류 전형에서조차 미끄러졌다. 어찌어찌 필기시험까지, 아니 기적처럼 면접까지 가도 그뿐이었다. ‘귀하는 매우 우수한 인재이지만…’으로 시작하는 탈락 통보 메일의 ‘자존감 어택’은 꽤 막강해서 그걸 받아든 날이면 으레 시름시름 앓았다. 하루는 학교 도서관에 가려고 짐을 싸다 차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리가 없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함께 자취하던 대학생 동생에게서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빌려 나오는 길, 정신이 퍼뜩 들었다. ‘더는 이렇겐 못 살아!’ 다행히 두 달쯤 후 신문사에 입사하며 배고프고 서러웠던 5개월간의 ‘백수 라이프’에 마침표를 찍었다.


끊임없는 결핍이 선물해준 ‘일 내공’

〈“예전에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피곤했는데.” 어느 아침 출근하는 언니가 현관문을 나서며 그랬다. 입사한 지 1년 하고도 몇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요즘은 아침이면 막 설렌다. 오늘 하루는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 멋있는 프로페셔널이 되어가는 중이다, 언니는.〉

2001년 봄, 내가 다니던 회사 사보에 동생이 이런 글을 기고했다. (빙고! ‘한심한 백수 언니’에게 선뜻 1000원을 빌려준 그 동생이다) ‘가족의 입을 통해 보는 우리 회사 사우’란 콘셉트로 연재 중이던 꼭지의 필진 섭외에 부서 막내였던 내가 당첨돼 동생에게 떠안기듯 맡긴 원고였다. 동생이 워낙 글을 ‘잘’ 써준 덕에 그전까지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회사 어른들의 알은척에 꽤 시달렸다.

만약 이 얘기가 16부작 TV 미니시리즈라면 난 이쯤에서 ‘페이드아웃(fade-out)’ 돼 어딘가에서 줄곧 멋있는 프로페셔널로 승승장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이후로도 난 끊임없이 넘어지고 주저앉았다. 여자 동기의 모진 텃세를 못 이기고 고향 부모님께 전화해 “회사 그만두면 안 되느냐”며 징징댔고, 새로 옮겨 간 팀에선 “다른 동료들과 이력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구박을 받았다. 발제한 아이템을 뭉개는 편집장 때문에 속앓이한 적도 여러 번. 머리가 좀 큰 후엔 내 맘 같지 않은 후배들을 건사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 퇴근 후 캄캄한 방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곤 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지난했던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결핍, 그리고 ‘어떻게든 그 상태를 벗어나 보려는’ 발버둥이었다. 도서관 가는 버스 요금 따위 걱정하지 않아도 됐더라면, 텃세 부리는 동기가 없었더라면, 어딜 가든 사랑받는 후배였더라면, 뭘 써도 칭찬받는 기자였더라면….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순간순간 날 못살게 굴었던 사건사고, 날 위축시켰던 에피소드가 나이테처럼 차곡차곡 쌓여 나의 오늘을 만든 셈이다.


세상 숭고한 말 ‘내 힘으로 돈 벌기’

자신의 힘으로, 쉼 없이 돈을 번 경험은 꽤 힘이 세다.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먹고 싶은 걸 먹거나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건 기본. 돈으로 마음을 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되는 건 큰 편리다. 시간을 볼모로 잡혀 살아야 하니 시간을 귀히 여기게 되고, 건강을 놓치면 출퇴근은 언감생심인 만큼 ‘내 몸’에 투자할 줄도 안다. 요컨대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내 경우, 정말 좋았던 게 하나 더 있다. 부모님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이해하게 된 것이다. 돈을 벌어보지 않았다면 노상 두 분을 원망하며 살 뻔했다. 왜 내 용돈은 이것밖에 안 될까, 왜 엄마는 만날 싸구려 소시지와 흠집 있는 과일만 사줄까, 나도 유명 브랜드 청바지 입고 싶은데…. 월급 받아 써보고야 알았다. 내 부모님은 기껏해야 지금 내 나이, 아니 그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부모가 돼 제 한 몸 건사하기조차 부족한 돈으로 자식들까지 살뜰하게 키워냈다는 사실을.

언젠가 김훈의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으며 제목의 절묘함에 감탄한 적이 있다. 백번 맞는 말이다. 세상에 밥벌이처럼 지겨운 게 또 있을까. 하지만 막상 뛰어들어 해보니 마냥 지겹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지겨움을 감수하더라도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의 어법을 살짝 빌리면 밥벌이는 “각론으로 보면 지겨운 것, 총론으로 보면 기꺼운 것”쯤 되려나. 다음에 C를 만나면 이 얘길 꼭 들려줘야겠다.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8-27 09:50   |  수정일 : 2018-08-2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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