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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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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변성과 대체성 ... 이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 | 김주덕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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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본질을 모르고 사랑의 영역에 뛰어든다. 여름밤의 불나방 같다. 실연을 당해 상처를 입고, 자기 할 일을 하지 못한다.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 부모와 사이도 나빠지고, 결혼생활도 불행해진다.
 
처음에는 가장 이상적인 커플이라고 자랑하다가, 몇 년이 되지 않아 파경에 이른다. 그래서 이혼율이 엄청나게 높은 사회가 되었다.
 
이혼을 하지 않더라도 남남처럼 살아가는 부부도 많다. 자녀 때문에,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이혼을 하지 않을 뿐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 성적 모랄, 성의식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세상에는 혼자 하는 사랑도 많다. 부모에 대한 효도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질이 일방적이다. 부모가 바람이나 피고, 술주정뱅이로 살아도 효자인 아들은 극진히 부모를 사랑하고 부양한다.
 
자식 사랑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못난 자식, 깡패로 감방에나 들락날락거리고 돈은 벌지 못해도 그런 자식을 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여전히 부모의 몫이다.
 
재벌집 아들인 남편이 숱한 여자와 연애를 하고 자신을 무시해도 오직 남편만을 바라보고 사는 젊은 부인의 사랑도 혼자 하는 사랑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은 반드시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적이며, 두 사람의 조화와 합치가 중요하다. 서로 조건이 맞아야 하고, 순수해야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속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랑의 가변성과 대체성이다. 사랑할 때 대부분 ‘영원히 사랑하자’고 다짐한다. 결혼할 때도 모든 부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을 맹세하고 언약한다.
 
그러나 사랑은 가변성(可變性)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많은 사랑이 변하고, 변질된다. 그것을 사랑의 배신이라고 한다. 물론 애정이 식고 소원해져도 참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사람 싫은 꼴은 못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헤어지거나 이혼을 하게 된다.
 
지금은 좋아도 더 좋은 이성이 나타나면 그에게 사랑이 옮겨진다. 이런 가변성을 모르거나,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의처증, 의부증의 질환 증세를 보인다. 결혼생활은 파탄나고, 방황하다가 불행해진다.
 
가변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가 변할 수 있고, 나 자신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변하지 않도록 더 잘 해주고, 더 관심을 가지며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
 
나 자신이 변하지 않도록 스스로 근신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성에 한눈을 팔지 않고, 배우자가 실망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배우자가 바람 피지 못하도록 감시자 역할이나 하고 있으면, 상대는 더욱 환멸을 느끼고 정이 떨어지는 것이다.
 
사랑의 대체성이란 사랑은 언제나 다른 사랑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정말 애절한 연애를 하다가 다른 이성을 만나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배우자가 사망하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한다. 이혼을 하고 나서 또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하는 것이다. 재혼시장이 성업을 이루는 이유다.
 
대체성을 인정하는 것은, ‘현재의 사랑 아니면 내가 죽을 것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런 인식을 하면, 짝사랑하다가 스토커로 몰리지도 않고, 애인이 변심했다고 칼로 찌르지도 않는다. 배우자가 사망했다고 남은 자녀들과 동반자살하지도 않는다.
 
대체성에 대한 자각은 애인과 결혼하겠다고 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부모와 원수가 되지 않는다. ‘꼭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 때문에 가족들의 반대해도 할 수 없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다.’는 식으로 배우자를 잘못 선택하고, 평생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창녀촌에서 빚을 갚아주고 빼내어 결혼하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다.
 
대체성을 믿는 것은, 이혼할 때도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도록 해 준다. 서로 안 맞아 이혼소송을 당했는데, ‘나는 이혼 당할 사유가 없다. 죽어도 이혼해주지 않겠다.’면서 대법원까지 가지도 않는다.
 
대체성을 생각하면, 평소에 상대에게 더 잘 해주게 된다. ‘꼭 나 아니어도 상대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인식은 곧 상대가 변하지 않도록 더 노력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 날 사랑의 개념이 흔들리고, 결혼문화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수많은 연애와 성관계를 경험한 다음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들, 심지어 동거와 낙태를 반복하다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결혼하는 사람들, 결혼하고도 끝없이 바람을 피면서 쉽게 이혼하는 사람들, 성적 일탈로 인해 한 순간 추락하는 고위 공직자, 연예인들...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랑의 파탄, 변질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달라져야 할 때다.
 
사랑의 가변성과 대체성을 제대로 인식하면, 사랑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서로 약하고 불쌍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보다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헤어짐도 줄이고 이혼도 막을 수 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5-04 08:30   |  수정일 : 2018-05-0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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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김주덕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했음
Seoul National University에서 법학과 졸업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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