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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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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이 자유에 우선할 때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폭정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글 |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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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자유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혁명은 폭력과 피로 얼룩지고 군사전제로 끝났지만, 미국은 달랐다.

정치사상사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가 늘 지금과 같이 긍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발상지로 알려진 아테네의 철학자 플라톤은 각 정치체제의 수준은 지배자의 수준과 일치하며, 지배자의 수준은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이상 국가는 ‘올바름’(正義; dikaiosyne) 혹은 ‘훌륭함’(德; arete)을 추구하는 현자(philosopher king)가 지배하는 국가이다.
 
그런데 ‘현자’와 보통사람인 ‘민중’(demos)은 서로 배타적 부류이기 때문에 보통사람이 지배하는 민주정체는 결코 바람직한 정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민중의 ‘평등에 대한 욕구’가 민주주의를 탄생시키지만 그 앞에는 ‘다수에 의한 폭정’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1)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키아벨리(N. Machiavelli)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2).
 
다수에 의한 폭정
 
알렉시스 드 토크빌(Tocqueville)은 『미국의 민주주의』3)에서 다음과 같은 펜실바니아 한 주민과의 대화를 소개한다.

“오늘 아침 투표장에서는 왜 단 한 사람의 흑인도 눈에 띄지 않았을까요?”
“그 것은 법률 탓이 아닙니다. 흑인들도 분명 투표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나타나기를 삼가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상당히 근신을 하는 것이군요.”  
“그렇지요. 사실은 그들도 투표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쁜 처우를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이 나라에서는 때로 다수의 지지 없이는 법률이 그 권위를 지킬 수 없지요. 그런데 이 경우에는 다수가 흑인들에 대해서 강렬한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법률에 근거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경우 관리들은 그들을 보호할 수 없지요.”
"그렇다면 다수는 법률을 만드는 권리 뿐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법률을 깨뜨릴 권리까지도 요구하는 것이군요.”
 
관리들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미국의 시민은 흑인만이 아니었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에 반대 입장을 취한 볼티모어 한 신문의 언론인들에 대한 전쟁 지지 군중들의 린치로 그 중 한 명이 피살되고 범인들은 배심원들에 의해 사면되는 사건도 소개했다.
 
이 두 사례를 통해 토크빌은 다수의 폭정이 얼마나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 이래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다수에 의한 폭정이 19세기 당시4)로는 민주주의를 가장 발전시킨 미국에서도 똑 같은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경고였다.
 
평등 열정이 위험한 이유
 
그러나 이 같은 경고보다 더 중요한 토크빌의 공헌은 다수에 의한 폭정에 이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위험요소가, 플라톤과 마키아벨리도 간과한, 평등주의라는 그의 통찰이다. 사실 대중은 평등주의의 위험에 대해 무지하다.
 
현재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는 평등주의에 대한 논의도 그 핵심을 벗어나 겉돌고 있다. 분배정의로 포장한 재벌 때리기, 상생이란 미명으로 행해지는 시장경쟁질서 파괴, 집권세력 지지층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한 퍼주기 복지정책, 특정 계층을 겨냥한 부동산 정책, 교육평준화, 전투적 노조중심의 노사관계 등 평등주의에 뿌리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 경제적 효율성 차원의 비판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평등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경제적 비효율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체제 그 자체에 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찍이 토크빌이 지적했듯이 “주의력이 깊고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평등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위험을 인식할 수 있다는데”5)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보통 그것을 지적하는 것을 회피한다.  왜냐하면 자유 평등 박애라는 혁명구호에서 드러나듯이 평등도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평등주의를 위험시한다고 해서 토크빌을 反평등주의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평등원칙의 점진적인 전개는 섭리와 같은 것”6) 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던 평등 주의자였다.  “내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나의 관심을 끈 신기한 일들 가운데 국민들 사이의 생활상태의 전반적인 평등만큼 강렬하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없다. 이 기본적인 사실이 사회의 모든 과정에 작용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나는 단시일 안에 발견했다”라고 서론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미국에서의 민주주의 성공의 전제조건이 다름 아닌 조건의 평등이었음을 강조한다.
 
평등주의를 실험한 나라
 
자유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혁명은 폭력과 피로 얼룩지고 군사전제로 끝났다.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그 진로를 방해받았고 무궤도한 정열에 휘둘려서 그 길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뒤집어엎었고 파괴하지 않고 남긴 것은 모두 흔들어놓았다”7)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그 혁명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수행했다. 혁명 자체를 거치지 않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혁명의 열매를 이 나라는 거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알맞을 것이다”8)라고 했다.
 
왜?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미국을 연구했고, 해답을 찾았다. 그는 프랑스혁명에서의 자유주의 후퇴의 원인이 다름 아닌 혁명정신 평등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나로서 무질서상태는 민주시대에 두려워해야 할 첫 번째의 해악이 못되고 가장 하찮은 해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평등의 원리는 두 가지 경향을 야기하는데, 그 하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곧바로 독립상태로 이끌면서 무질서상태로 몰아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상태에의 길을 열어놓게 되기 때문인데, 이 노예상태에의 길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 모르게 나타나는 것이긴 하지만 확실한 것이다.
 
국민이 전자의 경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이에 저항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향에 대해서는 그것을 인식조차 못하고서 끌려가게 된다고”9) 했다. 사실 플라톤은, 토크빌과는 달리, 이 전자의 경향이 민주주의를 참주정체로 이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혁명구호와 같이 대중은 자유 속에서의 평등을 원했다. 민주주의가 일단 평등과 자유를 주면 그들은 평등에 더 집착한다. “평등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열렬하고 탐욕스러우며 지칠 줄 모르며 제어할 수 없다. 그들은 자유 속에서의 평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을 획득할 수 없을 때는 노예상태에서의 평등마저 요구한다. 그들은 빈곤과 노예상태와 야만 상태는 참고 견딘다. 그러나 그들은 귀족주의는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10)
 
이제 남은 수순은 이 같은 대중의 평등에 대한 열정을 이용할 정치인 독재자의 등장이다. 독재자는 평등하기만 하다면 노예상태도 마다 않는 대중의 평등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기만 하면 된다. 토크빌은 자신의 예언대로 루이 보나파르트의 제2제정 출현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20세기에도 러시아의 볼쉐비키 혁명에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에서, 중국의 마오이즘에서,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에서 계속 실현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에서 평등이 자유에 우선할 때,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폭정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180년 전 토크빌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대한민국에서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각주
 
1)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1997, 서광사), 536-561쪽.
2)N. Machiavelli, Discourses on the First Decade of Titus Livius, Translated by Ninian Hill Thomson, 1883. (The Project Gutenberg EBook, 2004), Book 1, Ch.2.
3)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임효선, 박지동 옮김), 1997, 한길사. 제15장 합중국에 있어서 다수의 무제한한 권력과 그 결과 (339쪽).
4)토크빌이 미국에 체류한 시기는 1831년 5월에서 1832년 3월이다.
5)상게서, 665쪽
6)상게서, 63쪽
7)상게서, 69쪽
8)상게서, 71쪽
9)상게서, 859쪽
10) 상게서, 667쪽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5-01 09:26   |  수정일 : 2018-05-0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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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태  ( 2018-05-01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4
대한민국은 지역주의가 나라를 망치고있으며 그기에 편성한 정치가들의 교묘한 술수에 온국민이 놀아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호남이 나라를 망치고있다. 대중이는 호남사람이고 무현이와 재인이는 사실상 영남사람이 아니면서도 마치 영남사람인체하면서 멍청한 영남사람표를 가져가면서 대중이 밑에서 정치하면서 호남의 민심을 얻어 대통령이 돼어서 호남사람 비위 맞추려 온갖 정치적 배려를 호남에 퍼붓고 있다. 호남은 99% 단결하여 표를 던지지만 멍청한 영남 사람은 사분오열의 표를 던지고있다. 결국 호남이 나라를 망치고있으며 영남 사람은 바보 멍청이일 뿐이다.
쉽게풀이  ( 2018-05-02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1
총 100명의 유권자가 있다하자. 그중에 20명은 똘똘뭉쳐서 1사람만을 지지하고, 나머지 80명은, 제잘난 맛에 사는 헛똑똑이들에게 많게는 19명이 지지하고 적게는 1명도 지지하지 않는 현상이 지금도 이 서울과 한국을 지배하고 있지 안는가? 20명의 똘똘뭉친자들에게 지지받아 민주주의꽃(다수결)이라는 미명하에 권좌에오른 위정자들은 그 지지자들에게 돈되고 명예되는 좋은자리 뿔뿔이 나눠주고, 나아가 지지하지 않던 80명의 몫까지 빼앗아 20명에게 보너스로 나눠주는 현상을 못보고 있냐? 욕할 사람 하나도 없다. 자업자득 이니라. 아미타불∼∼∼아∼∼∼멘! 계속 널리 흩어질 지어다, 콩가루처럼 미세먼지처럼 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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