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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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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판 세월호 사건, 그들은 왜 에스토니아를 인양하지 않았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관할국인 스웨덴은, 부패한 시신(屍身)을 보여주는 데 반대하는 여론도 있고 경비도 엄청나 침몰된 배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덮어버리고, 선박의 접근 금지 수역(水域)으로 설정했다.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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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호 / 위키백과

발틱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 선사(船社) 소속의 The Estonia(에스토니아)호 침몰 사건은 1994년 9월28일 발틱해에서 일어났다. 자체무게가 2800톤이고 길이 156, 너비 28미터의 페리船(선)이었다. 무게는 작지만 크기는 세월호와 비슷하였다. 803명의 승객과 186명의 선원을 합쳐서 989명이 승선했다. 배는 9월27일 저녁 7시에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출발,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배는 화물을 적재 허용량까지 가득 실었다.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항해했는데, 화물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거셌다. 초속 15~25 미터에 파고(波高)는 4~6 미터나 되었지만 출항 금지를 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페리들도 항해를 하고 있었다. 발틱海는 늘 2000척 정도의 배가 떠 있는 분주한 곳이다.

새벽 1시쯤 금속이 선수(船首)의 문을 치는 소리가 났다. 10분 동안 소리가 계속 나더니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선수 쪽 문이 열리고 물이 들어와 자동차가 주차해 있던 갑판을 덮었다. 1시15분, 배는 처음엔 오른쪽으로 30~40도 기울었다가, 1시30분엔 90도로 기울었다. 에스토니아호는 왼쪽으로 돌다가 네 개의 엔진이 꺼지면서 멈추었다.
 
1시20분, 선내(船內) 방송으로 여자 목소리가 “비상, 비상, 비상”이라고 소리쳤다. 선원들에게도 비상벨이 울리고, 구명정을 타라는 경보도 울렸다. 배가 너무 기울어 승선자들은 구명정이 있는 갑판으로 올라가기 힘들었다. 이것도 세월호와 비슷한 점이다.

1시22분, 선원이 구조신호를 발신했다. 너무 서둘렀는지 국제구조 신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에스토니아호는 발틱해를 항해하는 실자 유로파 호를 불렀다. 에스토니아호는, ‘메이데이(긴급상황)’라고 했다. 유로파 호의 1등 항해사는 영어로 “에스토니아, 긴급상황인가?”라고 되물었다. 에스토니아호의 교신자가 바뀌더니 핀란드 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상황설명을 하다가 정전으로 교신이 끊어졌다. 정확한 위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자 에스토니아호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에스토니아호는 1시50분에 다른 선박의 레이다에서 사라졌다. 수심은 약 80미터. 기울기 시작한 지 약 한 시간 만에 전복, 침몰한 것이다. 
 
에스토니아호가 침몰한 지 22분이 지난 2시12분에 마리엘라호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 배는 구명벌을 바다로 던졌다. 에스토니아호의 구명벌에 타고 있던 탈출자 13명이 던져진 구명벌에 옮겨탔다. 이들은 다른 탈출자들이 탄 구명벌이 어디 있는지를 알렸다. 마리엘라호는 에스토니아호 탈출자들이 탄 구명벌이 떠 있는 위치를 스웨덴과 핀란드 헬리콥터들에 알렸다. 스웨덴 헬기는 승선객들이 탈출을 시작한 지 90분 뒤에 날아와 생존자들을 육지로 옮겼다(세월호의 경우는 신고를 받고 30분 만에 해경 헬기가 도착했다). 핀란드 헬기 두 대는 구조하러 온 다른 페리호에 내렸다. 한밤중에 아주 위험한 착륙이었다. 이 헬기는 44명을 구조했다. 이사벨라호는 구조 슬라이드를 내려 16명을 살렸다.
 
989명의 승선자중 137명이 구조되었다. 그 중 한 명은 나중에 병원에서 죽었다. 배가 건진 이들이 34명, 헬기가 구조한 인원은 104명. 852명이 죽었는데, 93구(軀)의 시신은 33일 안에 수습되었다. 배를 탈출한 이들중 반이 구조되었다. 상당수는  헬기가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저(低)체온증으로 죽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수온은 맹골수로와 비슷한 섭씨 10~11도였다. 젊은 남자들이 많이 살았다. 55세 이상 중엔 7명만 살았다. 12세 이하에선 한 명도 없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310명의 승선자들이 외부 갑판으로 올라왔으며, 그중 160명은 구명벌과 구명정에 탔다고 계산하였다. 이들이 주로 구조된 것이다. 757명의 실종자 중 650명은 배 안에 갇힌 것으로 추정되었다. 세월호도 그러했지만 배가 급하게 기울면 배 안에서 이동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고의 主원인은, 선수에 있는 門의 잠금장치가 파도를 맞고 이탈하면서 문이 열려 물이 주차 공간 안으로 들어와 배를 기울게 하였다는 점으로 확인되었다. 문에 이상이 생겨도 조타실(브릿지)에선 육안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구조였다. 선원들은 비상벨을 너무 늦게 눌렀다. 승객들을 제대로 인도하지도 못했다. 페리의 주차 데크로 일단 물이 들어오면 물이 표면을 쓸고 다니면서 배의 복원성을 약화시킨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침몰한 에스토니아 호를 인양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관할국인 스웨덴은, 부패한 시신(屍身)을 보여주는 데 반대하는 여론도 있고 경비도 엄청나 침몰된 배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덮어버리고, 선박의 접근 금지 水域(수역)으로 설정했다.
수년 전 독일 함부르그의 유체역학(力學) 연구소와 함부르그 기술대학의 연구팀은 에스토니아호의 침몰 과정을 시뮬레이션 방법으로 연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스토니아호의 승선자들은 약 40분간의 탈출 가능 시간대가 있었다. 선수 문짝이 떨어져 나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서 전복될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국제해사(海事)기구의 규정대로라면 선실(船室)에서 갑판으로 다 나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실은 그러지 못하여 실험 결과는 승선자 989명중 278명만이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 했다. 그 이유는 배가 일단 기울면 탈출로는 사람이 이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경사가 급해진다든지 쏟아져 내린 물건이 막는다든지 하는 이유에서였다. 넘어가는 선체(船體)에선 구명정을 제대로 내릴 수가 없음도 확인되었다. 기울어져가는 에스토니아號는 일종의 관(棺)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월호에서 많은 승선자들이 갑판으로 나올 수 없었던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4-16 16:17   |  수정일 : 2018-04-1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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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月刊朝鮮>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 傳記》(全13권)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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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점  ( 2018-04-22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1
우선은 백성들의 상당 숫자가 눈물만 보면 훅 가야하고(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 입니까? 찔끔), 대통령 되는데 이용할 만한 정치적이유가 충분한 조화를 이루지 않는한은 나머지 사건사고들은 non of my business란 조통수.
만약에 지금 세월호의 10배이상의 동종사고가 나봐라, 어느 개미새끼 한마리 누시깔 한번 꿈뻑이라도 하나.
김효태  ( 2018-04-17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2
세월호 사건은 처참한 비극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 비극적인 사건은 문재인 정부 출범후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다른점은 무슨일만 있으면 꼬투리를잡아 정권을 뒤집을려는 온갖 좌파세력이 총동원하여 온갖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국민을 흥분하게하고 정치적 선동의 장으로 만들어나간것이 주원인이다. 인간이 존엄한 인격체인것은 혼과 영이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음을 맞이하면 시체는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3일이면 다 화장을하고 해군은 바다에서 사망하면 수장을 한다. 그 참혹한 시체를 계속 온국민이 생각하게하여 무려 4년 동안을 국민을 흥분하게하여 정권타도에 구실로 삼은 것이다. 세월호사건이 마무리되면 또 무엇으로 국민을 선동하려는지 나라를 뿌리체 흔드는 좌파세력이 진정 무섭고 두렵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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