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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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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했다고?··· 현대사 최대의 거짓말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했는가』를 읽고

글 | 여명 前자유한국당 혁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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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시대와 노동자의 화해, 그리고 노동자의 존尊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은 시대에 대해 막연한 환상과 공포를 갖고 있다. 박정희 시대(1961-1979)도 그런 경우다. 누구는 시대의 영웅이자 국민의 아버지였다며 추앙하는 한편 다른 누구는 희대의 독재자이자 냉혈한이였다고 손가락질한다. 신기한 사실은 다음이다. 전자의 경우 (대개) 지난 70여년간 대한민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맞부딫히며 살아낸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할아버지·할머니)로 대표되는 세대이다. 후자의 경우 민주화 세력으로 묶여지는 이른바 386세대이며 식자층에 해당한다.
 
문제는 20·30세대이다. 미덕보다는 공포의 힘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탓일까. 청년 세대에게 박정희 통치 기간은 어둠의 시대이자 착취의 공간이었다. 아마도 이른바 노동 시인 박노해(가명. 박노해는 '노동해방'의 줄임말이다.)의 ‘공장 옆 절단된 손무덤’ 이니, 전태일의 분신사건을 다룬 영화이니 하는 것들이 청년들이 상상하는 회색빛 박정희 시대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대를 경험해보지 않았으므로.
 
연세대 류석춘 교수의『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했는가』(2018. 기파랑)는 청년들이 갖고 있는 박정희에 대한 여러 막연한 오해 중 하나인 '착취설' 에 대해,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그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책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선 착취의 개념을 정의하고 좌익 운동가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 에 의거하여 1960년대 청계천 봉제 노동자들이 받던 임금상승률에 대해 분석한다.
 
그리고 1970년대 대거 육성되어 우리나라 중산층을 형성하고 있는 기능공의 연원과 계층이동 실태를 밝힌다. 뒷장에서는 박정희 시대에 탄생한 숙련노동자들이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를 어떻게 끌고 왔고 또 어떻게 왜곡시켰는지를 서술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했는가? 그렇다면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명절 휴가철마다 인천공항을 가득 메우는 해외여행 행렬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은 10대-20대 여성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무궁무진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제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는 그렇지 못했다. 농업국가였던 당시 한국의 처녀들은 농사일을 돕다가 시집을가서 또 농사일을 가업으로서 이어가는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 판에 박힌 삶을 피해, 또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식구들의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쫒겨나듯 서울로 상경한 처녀들은 미용기술 같은 서비스업을 배우거나, 나라의 주력산업이었던 봉제 수출 산업의 바람을 타고 구로공단이나 청계천 공단에 취직했고 그야말로 밤낮으로 일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경제를 천명하며 수출 1억달러 돌파를 목표로 삼는데, 이를 달성한 주역이 여공들이었던 것이다(1964년). 여공들은 낮은 천장탓에 허리 몇 번 못펴가매 일한 돈을 아끼고 아껴, 고향집에 돈을 부치는 식으로 가족의 생계를 지원하기도 한다. 농촌에 남아있는 식구들은 서울로 상경한 여공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집에 전기도 달고 지붕도 고치고 그랬다. 이들의 연봉 수준이 어땠냐고?  류 교수에 따르면 나라의 급격한 경제성장률에 따라 구로공단과 평화시장의 일반적인 노동자들은 6년 동안 4.7배에 달하는 임금상승률을 기록한다. 월급 역시 대한민국 1인당 평균 소득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분석 대상의 여공들이 기술교육을 정식으로 받지못한 비숙련 노동자였음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수준, 아니 2018년의 청년 실업자 상황을 고려할 때 착취라는 용어가 도무지 성립될수 없다. 상식적으로도 생각해 보자. 착취라는 것이 사실이었다면 당시 평화시장과 구로공단에 취업하고자 줄선 여성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공들이 1960년대의 경제성장의 주역이며 가족의 삶에도 물질적 기여를 한 바 있으나 9시간 노동, 허리를 피지 못할 만큼의 열악한  작업환경 등 노동현장 상황이 처참했다는 반론이 제기될수 있다. 나 역시 여공들의 식사에 잠이 오지 않게하는 약을 집어넣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 눈물 흘린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상황이 그랬다. 여공만 그런 것이 아니라 농촌의 처녀들도 그랬고, 미용기술을 배우는 처녀들이 그랬다. 대한민국 일부 기득권 계층을 제외한 모든 계층이 저마다의 짐을 이고 독한 시기를 독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역시 그런 여공들의 애환을 아파했다. 다음은 1977년 어느날 박정희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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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이공의 한 봉제 회사를 가본일이 있다. 한국인 기업가가 운영하는 거대 봉제 공장이었다. 거기서 60년대 우리 여공들의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 염색 공장, 실을 짜는 공장은 기계화되어 있었지만 봉제와 미싱 업무만큼은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베트남의 그 여공들은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고모의 어릴적 모습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여공들의 얼굴에서 언뜻언뜻 비취는 열정과 자부심이 느껴졌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1960년대-1970년대에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며 밤으로는 학업에 정진했던 그 시절의 여공들이 현재는 어떠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지 찾아서 기록하는 것도 중요한 연구이겠다 하는 생각과 함께, 이들을 착취라고 말하는 것이 여공들을 외려 욕보이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한편 1970-1980년대의 경제를 견인한 노동자는 중화학 공업화의 역군 기능공이었다. 전술했듯 이들은 1970년 초반, 국가의 산업 정책의 일환으로 대거 육성 됐다. 방위산업-중화학 공업 국가를 위해 산업시설에 대한 투자와 대규모 자본 보다 중요한 것은 기능공이었다. 다시말해 1/100밀리리터 이하의 단위로 기계를 가공할 수 있는 숙련공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박정희는 이승만 대통령 이후 두 번째의 교육 혁명을 일으킨다. 당시 한국의 교육 현실은 소수의 엘리트 집안 자제가 인문계 대학교육을 받고 엘리트 계층에 편입되는 식의  '기득권 대물림 제도' 였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가는 것 부터가 '계층 고정' 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런 인문계형 인재는 박정희식 조국 근대화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해줄 수 없었다. 중화학 공업화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자-기술사-기능사로 이어지는 삼위일체의 인력이 필요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과학자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도 대학교육에 의해 생겨나고 있었으나, 기술사와 기능공이 현저히 부족했다. 그래서 박정희는 중등학교를 평준화하고 기술고등학교와 직업훈련원에 집중적 투자를 했다. 특히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여러 특전을 제공했다. 이러한 교육정책은 구 엘리트의 기득권을 타파했고 농촌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책에 따르면 중하-하층에 속하는 집안의 대거 남학생들이 기능공의 길을 밟는다. 육영수 여사 역시 선진국에서 당신에게 후원한 후원금을 직업훈련원을 개소하는데 내어줬다. 육 여사는 서거할 때까지 해마다 직업훈련원의 입학식과 졸업식을 빠짐 없이 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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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공을 격려하는 박정희. / 사진=조선DB

이렇게 육성된 기술공은 각 대기업의 중화학 공업화에 산업역군으로서 톡톡한 역할을 해낸다. 마침내 1977년 12월, 대한민국은 수출 100억불을 돌파하는데, 수출 1억불을 돌파한지 딱 13여년 만이다. 박정희와 기업가 그리고 기능공들이 해낸 과업이다. 이 날 박 대통령은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노동자들 개인의 삶도 그야말로 인간역전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기능공들이 중산층으로 편입된 것이다. '내가 잘되는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고, 나라가 잘되는것이 내가 잘되는 것이다.' 하는 일반화된 호혜성이 현실화된 시기다. 현재 이들은 여전히 각 대기업의 생산현장에서 고위직 노동자로서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기능공 출신 대기업 노동자들은 자신이 중산층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해마다 벌어지는 민중총궐기 따위의 노조 행사에서 나오는 구호와는 다르게, 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각 기업 노조는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는 식으로 그 좋은 일자리를 대물림하려 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현재 양대 강성귀족노조로 불리는 두 거대 노조의 대부분은 박정희 시대에 육성된 대규모 기능공들이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80년대, 횡행했던 학생운동의 바람을 타고 노동운동 역시 보다 촘촘하게 보다 격렬한 양상으로 활성화 됐다. 그리고 그것을 부추긴 것은 '노동현장을 혁명의 교두보로 삼으라' 는 공산주의의 전통적 지침에 따라 각 공장에 잠입한 NL, PD계열 등의 운동권, 일명 학출이었다.
 
이들은 기술 교육만 받아온 노동자들에게 혁명이론을 교육하고 노동 이론을 학습시켰다. 물론 노동운동의 활성화에 따라 노동환경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 현대사에 상처를 남겼다.

먼저 노동운동의 정치화이다. 학출의 노동현장 침투로 인해 한국 노동운동은 이상한 양상을 띤다. 바로 공산전체주의국가 김일성의 북한을 노동자의 세상으로 여기는 이념 지향성을 갖게된 점이다. 실제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에 가보면 보수정당을 필요 이상으로 악으로 모는 동시에 북한과의 연계를 주장하는 구호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라는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 역시 각 지역구에서 시민들의 노조 가입을 선동한다. 나는 가끔 전국민을 노조화 하여 이나라를 노동자 국가로 만든 후 북한과의 자연스러운 연방제를 꾀하려는 좌익 정치인들의 발상이 무서운 것인지, 강성 노조 입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반미·친북·폭력적 발언이 더 무서운 것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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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선일보

노동세력이 한국 현대사에 가한 두 번째 상처는 이들의 운동이라는 것이 결국 ‘노조에 가입된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만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1998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노동자 대투쟁 시기 일어났던 일이다. IMF에 따른 각 기업의 구조조정 당시 정규직 노조원들은 노조에 가입 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물로 삼았다.
 
그들의 일자리(심지어 식당일도 포함된다)를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체하면서, 정규직 노조는 살아남는다. 사정은 현재도 다르지 않다. OECD국가 중 생산성 최하권을 밑도는 창피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강성 노조는 각 대기업에서 자기파괴적 파업과 버티기를 자행하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 눈물 흘리는 것은 청년이요, 쓰러지는 것은 기업, 이로인해 휘청하는 것은 국민 경제와 국가 경쟁력이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민노총과 한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계를 여전히 약한 존재, 을로 인식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들을 살펴보면 학출 출신으로 노동계에 진입했다가 유력 정치인이된 이들이 언제나 노동자의 눈물을 파는 정치를 이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노동계가 다양한 형식의 투쟁 집회를 할 때마다 뻔뻔하게 지껄이는 ‘비정규직·하청 노동자·청년 실업자’ 등의 용어 때문이다. 정작 이 세 집단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주류가 될수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했는가』의 보론에서도 언급하듯, 왜곡된 현대사 교육 탓이다. 80년대-90년대 생으로 전교조식 교육을 받고 자란 청년들에게 평등과 민주주의는 절대선이요, 이를 위해 보수 정권과 투쟁해온 노동자와 민주화 세력은 영원한 정의의자 약자요 을이다. 세계관을 형성해가는 시기의 청소년의 뇌가 왼쪽으로 치우친 채 붉게 오염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몇 해 전에는 이런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이른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사건이었다. 2013년 12월 코레일의 대규모 임금 인상 파업에 맞춰 고려대에 ‘노동자가 박봉의 임금으로 핍박 받고 있는 이런 시기에 다들 등 따숩게 안녕들하십니까’ 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이 대자보는 뭇 대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전국으로 들불 번지듯 퍼져갔다. 알고보니 대자보는 노동당 소속 학생이 붙인 것이었고, 그 핍박 받는다는 코레일 노조의 연봉은 ‘안녕들하십니까’ 시국선언에 동참한 대학생들이 수십 년을 벌어도 도달하지 못할 연봉이었다. (코레일은 현대판 음서제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이 얼마나 황망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삶은 그렇게 선과 악으로, 칼로 무 베듯 재단할 수 없다. 또한 개인의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 역시 위험한 일이다. 박정희 시대의 노동자가 착취당했다고? 그것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를 욕보이는 일에 다름 없다는 이야기다. 서두에 언급했듯 당장에 박정희 시대에 산업 역군으로 일했던 여공과 기능공들은 당신들의 과거를 착취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중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고 인문계고를 졸업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좋다는 여대에 진학했다. 그래서, 고백컨대, 어렸을 땐 우리들의 오래된 편견에 따라 상업고등학교나 공업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나보다 아래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여공들,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기능공이 되어 집안을 일으킨 이들은 어린 나이에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시대의 역풍속으로 당당히 뛰어든 위대한 분들이었다.
 
류석춘 교수와의 개인적 연으로 책이 나오기 전부터 관련된 주제 강의를 여러차례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청계천 평화시장이 원래의 그것보다 커다래 보였고, 아버지가 공고 출신인 친구를 만나면 그 아버지의 이야기가, 삶이 궁금해졌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자녀를 키워냈다는 이유 하나로도 존경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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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어떻게 사는 삶이 올바른 삶일까? 남다른 의협심으로 힘 없는 약자를 위해 투쟁하는 삶도 의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필요는 없다. 외려 세상의 풍파 앞에서 내 자리를 지키며 당당히 두발로 딛고 일어나는 것, 그래서 국가와 사회와 나에게 당당하게 사는 삶이 더 아름다운 삶이지 않을까.
 
영화 <국제시장>의 백미는 노인이 된 철수와 영희가 부산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뒷모습이다. 언덕을 따라 꼭 철수와 영희의 집과 닮은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집 하나하나마다 위대한 개인의 역사가 있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좌파 사회학자들과 운동가들이 뒤틀어놓은 박정희 시대와 노동자를 화해시키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존(尊)을 바로세우는 책이라고.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4-10 18:36   |  수정일 : 2018-04-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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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자유경제원 연구원

감성적 보수주의자. 숙명여자대학에서 정치외교학 전공.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 2기 민간위원, 한국대학생포럼 6기 회장, 한국교총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자유경제원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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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  ( 2018-04-11 )  답글보이기 찬성 : 24 반대 : 3
자랑스럽던 우리 나라가 오늘날 이처럼 변질되게 된것은 소위 민주화세력 들 때문이었다고 강력하게 생각되진다. 노동의 건강한 의미는 퇴색되고 자존의 의미와 보람도 무참히 사살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의사들의 고귀한 노력까지도...) 70년대 말에 고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있는 나로서는 지금 국외자가 되어있는점에 다행스럽다 는 생각을 하기전에 무너져가는 우리 사랑하는 대한민국에 눈물을 쏟고싶다.
방탄아재단  ( 2018-04-11 )  답글보이기 찬성 : 46 반대 : 3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은.. 서민이 아니라.. 지금 의 이윤택. 고은 같은 사람들이었지...
서민들은 무지하게 좋아했지...
ㅋㅋㅋ 조선 일보 후원해야겠다∼∼♥
안현진  ( 2018-04-11 )  답글보이기 찬성 : 108 반대 : 7
이 나라 민주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오로지 정권차지에 혈안이 되었던 김영삼 김대중이 그 당시 정권을 잡았다면 아직도 빈곤을 면치 못 했을 것이며 김일성 3대 세습독재의 이북처럼 굶어 죽는 판에 과연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답글보이기  이형진  ( 2018-04-11 )  찬성 : 12 반대 : 0
그들 이야말로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국가경영에 정면 도전하고 잘나가던 선량한 국민에게(특히 전라도민을 이용하여..) 악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입니다.
이근수  ( 2018-04-11 )  답글보이기 찬성 : 97 반대 : 2
이제 솔솔 박정희 예찬론이 나올 것이다. 깡통좌파들이 언론, 문화 예술분야 선점하는데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왜냐? 바보들의 행진, 백성들이 덩달아 춤을 추기때문이다. 광우병사태때 못 보았나? 박근혜탄핵때 못보았나?
Adonis  ( 2018-04-10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73
그래 넌 조선이야
      답글보이기  이름에  ( 2018-04-11 )  찬성 : 2 반대 : 16
sin이 들어있네
김효태  ( 2018-04-10 )  답글보이기 찬성 : 163 반대 : 3
박 정희 독재에 저항한 지금의 좌파정치인들이 마치 자기들때문에 이땅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린것처럼 떠들지만 경제개발로 인한 중산층확대가 민주주의를 가져왔지 어찌 김일성 주체사상에 심취하여 날이면 날마다 북한의 주장이나 대변하고 주한미군 철수나 외치던 너희좌파가 이나라 정치발전에 무슨 기여를했다고 떠드는지......박정희 대통령의 발톱에낀 때보다도 더못한 인간들이 우파의 부패와 타락으로 정권을 잡고서 촛불혁명 운운하면서 유신때의 독재같은 권력을 휘두르니 너무나 우습구나.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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