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소나타와 BMW... 지난 30년 간 한국 사회에 일어난 변화의 정체는?

※ 필자의 동의를 얻어 페이스북 포스팅을 전재한 것임.

글 |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필자의 다른 기사 2018-03-16 17:20

▲ 사진 위쪽부터 소나타, BMW
출신 고등학교가 서울 강남 COEX 남쪽 언덕에 있었다. 그때에는 지금의 무역센터도 없었고, COEX 건물 자체가 2층짜리 볼품없는 앉은뱅이 건물이었다. 아마 지금 규모의 절반도 안되었던 것 같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 듯) 그래서 학교에서 내려다 보면 코엑스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조금 더 멀리 봉은사, 그보다 조금 더 멀리 K고등학교의 흰색 건물까지 다 시야에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코엑스에서 BMW 전시회가 열렸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수입규제를 완화하면서 외제차 수입이 허용되던 해이다. BMW 수입판매권을 따낸 K사가 코엑스에 전시관을 마련하고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학교 끝나고 휘휘 걸어서 코엑스로 갔다. 그때까지 사진으로만 보던 BMW가 정말로 내 눈앞에 있었다. 지금은 빈티지카 대접을 받는 E32 7시리즈와 E34 5시리즈들이다. 어린 고교생 눈에도 어찌나 이쁘고 좋아보이던지, 침을 꼴딱 꼴딱 삼키며 저먼 엔지니어링의 진수를 넋을 넣고 감상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미니 스커트의 이쁜 도우미 누나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막 운전석에 앉아 보라고도 하고 팜플렛도 한 무데기 챙겨줘서 더욱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한국에서는 중형 고급차 시장의 최강자인 대우 로열 프린스의 아성을 깨기 위해 현대에서 ‘VIP를 위한 첨단 기술의 결정체’ 소나타(스텔라처럼 생긴 각진 넘)를 출시하고 최첨단 기술력(?)을 국내 소비자에게 한껏 어필하고 있을 때였다. (물론 대우는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그러다 된통 당했지만..)
 
BMW가 눈 앞에 있기는 했지만, 그 차를 내가 이다음에 타고 다닐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세상에 있는 물건이기는 한데, 내 인생과는 상관없는 일종의 ‘모나리자’ 그림 같은 존재였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이 넘는, 단지 가격만이 아니라 특별한 지위나 신분에 있는 사람들이나 타는 외제차를 보통 사람들이 타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넘사벽의 존재였던 것이다.
 
외제차.. 이제는 뭐 취직만 조금 좋은데 하면, 초임 연봉으로도 타고 다닐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나로서는 30년전을 생각하면 정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건 완전히 다른 나라, 다른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한 드라마틱한 사회적 변화가 별로 감흥이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좀 감흥이 다르다.
 
일본 근무를 마치고 파키스탄에 부임했을 때 일본에서 타고 다니던 10년 된 중고 BMW를 가져갔다. 외제차 수입 규제가 아직 있는 나라인지라 이슬라마바드 시내에 돌아다니는 BMW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근무를 마치고 판매 공고를 냈는데, 득달같이 연락이 왔다. 정식 절차로는 신차건 중고차건 수입이 안되지만, 나같은 외국인이 반입한 경우에는 소정의 세금만 내면 파키스탄인들에게 판매할 수 있었다. 내가 내놓은 값이 시세보다 쌌는지 딜러들이 달려들어 서로 사가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나로서는 다행이었지만, 아마 십수년 전 한국의 사정도 그와 다르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한국이 걸어온 길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길이 아니었음을 그때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참고로 파키스탄은 독립 당시 경제, 정치, 종주국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유리한 환경에서 출발하였다.
 
요즘도 BMW건 벤츠건 포르셰건 멋지고 비싼 차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그러나 그 눈길은 내가 30년 전 BMW를 처음 보았을 때 보내던 눈길과는 의미가 좀 다르다. 과거에는 ‘내 인생과는 관계없는 넘사벽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눈길이었다면, 지금은 “흠..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나도 살 수 있겠는 걸..”이라는 욕망의 대상을 향한 눈길이다.
 
 그 30년 사이에 비단 나 혼자만에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일어난 변화의 정체가 그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인은, 그 대상이 지구 상 어떤 것이건,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고, 그러한 시대와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만도 좋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좋고 다 좋은데, 그러한 변화의 의미에 대해서도 음미해 보면서 삶을 대하면 더 좋을 듯하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1996년 제 30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근무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핵안보정상회의 의전과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했다. 2012년 일식 우동에 반해 외무부를 퇴직하고 현재 기리야마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다.

등록일 : 2018-03-16 17:20   |  수정일 : 2018-04-24 11:27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NS 로그인
  • 페이스북 로그인
  • 카톡 로그인
  • 조선미디어 통합회원 로그인
  • pub 로그인
댓글을 입력해주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