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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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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없어 결혼 안하겠다는 젊은이들아..아무 걱정 하지 말라!

우리 부부는 아파트를 팔아 인생 나머지 여행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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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대 중반인 아들이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아파트를 구입할 능력도 없고, 자식은 요즈음 부(富)를 상징하는 최고가 사치품이라고 했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 키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애비한테 거꾸로 말하는 것으로 듣고 흘려버렸다. 그러다가 엊그제 TV드라마 화면에서 비슷한 말이 나오는 장면을 봤다. 서로 사귄 지 4년이 넘으면서 결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커플이 나왔다. 둘 다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미남미녀였다. 그들은 사귀다가 쿨하게 헤어질 수 있다고 떠들었다. 단순히 인조이하고 싶은 청춘으로 여겼다. 그 말들은 다 껍데기 위장이었다. 둘이 헤어지는 순간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울부짖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무능한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연립주택에 월세로 사는 가난한 집 장남이야. 함께 살 아파트도 마련할 능력이 없어. 그런데 어떻게 결혼하자고 할 수 있겠어. 아이가 태어나면 그 많은 학원비를 대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해. 난 자식에게 절대 가난을 되물림하기 싫어. 그래서 결혼을 못한다는 거야.”
  
  그 젊은이의 절규를 들으면서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은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고 현재의 잣대로만 삶을 판단했다. 그들은 늙어보지 않았지만 나는 비슷한 환경의 그 시절을 겪었다. 나도 4년의 연애 끝에 현실적인 결혼문제가 눈앞에 대두됐다. 한 달에 9만 원 받는 육군 중위였다. 결혼식부터 시작해서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었다.
  
  아내가 될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아내에게 낙산 아래 미로 같은 골목길 안에 있는 낡은 우리 집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내게 왜 대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뒷문으로 자기를 데리고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작은 집의 손바닥만한 마당을 보면서 그렇게 오해한 것이다.
  
  아내에게 한 가지를 더 보여줬다. 상계동 빈민촌에 살고 있는 숙부 댁에 데려갔다. 당시 청계천의 움막에 살던 사람들을 이주시킨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겨울이면 공동변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흙바닥은 얼어붙은 오줌으로 번들거렸다. 리어커를 끌고 나가 노점상을 하는 숙모는 너무 기뻐했다. 조카가 가난을 숨기지 않고 결혼할 부유한 집 여자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옆집에서 돈을 꾸어 고기를 사다가 손님 대접을 해 주었다. 아내는 굴딱지 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집들을 보고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 선택권은 아내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구걸하기 싫다는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그래도 결혼하자고 통보했다. 아내의 돈으로 열 가구가 세를 사는 집의 이층 쪽방을 얻었다. 석유풍로에 코펠을 올려놓고 밥을 해 먹었다. 아침이면 나는 노란 양은찜통을 들고 보일러실로 가서 물을 받아 가지고 왔다. 화장실은 열 가구 이십여 명이 일층의 구석에 있는 걸 공동으로 사용했다.
  
  그 시절 내게 그 작은 방은 천국이었다. 휴일이면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대고 소설을 읽었다. 배가 출출하면 하이면을 끓여 먹었다. 옆에는 예쁜 아내가 대학원에 낼 리포트를 쓰고 있었다. 그만하면 나는 부러운 게 없다고 생각했다. 돈을 모아 7인치 흑백 텔레비전을 샀다. 작은 기쁨이었다. 그 작은 화면으로 ‘TV 문학관’이라는 프로를 보면서 행복했다. 아내와 동네 재래시장에 가서 잡채와 수제비를 맛있게 먹었다. 더러 영화를 보고 탁구를 치고 밤에 떠나는 3등열차를 타고 바다로 가기도 했다. 그렇게 살았다.
  
  어려서부터 하늘에서 받은 은혜가 있는 것 같다. 그 분은 없다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나의 신경을 마비시킨 것 같다. 물고기가 물을 못 느끼듯 나는 가난한 동네에서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남과 비교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부자들은 우리와 아예 다른 사람이니까 아예 쳐다보지도 부러워하지도 말라고 나를 세뇌시켰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인종들이라고 잠재의식 속에 각인이 된 것 같다. 진달래가 소나무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살면 그만이다. 또 볕이 따스한 산등성이 위에 있던 계곡 아래에 피어나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를 계산하고 걱정한 적이 거의 없다. 싸구려 고시원 밥도 맛있게 먹고 암자의 뒷방에서도 잘 잤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도 영혼은 마찬가지였다. 이따금 하늘에 계신 그분에게 일용할 양식을 얻을 지식노동만 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의 돈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없어서 형편없는 인간들의 노예가 되어 그 분을 원망하지 않도록 말이다. 인심 좋은 하나님은 믿음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돈 버는 능력이나 다른 능력들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냥 책임을 모두 그 분께 떠맡기는 쪽이었다. 
  
  그렇게 십 년이 흐르고 이십 년이 흐르고 삼십 년이 흐르고 사십 년이 다가왔다. 백발이 된 우리 부부는 금년 초에 남미 크루즈를 다녀왔다.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항목이다. 내년에는 세계 일주 크루즈를 꿈꾸고 있다. 우리의 영혼이 지구로 소풍을 왔는데 곳곳을 구경하지 못하고 가면 억울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젊은이들은 아파트를 구할 능력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는 아파트를 팔아 인생 나머지 여행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개미가 컴퓨터를 이해할 수 없듯이 인간은 한 시간 후의 자기 운명도 모른다. 젊은이들에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행복은 정규직이나 아파트나 사교육비에 있지 않다. 시선만 자기 속으로 돌리면 거기 이미 존재해 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3-13 09:52   |  수정일 : 2018-03-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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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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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곤  ( 2018-03-29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4
젊은 남자들아, 아파트 있어도 결혼하지 마라. 아파트 소유를 결혼 조건으로 내거는 여자? 결국 조건에 결혼하는 것이지 사랑은 아니다. 조건 깨지면 결혼 끝. 그 사이 정들고, 정들면 산다? 헛소리! 부인 없는 애는, 30대만 해도 결혼 생각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편하다고 하더구만.. 조건에 결혼하면, 나이들어도 친구같은 부인이 안되며 인생돌이켜 보면 "내가 날 위해 산게 뭐지?" 하는 생각 들고, 부인도 자식도 그런 고민 이해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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