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사회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고물상에 사는 성자(聖者)를 보다

글 | 엄상익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 자료사진 / photo by 조선DB
 아파트 동네의 옆을 흐르는 개천을 날이 선 찬바람이 스쳐 지나고 있다. 오십대 말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주민들의 산책로 옆 공터에서 주문같이 소리를 허공에 대고 외치고 있었다. 빛바랜 트렌치 코트를 입은 그의 손에는 낡아서 너덜너덜한 두툼한 종이뭉치들이 들려 있었다. 산책을 하며 지나가던 나이 지긋한 여인들이 그에게 다가가 호기심으로 묻는다.
  
  “지금 하고 계신 게 뭐예요? 주문을 외우시는 거예요? 아니면 방언이예요?”
  
  남자는 대꾸하지 않고 계속 중얼거리다가 자기 갈 길을 갔다. 그의 반복된 기행을 방송국에서 알고 그를 촬영하려는 피디가 나타났다. 그는 단호하게 촬영을 거부했다. 피디는 그를 추적하면서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인근의 고물상 귀퉁이의 누추한 방에서 혼자 사는 남자였다. 그의 일상이 은밀히 녹화되고 있었다. 그는 아침이 되면 고물상 리어커를 끌고 거리를 나섰다. 거리에 박스가 쌓여있는 걸 보면 그는 안으로 들어가 “박스를 가져가도 되겠습니까?”라고 꼭 물은 후 박스를 리어커에 실었다.
  
  그렇게 오전 노동을 마친 그는 깨끗한 제과점으로 들어가 갓 구운 빵과 우유를 사서 거리가 내다보이는 유리창 옆의 탁자 앞에 앉았다. 그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의식을 행하는 제사장처럼 근엄하게 빵을 조금씩 잘라서 입 속에 넣었다.
  
  그가 제과점을 나와 리어커를 끌고 고물상 쪽으로 향했다. 그가 끄는 리어커 손잡이 가운데 학생들의 단어장 같은 독서카드가 고무줄과 스카치테이프로 고정되어 있다. 그는 리어커를 끌면서 수시로 시선이 그 독서카드로 가면서 입 속으로 뭔가를 웅얼거린다. 카메라가 줌 인으로 그 독서카드를 끌어들여 클로즈 업 했다.
  
  고대문자 같아 보이는 이상한 글씨들이었다. 카메라는 그가 혼자 사는 고물상 구석방의 안을 살짝 살폈다. 이불은 올이 풀어지고 본래의 색깔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았다. 다른 생활도구도 전부 고물 수준인 것 같았다. 피디는 일인용 남자이불을 사들고 가서 그에게 전해주며 대화를 시도했다.
  
  “저는 지금 덮고 자는 이불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하게 잡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피디가 주는 이불을 사양했다.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피디가 물었다.
  “때가 되면 끓여 먹습니다. 카메라로 저를 찍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촬영이 난관에 봉착한 피디는 오래 전에 연락이 끊어졌다는 그의 동생을 만났다. 그의 이력이 동생의 입을 통해 나타났다. 형이 대학을 졸업하고 조그만 자기 사업을 하다가 어느 날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가족들은 머리가 다친 형을 수용시설에 보냈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형과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동생은 선물을 준비해서 피디와 함께 형을 찾아갔다. 형은 사는데 부족이 없다고 하면서 동생이 가지고 온 선물들을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이렇게 한 마디 했다.
  
  “너는 너의 길이 있고 나는 나의 길이 있어. 행복하게 잘 살아라.”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원망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걸 초월한 담담한 눈빛이었다.
  
  피디는 그가 매일 일정한 시간이 되면 개천가에서 소리치는 걸 녹음해서 전문가에게 들려주었다. 전문가는 그 내용이 뭔지 해독할 수 없다고 했다. 피디는 다시 그가 리어커의 손잡이에 붙여놓은 독서카드 속의 이상한 문자를 전문가에게 보여주었다. 그걸 보자 전문가는 수천 년 전 사용하던 정확한 히브리어라고 했다. 그가 하는 행위가 밝혀졌다. 개천 옆에서 매일 기도하는 것이다. 그의 트렌치코트 주머니에는 구겨진 낡은 성경이 들어 있었다. 그는 도시 속에 사는 은자(隱者) 같았다. 그의 영혼은 아무것도 필요가 없는 부자였다. 노동과 신앙으로 자기 길을 가고 있었다. 대학졸업이면 기본 지식도 있는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노년은 가난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과정이다. 돈이 말라가는 주변의 선후배들을 보면 큰일 났다면서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이 탄식들을 한다. 그런 속에서 개천변의 남자를 보면서 나는 다른 생각이 든다. 그를 별종으로 간주하고 필름에 담는 세상이 너무 얄팍한 게 아닐까. 그에게 가져다주는 이불과 선물에 한 방울의 사랑이라도 담긴 것일까. 노동과 신앙으로 고물상을 거룩한 땅으로 만드는 그 남자는 성자 같았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3-06 09:08   |  수정일 : 2018-03-06 09:54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자유지성광장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