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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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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대표, 부장판사, 대법관...서슬 퍼런 법관들이 인생 끝자락에 향하는 곳은?

권력의 옷을 벗은 그는 평범한 늙은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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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 by 조선DB
 서초동의 국밥집에서 친구들이 함께 밥을 먹고 근처의 작은 커피점으로 옮겼다.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한자리 하면서 활기차던 친구들의 얼굴에서 기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로펌 대표를 하던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 오늘 동대문시장에 있는 공증사무실로 옮겼어. 거기서 공증업무를 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려구.”
  
  활발하게 변호사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공증인 것 같다. 법정에서 근엄하게 재판을 하던 법관직을 지낸 선배들도 남대문시장이나 영등포시장 근처의 허름한 공증사무실이 마지막 일자리인 것 같다. 나도 몇 년 전 영등포 시장의 사무실에서 공증업무를 같이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었다. 노년에 서민들이 가지고 오는 서류를 살펴주고 손녀 과자 값이라도 버는 일은 괜찮은 것 같다.
  
  우리가 차를 마시는 옆자리에 점퍼를 입은 초라한 모습의 백발의 남자가 어쩐지 낯이 익은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까 기세가 등등하던 대법관이었다. 그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있을 때 그가 재판장으로 있던 법정에 갔던 변호사들은 모두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가 재판하는 당사자나 그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에게 권위주의적으로 대하고 모멸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솟아오르면서 예전의 재판 장면이 떠올랐다. 추적추적 장마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습기가 가득 찬 법정에서 배석판사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등받이 높은 의자에 왕같이 삐딱하게 앉아있던 그가 내가 낸 법률서류에 흘낏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잠시 후 서류의 사건번호와 당사자의 이름을 방청석 쪽으로 향해 말하며 관계되는 사람이 왔느냐고 소리쳤다. 방청석 뒤쪽에서 육십대 중반의 남자가 주눅 든 얼굴로 일어났다. 재판장인 그가 깔아뭉개는 듯한 눈길로 그 남자에게 말했다.
  
  “당신이 선임한 변호사가 쓴 이 서류 말이야, 보통사람인 당신이 써도 이것보다는 잘 쓰겠어.”
  
  변호인석에 서 있던 나는 갑자기 온몸에 똥물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모멸감이 끈적끈적한 똥물같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법률문서의 문장을 내 식으로 바꾸어 내곤 했다. 변호사는 판사에게 당사자의 애절한 마음과 배경에 깔린 억울한 사실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일정한 포맷에 맞춘 기존의 규격화된 법률 문장들은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는 죽은 글들이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재판장이었던 그의 눈에는 그런 내용이 같잖아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런 악연이었다.
  
  그 후 어느 날 나는 한 일간지의 메인 칼럼에 그때의 경험을 쓰면서 법관의 태도에 대해 한 마디 했다. 당사자나 변호사의 글이나 말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판결에 소리 없이 반영하면 되지 공개적으로 모욕을 줄 필요는 없다는 취지였다. 컬럼에 그의 이름은 쓰지 않았지만 좁은 법조계에서 알 사람은 안 것 같다. 그도 분명 그 컬럼을 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연은 다시 더 강한 악연을 초래하는 것 같았다. 이혼소송을 부탁했던 한 여인이 피해망상 증세가 있었다. 내가 상대방인 남편에게서 뇌물을 받아먹고 재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면서 위자료 소송을 제기했다. 고등법원까지 판사들은 그 여자의 편집증 증세를 지적하면서 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여자는 마지막에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듯 그 사건의 담당대법관이 그였다. 순간 나는 아찔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법관인 이상 사적인 감정을 판결로 보복할 사람은 없다고 그의 인격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 여자를 직접 본 열아홉 명의 판사들이 나의 결백을 판결문에 적고 있었다. 그중에는 전직 원로 대법관이 직접 조정을 하다가 그 여자에게 혼이 난 상황도 기록에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판결은 나의 희망과는 반대로 났다. 정확히 지적할 수는 없지만 내가 뭔가 잘못이 있으니까 그 여자가 그렇게 집요하게 덤볐을 것이라는 추측하는 결론을 담은 대법원 판결문이었다. 대법원은 지금까지의 나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파기하면서 고등법원에 내게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부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여자는 환호하면서 변호사를 통해 청구액을 거액으로 올렸다. 대법관이 자기의 손을 들어주는데 부자가 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칼자루를 가진 자의 절대 권력을 절실하게 체험했다. 세상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결정적인 힘이었다. 나는 모든 걸 빼앗긴 경우를 생각해서 지방의 다가구 주택 원룸을 찾아보았다. 아내와 좁은 방에서 예행연습같이 잠을 자면서 가난연습을 했다. 배상액을 때리도록 명령을 받은 고등법원 판사에게 항의했다. 대법관이 컬럼을 쓴 개인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가 이래도 되느냐고. 물론 겉으로는 모두 아닌 척할 게 틀림없었다. 인격자인 대법관들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내게 판결이 선고됐다. 고등법원 판사들은 대법관과 나와의 개인적인 감정관계는 살필 위치에 있지 않다고 판결문에서 제일 먼저 쓰고 있었다. 그래도 내 말이 그 가슴에 울림을 주었는지 거지가 될 정도의 무거운 배상금을 물리지는 않았다. 나는 그 돈을 모두 물어주었다. 억울하게 피땀 흘려 번 돈을 빼앗겼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참담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래도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사건은 그중에 가벼운 편에 속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권력이란 세월이 가면 떠나게 마련이다. 그가 내가 차를 마시는 옆자리에 초라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다. 그는 나를 아는 척 하지 않고 나도 역시 그랬다. 권력의 옷을 벗은 그는 평범한 늙은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는 모든 감정을 흘러가는 강물에 실어 보내기로 했다. 하나님이 나를 단련시키기 위해 그를 잠시 사용했다고 믿기로 했다. 그가 아니라 주님이 내게 시련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세상에 대한 계율을 따지고 보면 하나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권력이나 완장의 위세를 보이지 말고 사랑으로 도와주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작은 글을 쓰는 나부터 반성해 보았다. 그 누구에게 생각 없이 몇 자 쓰면서 마음의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말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2-14 09:55   |  수정일 : 2018-02-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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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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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필  ( 2018-02-14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2
양승오 박사 재판의 심규홍 재판장이 생각납니다. 엄변의 증언은 세브란스 신검을
위해 박주신이, 검찰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다른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재판진행중 양박사 지지자들은 심판사의 공판진행테도를 볼때 공정하게 판결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엄변의 증언은 판결문에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양박은 유죄선고를 받았다. 언제쯤 그 때 얘기를 글로 쓸 날이 올까요? 엄변호사님! 박근혜 및 주변인사들 공판이나 판결을 지켜보면서 엄변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썩어빠졌지요?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가아 할 법관들이, 잣대를 트럭으로 가득 싣고 다니면서, 이현령비현령 판결을 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것 같지요? 변호사도 그럴 테구요. 검사들, 경찰들도 다르지 않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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