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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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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심의 과도한 확장이 발전하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아서야...

글 | 진세훈 진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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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이철원 / photo by 조선DB
선생님으로 은퇴하신 노부부의 옛이야기이다. 명절에도 자식들 이외에는 찾아오는 이도 없다고 투덜대는 늙은 부인을 나무라며 헛헛한 모습의 담배를 피우시는 할아버지. 늙은 부인께서 섭섭해 하는 이유도 다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막내는 업어 키우다시피 했고, 동생 4명을 공부시키고 결혼, 분가시켜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이제 늙고 보니 동생들은 명절에도 선물만 찔끔 보내곤 제사 때도 안 온다는 사실이다.
 
동생들도 나이가 70~80대인데 뭐 그리 섭섭할까만…. 그래도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없는 살림 살면서 시골에서 가난하지만 우애 있었던 집안 이었단다. 부모님의 소원은 남의 땅이 아닌 자신의 땅에서 농사짓는 것이었다. 내 땅에서 소출이 적든 많건 남 안주고 내 가족을 오롯이 먹일 수 있는 걸 평생의 꿈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형제들은 워낙 가난하니 책이며 옷이며 순서대로 물려가며 입었다. 심지어 다 헤진 옷도 형이 험하게 입으면 동생이 걱정하며 살았던 시절이었다.
 
학교도 형편 되는대로 교대로 다녔다. 2명이 동시에 대학을 다닐 수 없으니 가운데 동생은 명문대학을 3번이나 합격하고도 형이 졸업을 안 해서 대학 입학을 기다려야 했다. 한 명 입학하면 하나는 군에 가고, 형이 제대해서 복학할 땐 학교 잘 다니던 동생은 당연히 군에 입대해서 입을 줄였다. 또 새벽엔 우유배달, 방과후엔 신문배달로 집안에 보탬을 주는 형제우애였다고 한다.
 
밥 먹는 게 해결되고 조금씩 여유가 생기니 “내가 더 잘 먹고 남과 비교해서 더 잘 살고 더 출세하려 용쓰고 싶고…, 나도 꿈이 있잖아요”라며 집을 떠나는 동생에게 섭섭해 하면서도 걱정하면서 살았다. 떠난 동생 중 둘은 크게 성공해서 잘 사는데, 자주 찾아오지는 않는다. 부모 같은 큰형과 형수는 늙고 쪼그라들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출세와 꿈은 돌아볼 엄두도 못 내고 살았다. 그들은 18평 국민주택에 덩그러니 남아 살고 있다. 오로지 등 뒤 높은 벽 위에 걸려있는 부모님의 영정사진에만 떳떳했지, 사방을 둘러보아도 자신은 초라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고 할머니는 눈물짓는다. 할머니를 타이르는 할아버지 말씀이 요사이 퍼주기 복지논란의 답을 일러주시는 것 같다.
 
집안에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는 부족사회같이 서로 희생하고 나누고 잘 될 놈 하나 밀어주며 어려운 시절을 견뎌 넘어왔다. 하지만 그런 절대빈곤 상황을 넘어서고 나면 이젠 각자 꿈과 여건과 자유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서서히 나온다. 누구 하나 잘 됐다고 그 잘된 놈이 나한테 나눠주지 않는다고 욕하면 안 된다. 더욱이 요즘 내가 밥을 굶을 상황이 되면 국가에서 도와준다. 형제간에 부담 줄 필요가 없다. 더구나 내가 밥을 굶는 상황도 아니다. 그리고 잘난 동생이 집안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가서 성공하면 집안의 영광이고 자랑이지, 그 이상을 뭘 더 바라는가. 우리나라가 소득 2만 불에서 3만 불 되는데 10여년 이상 걸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야.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밥을 굶는 것이 아니면 잘 되는 사람 시기하고 뺏어 나눠 가지려고 하면 그건 도둑놈 심보다. 잘 될 수가 없다.
잘난 형제가 좀 나눠줬으면 좋겠고, 좀 못사는 동생을 보면 ‘짠 한 마음’에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동정, 연대, 이해와 용서, 모든 집단에서 아름답다고 규정지어진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이런 감성들은 어떤 범위 이상으로 확장되어서는 안 된다.도와주고 싶으면 그냥 자기가 도와주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이걸 사회문제화 해서 계속 확장시키면 이런 ‘짠한 본능’은 종국에는 우리를 다시 원시상태로 되돌린다.
왜냐하면 각자가 발전해서 전체가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려는 사람 발목을 잡아서 주저앉히는 효과만 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인간만이 가졌다는 이런 아름다운 감정이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혜안은 아마 서양 정치철학자의 이론이 아니라 자신들의 희생으로 우리를 빈곤에서 구해준 앞세대의 지혜였던 모양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1-24 16:15   |  수정일 : 2018-01-2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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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훈 진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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