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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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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왜구(倭寇)는 중국인들이었다 !

글 |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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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와의 해상 전투를 그린 명나라 시대 그림.

16세기는 동아시아에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대항해시대 유럽세력이 바다를 통해 처음으로 동아시아에 다다른 시기이기 때문이다. 유럽세력과 어떻게 조우하고 대처하였는가가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가 '왜구(倭寇)'이다. 한국에서는 노략질이나 일삼던 '일본'의 해상 도적떼 정도로 정체성이 부여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서양의 동양사 연구자들은 동양 (특히 중국과 한국) 연구자들과 기본적인 인식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왜구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것은 왜구라는 존재가 서양문물의 전래 또는 전파의 계기를 마련하는 파일롯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같은 왜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15세기 이전의 왜구와 16세기 이후의 왜구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전자, 즉 전기 왜구는 주로 일본지역에서 발흥한 해적집단이 주를 이루나, 후기 왜구는 국적 구성, 활동 영역, 활동 내용 면에서 완전히 다른 성격의 집단이다.
 
우선 후기 왜구는 중국인들이 주를 이룬다. 일본인과 동남아인들이 일부 섞여 있었다. 여러 갈래의 집단이 있으며 본거지에 따라 동남아 거점, 중국 해안 거점, 규슈 거점의 왜구로 나눌 수 있다. 중국인들이 다수인데 왜 왜구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명의 사가들이 명의 법도에서 벗어난 불법집단을 자국민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기존의 멸칭인 왜구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후기 왜구의 발흥 원인은 명의 해금 정책 때문이다. 명은 조공무역 체제의 유지를 원하였기 때문에 바닷길을 통한 사무역을 규제했다. 심지어 연안의 어부들이 고기잡이 출어를 나가는 것도 금지하고 연안의 섬을 무인화하였다. 명은 제국의 위엄과 외적 방어의 명목으로 폐쇄체제를 추구하였고 이 와중에 남중국 연안 주민의 생존권이 심대한 침해를 받는다. 중국의 복건성, 저장성 연안은 토질이 매우 척박한 곳이다.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렵다. 더구나 당대, 원대, 송대 시기에 무역으로 경제적 부를 누린 경험이 있는 곳이다. 명 조정의 해금이 이들에게는 수용할 수 없는 압제였다.
 
먹고 살기 위해 출어와 밀무역에 나서는 상인들이 생겨난다. 바다는 넓고도 넓다. 쾌속정이 단속을 하는 현대에도 바다에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어려운데 그 옛날 무동력선으로 관리들이 바다를 엄격히 통제한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다. 무역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절, 바다에 나가 밀무역으로 입수하는 물건들은 큰 이익을 안겨주었고, 워낙 상업 마인드가 뛰어난 복건과 저장의 상인들은 점점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밀무역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 밀무역 상인들의 활동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 포르투갈인들이었다. 포르투갈은 인도의 고아를 기점으로 15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진출을 모색한다. 말라카, 자바, 시암, 참파 등에 무역 포스트가 만들어지고 1540년대 들어서는 동중국해에 진입한다.
 
포르투갈인들은 명과의 무역을 희망했지만, 전술한대로 명은 조공무역 외 사무역을 금하였다. 이 지점에서 중국 밀무역 상인과 포르투갈 상인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동남아 일대의 무역 포스트에서 거래를 트기 시작한 두 세력은 동중국해 일대에서 파트너쉽을 형성한다. 포르투갈인들이 유럽과 동남아에서 운반해 온 물자를 중국 상인들에게 넘기면 중국 상인들이 이를 자신들의 밀무역 루트에 태워 처분하고 그 댓가로 얻은 이익을 포르투갈 상인들과 나누는 형식의 일정의 대리 무역이 성행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배에 승선한 포르투갈인 일부가 태풍의 영향으러 다네가시마에 표착한다. 1543년의 일이었다. 이것이 일본과 유럽의 최초 만남이었다. 유럽과 일본의 만남 자체가 왜구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러한 상인들을 왜 왜구, 즉 해적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명 정부가 밀무역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그에 종사하는 상인들을 탄압하였기 때문에 이미 범죄자 신분이 된 이들이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는 순수한 도적집단인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집단이 그저 밀무역에 종사하는 상인으로 출발하였다가 관헌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거나 복귀시 처벌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본거지를 세우고 때로는 상업적 거래를 때로는 무력에 의한 약탈을 병행하는 독립적 집단으로 변모해 갔던 것이다. 이들의 본거지는 일본인들이 용병으로 합류하기도 하고 동남아인들이 참여하기도 하는 등 국제적 또는 무국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
 
일본이 중국과 가장 달랐던 점은 중국인들은 중국에 돌아가면 모두 범죄자로 처벌받는 신세였지만, 일본의 다이묘들은 이들의 이용가치를 높이 사 협력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중국 왜구들의 밀무역이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일본과 명 사이의 공무역인 감합무역이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전국시대의 전란 속에서 생존을 건 부국강병을 추진해야 했던 큐슈의 다이묘들은 중국 왜구의 비호를 통해 대중국 밀무역이 가져댜주는 경제적 이익을 중시했다.
 
앞서 말한대로 이 과정에 포르투갈인들이 개입함으로써 왜구라는 존재의 가치가 일본 다이묘들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조총과 화약을 비롯한 전략물자를 비롯하여 면포, 비단 등의 생필품, 고가품까지 그간 류큐의 중계를 낀 감합무역으로 힘들게 진행되던 대외무역이 왜구의 존재로 훨씬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규슈 및 세토 내해 일대의 왜구들이 다이묘들의 해상 전력집단으로 제도적으로 포섭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즉,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각 다이묘가 관할하는 운송선의 경비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네이비 또는 코스탈 가드로서의 역할이 부여되고 그에 걸맞는 가신화가 진행된 것이다.
 
1570년대가 되면서 중국 왜구 세력은 크게 쇠퇴한다. 원인은 포르투갈과의 결별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와 나가사키라는 무역 포스트를 확보함으로써 더 이상 리스크가 높은 중국 왜구들과의 신용거래에 의존하지 않고 정해진 장소에서 공식적인 절차와 방법에 의해 대중, 대일 무역을 시행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후기 왜구는 일본인이 아니라 주로 중국인들이었고 이들은 단순한 해적이 아니라 비공식 무역 종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중국은 이들을 끝까지 범죄자 취급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를 국가가 활용하지 못하였으나, 전국시대의 일본은 각 지방이 처한 사정에 따라 이들의 이용 가치를 활용하고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전력화하였다.
 
16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동남아, 동중국해를 거쳐 일본에 이르는 해역은 서양세력의 진출로 인한 큰 변화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그 물결의 첨단을 타고 왜구라는 존재가 묘기 부리듯 서핑을 타고 이곳저곳을 휘젓고 있었다. 제1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해도 좋을 그 변화의 물결에서 오로지 조선만이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다. 축복이라 보는 사람도 있고 저주라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덧)서양 학자들의 왜구에 대한 평가가 동양학자들과 다른 것은 유럽의 해양진출사에서 privateer(사략선: 정부로부터 적국의 선박을 나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민간선박)나 buccaneer(모험적인 사업을 벌이는 해적)의 존재가 갖는 의미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1-18 10:38   |  수정일 : 2018-01-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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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1996년 제 30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근무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핵안보정상회의 의전과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했다. 2012년 일식 우동에 반해 외무부를 퇴직하고 현재 기리야마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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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  ( 2018-01-19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4
정말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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