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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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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9급 공무원과 순경이 곧 국가(國家)입니다"

"극도의 가난에 처한 사람이 국가의 보호와 배려를 받으려면 직접 간구해야 하는 담당자가 9급 공무원이예요.그의 결정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버려질 수도 있어요."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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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조선DB
지방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노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가 한번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가르치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 말은 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대기업에서 지방대 출신을 실제 면접까지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야.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거지. 그러니 그런 구별을 하지 않는 공무원 시험을 학생들이 선호하는 거야. 어쩌다 9급행정직이나 순경시험에 합격을 하면 학교에 플래카드가 붙을 정도로 축하해 주는 게 요즈음 지방대학의 현실이야.”
  
  “그렇게 공무원이 되는 목적이 뭐야?”
  내가 물었다. 예전 같으면 승진이 인생의 목표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사다리의 끝에는 장관이나 차관이란 자리가 있었다.
  
  “승진이 목적이 아니래. 어떤 경우에도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칼퇴근하는 게 좋은 거야. 그 이후는 자기 시간을 가지는 게 공무원이 된 목적이라는 거지. 좋은 아빠가 되어 아이들과 즐겁게 사는 게 좋다는 거야.”
  
  가치관이 변해가는 것 같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몇 년 전 사무실에서 가까운 경찰서 수사과에서 한참동안 담당 수사관의 넋두리를 들어준 적이 있었다. 퍼머를 한 노란 곱슬머리에 세련된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삼십대 말의 수사관이 내게 이런 하소연을 했다.
  
  “저는 법대를 졸업하고 신림동에서 오랫동안 고시준비를 했었어요. 그러다가 시험은 자꾸 떨어지고 기운이 빠져 있는데 수사 전담 경찰관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순경으로 들어와 수사과에 근무하게 됐습니다. 경찰 중에서 수사 전문직인 셈이죠.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를 하고 조서를 작품같이 생각하고 만들어 왔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신림동에서 같이 공부를 하던 여학생이 고시에 합격하고 경찰서 수사과장이 되어 온 겁니다. 제 직속상관이 된 거죠. 80명이 넘는 형사들의 위에서 그 여학생이 책임자가 되어 지휘를 하고 있는데 거기 가서 보고하고 명령을 받을 때면 좀 더 공부를 할 걸 하고 후회를 합니다.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순경에서 수사과장 계급이 되려면 평생 걸려도 될까 말까 할 거구요. 인생이 순간의 선택에 이렇게 되는 건가 봐요.”
  
  그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지위를 생각하면 윗자리 위에 또다시 윗자리가 있다. 경쟁사회에서 만족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차라리 얼마나 높이 올랐느냐보다 사다리가 어디에 놓여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거리의 변호사로 탑골공원 뒷골목이나 서울역 노숙자 합숙소를 가 보면 9급 공무원이나 순경은 곧 국가인 걸 실감합니다. 힘들게 사는 국민에게 공무원은 직접 부딪치는 막강한 권력이죠. 극도의 가난에 처한 사람이 국가의 보호와 배려를 받으려면 직접 간구해야 하는 담당자가 9급 공무원이예요. 그의 결정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버려질 수도 있어요. 또 노숙자 사이에 사고가 났을 때 그들이 법의 보호를 받느냐 아니면 법치에서 버려진 투명인간이 되느냐는 순경이 외면하느냐 법을 집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순경이면 어떻고 서장이면 어떻습니까? 각자 자기가 하는 일을 소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너무 수직적 사고에만 젖어왔는지도 모른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앞세우기도 했다.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 좋은 아빠가 되고 존중받는 개인이 되고 싶은 세상이어야 한다.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삶의 본질이니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1-09 09:23   |  수정일 : 2018-01-0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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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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