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사회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국정원 수사받던 간첩, "증거가 북에 있는데 유죄로 만들 수 있겠어요?"

자기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으면 다가올 처참한 운명에 부딪쳐야 하는 게 인과응보의 법칙이 아닐까.

글 | 엄상익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간첩사건의 변호인이 되어 국정원을 간 적이 있다. 해안지역의 군사시설을 동영상으로 찍고 군 장교들을 포섭해서 전투교과서인 군사교범과 군사지도 그리고 작전계획을 빼서 북에 넘겼다. 탈북한 사람들의 동향을 녹화해 북으로 보내기도 했다. 간첩행위를 한 것은 맞는 것 같았다. 그는 국정원 수사에 임하면서 묵비권과 단식으로 저항했다. 구치소 안에 있는 그를 여러 번 만났다.
  
  “모든 증거가 북에 있는데 어떻게 나를 간첩으로 유죄로 만들 수 있겠어요? 남한에는 간첩보다 훨씬 못한 정치하는 놈들이 많아요.”
  그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남한에 간첩보다 나쁜 정치인이 많다는 게 무슨 소리죠?”
  내가 되물었다.
  
  “더러 중국에서 남북한 인사들의 비밀 접촉이 있습니다. 제가 북조선 대표의 경호원 자격으로 북경의 호텔에서 남한의 정치인들을 옆에서 지켜 본 적이 있어요. 선거 때라 대통령 후보의 심부름으로 온 놈들이죠. 남한의 정치인이라는 그놈들 보면 휴전선 근처에서 무력시위를 하든가 부대이동을 해달라고 했어요. 선거에서 이기려면 북에서 남침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는 거죠. 대신 뒷거래가 있는 거죠. 그런 놈들이 지금 남한의 정계에 버젓이 버티고 있어요. 내가 법정에서 그걸 다 불어버리면 거짓말이라고 하겠지. 그러니까 북한이 선거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셈입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무력사용보다 선거 때 개입해서 원격 조정하는 게 훨씬 파괴력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게 상대적으로 북의 말을 잘 듣나 살펴보고 그 사람이 되게 하는 거죠.”
  
  “예전에는 간첩이 지하조직을 구축할 때 사상으로 세뇌를 시키고 공작금으로 사람들을 포섭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남한의 주요 인사나 군 장교들을 포섭했죠?”
  
  “요새는 사상으로 하지 않아요. 이권으로 하죠. 예를 들면 금강산 근처나 인천공항 가까운 서해안에 카지노가 있는 대규모 관광단지를 만든다고 사업계획을 세우는 겁니다. 북한은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땅값이 들 염려도 없고 인건비가 문제될 여지도 없죠. 제대 후 앞날이 막연한 남한의 군 장교들에게 그런 회사의 주식을 주고 이사 자리를 보장하겠다고 하면 솔깃해 했죠. 그 외에도 북에도 이권이 많습니다. 지방 주요도시의 물자유통권도 있구요. 자본주의야 돈을 준다고 하면 영혼도 파니까.”
  
  “북한에서는 어떤 위치였어요?”
  내가 물었다.
  
  “적어도 왕별이 달린 벤츠를 타고 다녔습니다. 묘향산에 가거나 할 때 헬기를 타고 직접 현지에 가서 지도를 한 적도 있죠.”
  이미 그는 확신범이었다. 그에게 대한민국이나 재판은 의미가 없었다. 그의 속에는 위대한 지도자 동지만 들어있는 것 같았다.
  
  “고난의 행군으로 200만을 굶겨죽이고 왕국 같은 봉건주의를 하는 정치체제가 좋다고 보입니까? 국가는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지켜주기 위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남한의 썩고 약한 대통령보다는 북의 지도자가 훨씬 결단성 있는 영도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앞에 있는 그는 나와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는 봉건국가의 가신 내지 귀족이 되고 싶은 것 같았다. 무산계급을 위한 평등사회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었던가. 한 개인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명분하에 한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생각까지 이념으로 획일화 되어야 하고 스케줄도 권력이 짜주는 조지 오웰의 1984년 같은 그런 세상은 싫었다.
  
  그는 거짓말을 요구했다. 변호를 그만두었다. 간첩뿐 아니라 살인범도 사기범도 거짓말을 해달라고 하면 그때가 사건을 그만둘 때였다. 변호사는 거짓을 대리해 주는 직업이 아니었다. 간첩들이 기어들어 흰개미 같이 이 사회의 기둥과 대들보를 파먹고 있다. 그들이 안착해서 뿌리 내리기 좋은 환경이다. 국정원장도 그 기관의 등뼈 같던 대공수사권을 포기하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제 온갖 해충이 침입해도 방충망이 없는 휘청거리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다.
  
  김일성은 월북했던 작가 황석영에게 “남한의 의회에서 우리 노동당이 소수당 정도라도 자리잡고 활동할 수 있다면 한번 승부를 겨루어 볼 수 있는데 말이요”라고 한 사실이 그의 수기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 우리는 북한의 핵 위험 앞에서도 ‘제발 공격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무기력한 하소연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그들이 공격하지 않을까? 간첩도 ‘보내지 마세요’ 하고 호소하면 그들이 보내지 않을까? 자기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으면 다가올 처참한 운명에 부딪쳐야 하는 게 인과응보의 법칙이 아닐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2-06 09:39   |  수정일 : 2017-12-06 10:56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