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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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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심 강한 검사 때문에 구속된 원로소설가 정을병...옥바라지하다 숨진 부인이 남긴 편지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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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정을병씨 / photo by 월간조선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감옥에 갇힌 소설가의 아내가 뒷골목에 있던 나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었다. 그녀는 구치소에 있는 남편이 변호료가 300만 원을 넘어가면 변호사를 선임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변호료로서는 최하의 금액이었다. 지옥 같은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십억을 내며 돈을 아끼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서민들도 빚을 내거나 전세보증금이라도 빼서 갇힌 가족을 법의 그물에서 빼내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 소설가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가 물질적으로 가난한 게 틀림없었다. 체념이 일상화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변호를 맡았다. 소설가협회 회장을 하면서 많은 지원금을 받아 문학인들을 도운 원로소설가 정을병 씨였다. 그 시절 정을병 씨 가족들은 성경 속의 욥같이 불행이 닥쳤다. 외아들이 아프리카로 여행을 하다가 실종됐다는 말을 들었다. 소설가 협회장을 하던 정을병 씨가 모략과 오해 속에서 구속이 됐다. 나의 변호사 사무실을 드나들던 그의 부인 김정숙 씨도 갑작스럽게 저 세상으로 갔다.
  
  어느 날 소설가 가족이 살던 집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받는 사람이 없었다. 부인은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재판에서 억울함이 풀리고 돌아온 소설가에게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40년 동안 가족이 살았던 집에 혼자 남아있던 정을병 씨도 저 세상으로 훌쩍 넘어갔다. 내가 변호일을 하는 전후를 통해 자주 봤던 부부가 삶의 안개 저쪽으로 사라진 것이다. 텅 빈 그 집안에는 가족들이 식탁에 모여앉아 떠들고 웃고 울던 소리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소설가 주인이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던 마당에 심은 나무만 남아 있었다.
  
  오래된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책장 구석에 수북이 쌓여있는 메모 뭉치를 옮기는데 한 덩어리가 툭 방바닥에 떨어졌다. 그 맨 위에 2005년 11월22일 오전 11시 소설가의 아내가 나의 변호사 사무실에 와서 했던 상담메모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소설가 부인은 맑은 영혼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의 여성이었다. 메모지 속에서 그녀는 아직도 살아서 내게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국문과를 졸업한 저는 스물여덟 살 때 세 살 많은 남편을 친구 소개로 만났어요. 반항아적 기질을 가지고 있고 성격이 급한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깨끗하고 바른 사람이다’라는 느낌이었죠. 남편은 5·16 혁명이 나고 군사정권에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현장에 들어가 체험을 하고 ‘개새끼들’이라는 폭로 소설을 썼어요. 남편이 썼다는 그 소설을 읽어보고 저는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죠.
  남편은 그야말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죠. 문학을 위한 순교자가 되기로 결심했대요. 하루에 쌀 몇 줌과 김치 한 종지, 연탄 두 장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렇게 평생 하루에 한 끼만 먹겠다고 서원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평생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거였죠. 그래서 결혼도 꺼리는 것 같았어요. 그런 남편을 보고 내가 결혼을 하자고 강하게 끌었어요. 같이 그 길을 가자고 말이죠.
  남편은 가족이 생기니까 먹고 살기 위해 취직을 했어요. 직장만 갔다 오면 밤새 타자기로 글을 썼어요. 남편의 일상은 항상 같았어요.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이었어요. 남과 어울리지도 않았어요. 수입은 불규칙했죠. 책이 팔리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전업 작가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죠. 처음에 히트를 친 책의 인세를 받아 산 집에서 40년 동안 한 번도 이사한 적이 없어요.”
  
  수도사 같이 혼자 살던 그가 노년에 소설가협회 회장이 됐다. 부인은 그때의 일을 계속 얘기했다.
  
  “가난을 뼈저리게 겪은 남편이니까 다른 소설가들의 어려운 삶을 잘 알아요. 남편은 소설가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뛰어다녔어요. 그래도 유명세를 타고 얼굴이 알려져서 후원을 하겠다는 단체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돈을 협회의 직원이 빼돌린 거죠. 제 남편이 어떤 성격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아무 사심도 욕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돈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예요. 협회에 돈이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려서 제가 회계를 명확히 하고 조심하라고 했죠. 남편은 가난한 협회에 뭐 먹을 게 있다고 그러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직원이 회장인 남편이 기부자를 만나러 갈 때 밥값도 들고 차비도 드니까 거마비로 조금씩 보낸다고 하면서 남편의 통장으로 돈을 보냈어요. 그게 횡령이 된 거예요. 그게 침소봉대되어 우리가 횡령을 해서 아파트 몇 채와 골프회원권까지 샀다고 소문이 났더라구요. 우리남편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닌데.”
  
  사고는 두 명의 직원에게서 터졌다. 직원들이 문인들의 복지를 위한 돈으로 아파트를 사고 여직원은 애인의 자동차까지 사준 게 드러났다. 공명심이 강한 검사에게 그런 피라미들의 횡령사건은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조종해서 이름 있는 원로소설가를 파괴하는게 언론을 타고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였다. 결국 재판에서 결백이 증명됐다. 그러나 내면의 상처가 너무 깊었던 것 같다. 소설가의 부부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게 변호사가 본 세상의 일부였다. 이제 메모지를 치울 때가 됐다. 순교자 부부의 명복을 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0-13 09:51   |  수정일 : 2017-10-1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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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현욱  ( 2017-10-13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6
변호료로서는 최하의 금액.. 지옥 같은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십억을 내며 돈을 아끼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서민들도 빚을 내거나 전세보증금이라도 빼서 갇힌 가족을 법의 그물에서 빼내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 엄상익 변호사라는 친구는 배가 불렀구먼.. 누군가 봤더니..54년 생 고대출신이라..
      답글보이기  판검사변호사는  ( 2017-10-16 )  찬성 : 1 반대 : 0
무용지물이 되야만 한다. 동일범죄엔 동일형량이 정의일진데 어떻게 변호사에 따라서 형량이 좆대가리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냐? 변호사는 무대위의 광대고 ,판검사는 무대뒤의 연출자냐? 좆대가리 길이 변형전문 마술사기꾼들이냐고? 시술비가 수십억이고?
우리에게 필요한건 *동일법죄 동일형량*이란 교과서 한권이면 끝이다. 자기가 지은죄는 자기가 아니깐 자기가 교과서 펼쳐보고 형량확인하고 가막소로 스스로 들어가면 되는것 좋쟎아,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는 것들은 머리가 장식품?
죄와 벌이 특정이익집단들에 의해서 유린되어지면 인간사는 끝이라고 보면 된다. 중죄인들이 경범죄인들을 재판하고 재단한다??? 온세상의 개들이 웃는다.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닌 최하위 찌꺼기라고 내가 항상 강변하는 것이다. 앙그냐? 중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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