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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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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이발사였던 영감이 밤이 되면 콜라텍에 가는 이유는?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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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찾아가던 칠십대의 이발사 영감이 있었다. 콧수염을 기른 멋쟁이였다. 그는 의자 두 대인 작은 이발관을 혼자 하고 있었다. 그는 자칭 ‘최고의 예술가 이발사’였다. 이발의자에 앉으면 그는 평생 쓰던 손에 익은 가위로 머리털을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 머리발이 세고 엉망이었어요. 그걸 내가 단정하고 말끔하게 다듬어드렸죠. 대통령이 나보고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하더라구요. 안 갔어요. 내가 왜 갑니까? 이렇게 내 가게를 하면서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즐겁게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야죠.”
  평범한 이발사의 툭 내뱉는 한마디 속에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평생 머리를 깎은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그는 거울 앞에 있는 통에서 길다란 붓 하나를 꺼내 들었다. 유화를 그리는 화가가 사용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는 그 붓에 통 속에 담긴 비누거품을 묻히더니 내 머리의 뒤와 옆 머리털이 난 경계선을 따라 섬세하게 거품을 칠했다. 면도할 자리에 미리 거품을 바르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이발이라는 건요, 머리를 깎는 게 아닙니다. 만들어 가는 거죠. 저는 어려서 이발소 급사로 취직을 해서 석탄을 때고 물 길어 오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때는 이발사들이 절대로 자기 가위나 면도칼을 만지지 못하게 했죠. 그랬다가는 맞아죽는 겁니다. 저는 다른 꿈은 꾸지 않고 최고의 이발사가 되겠다고만 마음먹었어요. 내 나이 칠십이 넘었는데 이제는 나만큼 머리를 많이 깎아 본 사람도 없을 거예요.”
  
  “정말 다른 꿈이 없이 이발사 하나만 인생의 목적이었단 말이예요? 소년 시절이나 청년 시절은 부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배우고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들이 있잖아요?”
  
  내가 되물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거울 옆의 벽 사이에 끼어있던 낡은 스크랩북을 꺼내 들고 내 앞에 펼쳐보였다. 시멘트 포장지로 쓰던 낡은 종이를 잘라 그 위에 흘러간 영화의 배우들의 흑백사진들을 밥풀로 붙인 스크랩북이었다. 오륙십년대 가난하던 시절 그렇게 스크랩북들을 만들었다. 찰톤 헤스톤, 율 브린너, 록 허드슨, 존 웨인이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스크랩북을 보는 그의 시선에 순간 아련한 안개가 끼는 느낌이었다. 그가 설명했다.
  
  “이건 말이죠, 옛날의 포스터나 일본 잡지에서 오려붙인 거예요. 여기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오드리 헵번을 봐요, 얼마나 예뻐? 사실 저는 소년 시절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이발관 심부름꾼을 하면서 남몰래 무허가 연기학원에 가서 열심히 연습을 하기도 했죠. 한달 번 돈을 몽땅 바쳐서 말입니다. 육십년 대는 미남이 아니면 배우가 되기가 불가능했어요. 연기만으로는 안 되더라구요. 그 다음에는 춤꾼이 되고 싶었죠. 그래서 탱고, 왈츠, 지루박 전부 배웠죠. 춤 경연대회도 나갔어요. 그런데 그거 제비나 날건달로 취급하고 누구 하나 인정해줍니까? 꿈을 다 접고 이발사로 돌아와서 그 기술로 일생을 마치자고 하면서 이 길을 온 거죠.”
  
  그의 얘기를 듣는 순간 마치 수채화 같은 예술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제자들은 안 키우세요?”
  요즈음은 이발사가 귀하다. 내남없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경우가 많다.
  
  “키운 놈이 몇이 있긴 한데 아직 멀었어요. 아직 인간이 덜 됐기 때문이죠. 그런 놈들은 제자라고 할 수 없어요. 좀더 된장 고추장맛 같이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해요.”
  
  “왜 그런 말씀을 하죠?”
  내가 되물었다. 이발사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 같았다.
  
  “이발사가 됐으면 힘이 들어도 이발 기술 하나로 승부를 봐야 되요. 젊은 놈들에게 정성을 들여서 내 기술을 전수해 줬는데 이발은 하지 않고 엉뚱한 짓들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변태영업을 하려는 거예요. 그런 놈들에게 내 기술을 전수한 게 아까워요. 이발은 하지 않고 다른 짓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하니까 이 기술자들이 씨가 말라버리죠”
  
  오래된 작두같이 생긴 면도기로 그가 비누거품을 따라 면도를 하고 나서 뜨거운 타올로 머리를 감싼 채 자기 작품인 듯 가슴에 꼭 안았다.
  
  “자, 손님 머리를 다 깎았습니다.”
  그가 허리를 공손히 숙이면서 말했다.
  
  “그 연세면 다른 사람들은 다 집에서 쉴 나이신데 저녁시간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내가 물었다.
  
  “낮이면 일을 하느라고 즐겁고 밤이 되면 일주일에 두세 번씩 콜라텍에 갑니다. 술 안 먹고 즐겁게 춤추며 놀 수 있으니까요. 젊어서 배워두었던 춤이라는 거 정말 좋은 겁니다. 집사람이 오래 전에 죽고 혼자 살고 있는데 춤 때문에 외롭지 않게 살아요.”
  
  사정이 있어 그 작은 이발관을 다니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 다시 가 봤다. 다른 중년의 이발사가 머리를 깎고 있었다. 오래 하던 그 영감님은 일을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 후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좀 특이했다.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냄새나는 머리를 감겨주던 천한 대접을 받는 일이었다. 그가 머리를 깎아주던 노무현 대통령은 죽었다. 미국의 미남 배우들도 미녀 배우들도 거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은 즐겁게 일하고 춤추는 그가 가장 행복한 주인공이 아닐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0-10 10:15   |  수정일 : 2017-10-1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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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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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 2017-10-19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0
갑자기 숙연해지네요...
뭔소릴  ( 2017-10-10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0
하고 싶은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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