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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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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어? 망신당한 기억만 나네.”

“내가 돈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그들의 경험을 듣고 싶어.”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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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軍판사를 몇 년 한 적이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형을 선고해야 하는데 밤이 늦도록 결정을 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사건 기록들은 하나하나가 시험문제 같았다. 중형을 선고할 때면 막막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법대 위에서는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이 잘 보였다. "살려 주세요" 하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기도 하고 증오의 눈빛이 깨진 유리조각 같은 사람도 있었다. 살려 주세요 해도 못 살리는 경우가 있었고 미워해도 그걸 감수해야만 했다. 나는 판사는 절대 할 게 못된다고 생각했다.
  
  시국사건이나 종교사건을 만날 때면 내게 역사지식이나 철학의 빈곤을 느꼈다. 며칠 전 오랜 판사생활을 하다가 로스쿨 교수로 전직한 친한 친구가 사무실로 놀러왔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고시에 합격하고 삼십대에 지방의 법원장을 두 번이나 한 수재였다. 그의 법정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젊어도 그는 타고난 판사인 것 같았다. 피고인들이 아무리 중언부언(重言復言)해도 미소를 지으며 귀를 기울였다. 구경하는 사람이 들어도 짜증이 나는데 그는 조금도 흔들리는 경우가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원의 재판장으로 있을 때 그를 천사 재판장이라고 했다. 그가 있는 판사실이 1004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와 사무실 근처의 김치찌개 집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판사생활을 하면서 어떤 순간이 가장 즐거웠어?”
  내가 끓는 김치찌개의 국물에 라면을 넣으면서 물었다.
  
  “별로 그런 순간이 떠오르지 않네. 판사라는 지위 때문에 남들과 거리를 두고 일생 방에 갇혀 있었지. 재미없었어. 항상 처신을 조심해야 하고 소통이 없는 삶이었어. 판사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데 무슨 재미가 있었겠어? 오히려 망신당한 기억만 나네.”
  뭐가 뇌리에 떠올랐는지 그가 씩 웃었다.
  
  “뭔데?”
  내가 되물었다.
  
  “여주법원의 원장을 할 땐데 톨게이트 부근에서 교통경찰한테 걸려 딱지를 떼게 됐어. 법원장인데 좀 봐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가벼운 걸로 봐드리겠다고 하면서 스티커를 한 장 주더라고. 그걸 자동차 대시 보드 안에 넣고 잊어버린 거야. 어느 날 법원 사무국장이 나한테 와서 원장님 큰일 났다는 거야. 원장님이 우리 법원 즉결심판에 넘어와 있다는 거야. 경찰에서 벌금을 내지 않으니까 노상방뇨로 즉결심판에 넘겼다는 거지. 그때야 생각이 나서 경찰이 줬던 스티커를 찾아보니까 내가 길거리에서 오줌을 싼 것으로 한 거야. 그게 벌금이 가장 싸니까 그렇게 했던 것 같아. 아래에 데리고 있는 판사한테 톡톡히 망신을 당한 셈이지.”
  
  “그러면 판사생활이 하나도 안 좋았어? 사회에서 그렇게 대접을 해주는데 말이지?”
  내가 다시 물었다.
  
  “판사를 처음 시작할 때 과분한 대접을 받고 으쓱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게 일상이 되니까 둔감해지더라구. 나중에는 대접받는다는 걸 전혀 느끼지를 못해. 진짜 좋기는 우리 어머니가 좋으셨을 거야. 아들이 판사라고 자랑하고 다니셨으니까. 어려서부터 공부를 좀 하는 바람에 명문학교를 나오고 판사가 되는 걸로 효도를 한 셈이지. 자식을 키워보니까 이제 그건 알겠어.”
  
  “요즈음 교수생활은 어때?”
  “교수를 해보니까 이것도 절간 같은 생활인 것 같아. 혼자 교수실에서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듣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거야.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말하고 싶은데 팔자가 그런가 봐.”
  
  인생도 숲과 같은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면 숲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헐렁한 나무들만 서 있다. 판사실도 교수실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적막감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가 살면서 놓친 게 뭘까?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게 무엇이어야 할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맛있는 걸 함께 먹는 거지. 기본적으로는 가족이고 그 다음은 좋은 친구들이고 만나는 여러 사람인 거지. 나는 그게 진짜 즐거움이고 쾌락이라고 생각해. 내 와이프는 이미 그 길로 들어선 지 오래야. 남편인 나는 와이프한테 삶의 질에서 한참 밀리는 형편이지.”
  
  “와이프가 어떤 길로 들어섰는데?”
  “와이프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어. 십년 전부터 서울시에 소속된 문화센터에 가서 노인들에게 가곡을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있어. 돈 한 푼 받지 않는데도 즐거운가 봐.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나가는데 얼마 전에는 사십대반 오십대반도 새로 편성했다고 하더라구. 남편인 나하고 같이 여행을 할 시간도 없다니까.”
  
  부(富)나 지위는 생활의 일부가 되면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인 것 같다. 예전에 판사실에 들렀을 때 법관생활을 오래한 고교 선배가 넋두리같이 이렇게 말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돈이 더 있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싶어, 그리고 그 사람들이 경험한 세상을 얘기 듣고 싶어. 그런데 돈도 없고 이렇게 판사실에 갇혀 있어.”
  
  세상은 그런 판사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8-30 10:08   |  수정일 : 2017-08-3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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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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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말을  ( 2017-08-31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0
하고 싶은 거냐? 동일범죄에 동일형량만 책에 써놓고 준수하면, 판검변호사가 뭔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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