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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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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하는 일본 비판은 무조건 옳은가?

고교시절 애들 삥뜯는 불량학생의 일본에 대한 욕설을 듣고 떠올랐던 생각

글 |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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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휴게시간만 되면 워크맨을 꺼내 헤드폰을 끼고 뭔가를 열심히 듣는 친구가 있었다.
 
나 : “뭘 그렇게 열심히 듣냐?”
걔 : “안전지대”
나 : “뭐?”
걔 : “안전지대. 일본 밴드야. 진짜 죽여. 들어볼래?”
 
친구가 내민 헤드폰을 귀에 대자 일본어 노래가 흘러나온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일본노래였다. 일본 대중문화가 금지되어 있던 때였다. 일본 노래는 북한 노래만큼이나 생경한 존재였다.
 
당시 헤비메탈, 락에 빠져 기타치고 밴드 만들어 공연 한답시고 껍죽대던 때였다. 한국 가요는 유치해서 웬만해선 무시하고 들국화, 김현식, 시인과 촌장 정도나 들을만 하다고 잘난 척 하곤했다. 나름 음악 듣는 수준이 높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 들은 일본 노래. 아아.. 인상적이었다. 이제껏 미영의 팝송이건 국내 가요건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감성과 세련됨이 있었다. 그 노래가 “유메노 츠즈키”라는 노래였다. 안전지대의 초기 대표작이다. 멜로디의 서정성과 보컬인 다마키 코지의 절묘한 보이스 콘트롤, 연주의 완성도는 지금 들어도 감동적이다.
 
이후, 어찌어찌해서 안전지대의 앨범을 구해 나도 들었다. 들을수록 매력적이었다. 듣고 또 들었다. 아니 이건 팝송과는 또 다른 차원의 완성도였다. 이런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는 사람들이 궁금했고 호감을 느꼈다.
 
같은 반에 아주 불량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허구헌날 애들 삥뜯고, 어디 나이트 다닌다고(진짠지 뻥인지도 모르지만) 자랑질을 하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어느 날 교실 뒤쪽에서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본노래 듣는 ××들이 제일 재수없어. 다 죽여버려도 시원찮은 쪽발이 노래 듣는 쓰레기 ××들.”
 
뭔 맥락도 없이 그냥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라 누구한테 한 말인지도 몰랐다. 아마 반에 일본 노래 듣는 애들이 모여 일본 밴드 누가 좋다, 어느 가수가 예쁘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걔네들 들으라고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한 얘기인 듯했다.
 
그때 뭔가 이상한 부조리 같은 것을 느꼈다. 자신의 행동거지와 삶은 개차반이면서 일본노래를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를 재수 없는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뭐 이런 생각이었다.
 
당시 일본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안전지대’ 라는 밴드의 음악성과 실력에 매료되어서 일본 노래를 듣기 시작한 나로서는 내 생각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정리되지 않은 희미한 한 줄기 생각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과거의 민족적 원한이 있으면 음악을 음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인가? 문화는 정치의 하위개념인가? 예술은 국민 정서에 종속되어야 하는가? 등등의 의문이었다.
 
그와 함께 느낀 또 하나의 위화감은, 국가·민족이 전제되면 타자를 비난하는 것에는 자격이 필요없는가?.. 라는 것이었다. 일본 노래를 듣는다는 것만으로 개차반같은 녀석한테 쓰레기라고 욕을 먹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웠다.
 
안전지대의 노래는 내게는 ‘일본노래’이기 이전에 ‘노래’였다. 아름다운 선율, 목소리, 연주가 담긴 예술정신의 표현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어떠한 울림이 전해지건, 그 울림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니.. 더구나 나보다 사회에 더 도움이 안되어 보이는 놈도 이때만큼은 사회적 지지를 받으며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다니..
 
한일관계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민감성, 복잡성, 모순을 희미하게나마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어린 고교생이지만,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한 덕분에 그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나름의 답이 머리 속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내린 답은, “역사는 역사대로 외교는 외교대로 챙길건 챙기고 따질건 따지되, 사람이기에 사람을 향해 자연스럽게 느끼는 공감대, 호감, 유대감의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서로를 향한 감정을 분노와 적개심의 포로로 만드는 사람들이야말로 비난의 대상이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한일 양국에 모두 해당하는 얘기다.
 
이후 실제 한일관계의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직업을 갖기도 했지만, 고교 때 내린 답 이상 가는 답을 찾지 못했다. (나름 조숙한 아이?)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7-13 09:40   |  수정일 : 2017-07-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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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1996년 제 30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근무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핵안보정상회의 의전과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했다. 2012년 일식 우동에 반해 외무부를 퇴직하고 현재 기리야마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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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  ( 2017-07-13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0
안전지대의 노래는 2000년대 이후로 한국에서 다수 리메이크되어서 인기를 얻었는데, 일본대중문화 유입이 금지되었던 80년대 당시부터 안전지대의 노래를 듣고 계셨군요. 지금 들어도 세련된 감성의 발라드들이 많은데, 그 당시에는 얼마만큼의 충격이셨을지 참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의 90년대 발라드들이 안전지대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아왔다고 평가받는데, 한편으로는 끝없이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끝없이 증오하는 이런 극단적인 양가감정이 우리 사회에서 언제까지 지속될런지 참 안타깝네요.
정병수  ( 2017-07-13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1
진심으로 공감 합니다.
김병헌  ( 2017-07-13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2
아이들에게 맹목적 반일 감정을 심어주는 1등 공신은 뭐니뭐니 해도 현행 한국사 교과서입니다. 사실 관계를 왜곡하면서까지 반일 감정을 조장하고 있으니, 교과서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반일 감정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왜곡과 오류로 도배한 검정 교과서부터 폐기시키고 사실 관계에 입각한 정확한 역사를 가르칠 수 있는 교과서를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조승종  ( 2017-07-13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2
월간 조선에 연재하고 계신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지난 주 일본 동북 아이즈번 지역 또 그곳에 있는 백호대 자결터 등을 여행할 때 연재하신 글들을 모아갖고 갔지요. 많이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위에 기고하신 내용에 많이 공감합니다. 일본에 대한 냉정한 분석 없이 감정이 먼저 앞서는 한국, 이것도 연구 대상입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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