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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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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연설은 역사적 사실 오인과 착각에 기초한 내용

글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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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5일 오후(현지시간) 베를린 총리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독 정상 만찬회담 언론발표를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G20 정상회의 참가차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길에 7월6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을 통해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밝힌 대북정책 발언을 놓고 국내의 ‘지록위마(指鹿爲馬)’ 부류(部類)들이 ‘신 베를린 한반도 평화 비전’이라고 야단법석하고 있지만 필자가 그 전문(全文)을 읽고 느끼는 소감(所感)은 1970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평화통일 기반조성 구상’ 연설 이래 역대 대통령들이 거론했다가 북한으로부터 퇴짜를 맞아서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진부(陳腐)한 ‘아이디어(?)’들을 꺼내서 수퍼마켓 전시대처럼 두서없이 진열해 놓고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횡설수설(橫說竪說)을 늘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드러난 기본적인 오류(誤謬)는 독일의 통일 과정을 “브란트(Billy Brandt) 총리가 첫 걸음을 떼고 콜(Helmut Kohl) 총리가 완성한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입각하여 이것을 벤치마킹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역사적 사실은 그같은 문 대통령의 인식과 일치하지 않는다. 1972년 양독(兩獨) ‘기본조약’(Basic Treaty) 체결로 대미(大尾)를 장식한 브란트의 ‘동방정책’(Ost Politik)은 ‘통일’을 일단 ‘숙제’로 젖혀두고 우선 양독 간의 ‘평화공존(平和共存)’을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통일’을 ‘유보’한 ‘분단관리’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단순히 ‘분단관리’만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구호 아래 '동독의 체제 변화'를 적극 도모했던 것이다. 1990년 10월에 이루어진 독일의 ‘통일’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서독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사로 동독이라는 국가를 해체하고 서독 기본법 제23조에 의거하여 동독 6개 주의 서독으로의 편입을 선택”한 동독의 주도로 이루어진 ‘통일’에 콜의 서독이 편승(便乘)한 것이었다.   
 
1989년 동독의 안으로부터의 붕괴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독일 통일의 과정은 서독과 ‘공산 동독’ 간의 통일 협상의 산물(産物)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콜 수상이 1989년 11월28일 '유럽과 독일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10개 조항'이라는 이름의 ‘통독 방안’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콜 수상은 이때 문제의 ‘10개 항목’을 가지고 ‘공산 동독’과 즉각 협상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콜 수상은 ‘10개 항목’에 관한 양독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복수 정당이 경쟁하는 민주적 선거 실시를 통한 진정한 민주정부의 수립”을 내용으로 하는 ‘동독의 민주화’를 요구했다.
 
콜 수상의 이 같은 ‘전제조건’을 마지못해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동독에서 1990년 3월 복수 정당이 참가하는 자유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총선거에서 공산당의 득표가 한 자리 수로 축소되고 반공 정당들이 80%에 가까운 득표에 성공하여 ‘반공 변호사’ 디메지에르(Lothar de Maziere)가 이끄는 ‘반공 정부’가 수립되자 콜 수상의 서독은 비로소 ‘반공 동독’을 상대로 ‘통일 헌법’ 협상을 벌여서 같은 해 10월3일자로 동독 6개 주가 서독에 편입하는 형태의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89년 여름 동독 주민의 ‘대탈주’(Exodus)가 시작되고 동독의 내부로부터의 붕괴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할 때도 서독의 국론은 아직 임박하고 있는 독일 통일을 실감(實感)하지 못하고 있었다. 콜 총리의 위대성은 유독 그만이 임박하고 있는 동독의 붕괴를 예감(豫感)하고 문제의 ‘10개 항목’ 제안에 ‘동독의 민주화’ 요구라는 ‘신(神)의 한 수’를 가일수(加一手)하여 동독 체제 붕괴의 가속화를 촉진했다는 데 있었다. 이 같은 역사를 직접 체험한 당사자들인 독일 국민들을 청중으로 하는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외쳤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그의 무식과 무지를 만천하에 과시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실제로 전개된 독일 통일의 과정은 한 마디로 ‘동독의 붕괴’가 선행(先行)됨으로써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고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통일의 내용은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이 아니라 '동독에 의한 피흡수통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문 대통령이 독일의 통일 과정을 정확하게 숙지(熟知)하고 그 연장선 위에서 이번의 베를린 발언을 구상한 것이었다면 그는 이번 연설에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을 향해 무엇보다도 “우선 노동당 일당 독재를 청산하고 복수 정당제에 입각한 민주적 선거를 통하여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민주화부터 먼저 단행하라”고 단호하게 요구하는 것이 마땅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연설에서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을 언급한 대목은 이 또한 현실을 도외시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망언(妄言)이다. 도대체 문 대통령은 어떠한 인식에 입각하여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을 운운 하는 것인가? 문대통령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스스로 자문(自問)해 보아야 한다. 북한은 이미 ‘자생력(自生力)’을 상실한 ‘실패한 국가’이고 그 원인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국가 생존의 절대적 덕목(德目)인 ‘체제 경쟁력’을 상실한 데 있다. 오늘날 국제적 평가기관들의 평가에 의한 북한의 ‘체제 경쟁력 지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평가 대상 국가들 가운데서 최하위(最下位)를 면치 못하고 있다.  
 
‘스탈린 식 공산당 일당독재’가 원형(原型)이었다가 그동안 시대착오적인 ‘세습(世襲) 전제왕조(專制王朝)’로 변질된 북한의 정치체제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전체주의 구호 아래 모든 주민의 권리와 자유를 국가가 몰수(沒收)한 ‘동물농장’ 식 ‘수용소군도’(Gulag Archipelago)로 변모해 있고 그 과정에서 당초 거의 모든 천연자원의 독점적 부존(賦存)은 물론 전력(電力) 및 공업기반의 편재(偏在)에 힘입어 남한을 압도했던 북한의 경제는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의 ‘경쟁력’ 상실로 난파(難破)하여 복원력(復元力)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 된 것이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 체제의 안전 유지를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결딴난 체제’를 뜯어 고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일 터인데 도대체 덮어놓고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필자는 문 대통령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 대통령의 말은 대한민국이 북한의 독재 폭정을 용납하고, 인권 탄압을 용인하며, 전체 북한 주민을 노예화하여 수탈하는 것을 묵인하겠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북한의 경제적 파탄도 방치함으로써 그 결과로 초래되는 북한 동포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북한을 상대로 ‘평화’를 구걸하겠다는 것이 아닌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그의 베를린 연설에서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 방안으로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한 것 같다. 그러나, 문제의 베를린 연설에서 거론된 ‘평화협정’ 대목을 가지고는 문 대통령이 말하는 ‘평화협정’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문 대통령이 여기서 ‘평화협정’을 언급한 것은 북한과 북한의 우방(友邦)인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거론하는 과정에서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한 일종의 화답(和答)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지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문 대통령은 ‘평화협정’ 문제에 관해서도 중대한 사실의 착각과 인식의 착오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에서의 ‘평화협정’은 그 연원(淵源)을 6·25 전쟁에 두고 제기되는 문제이다. 지금 ‘정전(停戰)’이라는 ‘비전비화(非戰非和)’의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6·25 전쟁을 완전하게 종식시켜 '전쟁 이전 상태'(status quo ante)로 돌아가는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말하는 것이다. 6·25 전쟁의 ‘주당사자’는 침략자인 북한과 피침략자인 대한민국이다. 6·25 전쟁은 전쟁 진행 과정에서 대한민국 쪽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16개 유엔회원국 군대가, 그리고 북한 쪽으로는 중공(中共)군이 참전하는 국제전쟁으로 확대되었지만 이들 외국군은 각기 남북한 쪽의 ‘지원군’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6·25 전쟁의 경우, ‘전쟁’의 ‘주당사자’는 남북한이고 ‘평화’의 ‘주당사자’도 당연히 남북한이다. 그러나, 1953년 휴전 이후 북한은 줄곧 대한민국을 ‘미국의 괴뢰(傀儡)’라고 터무니없이 매도(罵倒)하면서 대한민국이 배제된 미국과 북한 간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고수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한 논의를 가로막아 왔다. 이 같은 북한 주장의 또 하나의 논거는 1953년 7월27일 체결되어 발효된 ‘군사정전협정’의 유엔군측 서명자가 클라크(Mark Clark) 미 육군대장이었기 때문에 이 협정이 미국과 북한간의 협정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이를 대체할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미국과 북한이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북한측 주장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부당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미국의 괴뢰국'이라는 북한측 주장의 부당성은 입에 담을 만한 가치도 없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유엔군측 서명자 문제에 관한 북한측 주장의 부당성 또한 너무나 자명(自明)하다. 문제의 ‘정전협정’은 ‘국가’간에 체결된 조약이 아니라 ‘교전 쌍방’의 ‘야전 지휘관’들 사이에 '전쟁의 종식'이 아니라 '전투 행위의 중단'을 위하여 체결된 것이었다.
 
당시 클라크 대장은 미군 장성의 입장이 아니라 ‘유엔군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그가 통합 지휘하는 참전 16개 유엔회원국과 한국군을 대표하여 서명한 것이었다. 따라서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회복'을 위한 ‘평화협정’의 ‘주당사자’는 당연히 ‘전쟁’의 ‘주당사자’였던 남북한의 몫이 아닐 수 없다.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원했던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측의 16개 참전국과 북한을 지원했던 중공(지금의 중국)이 맡아야 할 역할은 당연히 ‘배석(陪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평화협정’ 문제에 관해서는 문 대통령이 확인해야 할 중대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남북한간에는, 비록 ‘평화협정’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평화협정’에 담겨져야 할 사항들이 망라된 합의문서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1972년 2월19일자로 남북한이 각자의 필요 절차를 충족시킨 뒤 합의, 공표하여 발효시킨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남북기본합의서>)가 그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 합의서가 ‘최고인민회의’와 김일성(金日成)의 ‘비준(批准)’를 거친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공표·발효되기 무섭게 이의 이행을 거부하여 사문화(死文化)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를 통해 드러난 북한의 의도는 명백하다. 북한이 대한민국이 배제되는 미국과 북한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하는 이유는 북한의 노림수가 ‘평화’라는 ‘염불(念佛)’에 있지 않고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연합작전체제 해체’ 문제를 거론하여 ‘한미동맹’을 파괴하는 ‘잿밥’에 있기 때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 연설에서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하기를 원했다면 그는 그에 앞서서 이상과 같은 ‘평화협정’ 논의의 전말(顚末)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한편 미국과도 사전 협의를 통하여 조율(調律)했어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이번 베를린 연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그 같은 준비가 이루어진 흔적(痕迹)이 전혀 없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작금의 한반도 안보 상황 속에서는 문 대통령의 베를린 연설 내용의 어느 부분에 대해서도 북한측의 긍정적 반응의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만의 하나, 북한이 문 대통령이 거론한 ‘평화협정’ 문제 논의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대꾸해 나온다면 문 대통령이 이끄는 지금의 정부는 ‘평화협정’ 문제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주도하지는 못한 채 북한측의 선전선동에 농락당하는 데 여념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생각나는 해프닝이 있다. 1972년 11월 초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회의’에 참가하는 도중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의 문안을 놓고 북측의 카운터파트인 전금철(全今哲·사망)과 이틀 밤에 걸쳐 철야 협상을 하는 도중에 있었던 일이다. 필자는 합의서의 문안 가운데 ‘합작(合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는 전금철의 고집을 놓고 끝없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갑자기 전금철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 선생, 공산주의에 반대하면 민족단결에 반대하는 것이고 민족단결에 반대하면 통일에 반대하는 것이니까 공산주의에 반대하면 통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순간 필자는 잠깐 아찔함을 느껴야 했다.
 
오늘의 시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북측의 김정은(金正恩)이 같은 질문을 한다면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꾸할 것인지 궁금하다. 필자는 금방 이 질문이 ‘3단논법’을 이용한 말장난이라는 것을 간파(看破)했고 전금철에게 역질문(逆質問)을 던졌다. “나도 질문을 하자”면서 “공산주의를 주장하면 민족단결이 안 되고 민족단결이 안 되면 통일이 안 될 것이니까 공산주의를 주장하면 통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은 것이다. 둘 사이의 말씨름은 여기서 파장(罷場)이 되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7-12 14:16   |  수정일 : 2017-07-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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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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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  ( 2017-07-13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12
대체 왜 이러세요?
지금 상황에서 이러는게 국가에 뭔 도움이 되죠?
정말 싫다
      답글보이기  너도  ( 2017-07-14 )  찬성 : 2 반대 : 0
트럼프 치자는데 마작돌덩이 꺼내는구나.
청와대  ( 2017-07-12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0
까마귀들아, 백로를 모셔다가 교육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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