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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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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 부작용 수술로 시력을 잃었던 한 달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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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DB

나는 수술대 위에 누워있다. 겁이 난다. 정말 지독히도 운이 나쁜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의사는 백내장 수술은 아무것도 아닌 듯이 말하면서 천 명에 한 명가량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런데 그 한 명이 바로 나였다. 글씨가 쐐기 모양으로 일그러져 보았다.
 
큰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내가 보는 앞에서 주사기 바늘을 눈에 박았다. 눈으로 다가오는 바늘을 보면서 고문이라도 받는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시 부작용이 생겼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의 윤곽 일부가 흔들리면서 증발하는 모습이었다. 머릿속이 실타래가 꼬이는 것 같이 복잡한 느낌이 왔다. 수술한 병원에 갔더니 담당의사는 자기 실력으로는 안 되니까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가 설명했다.
 
  “수정체에는 가는 실들이 발같이 달려있어요. 그게 수정체가 눈동자의 가운데 정확히 있게 하는 기능을 하는 거죠. 그런데 거기에 이상이 생겨서 수정체가 내려앉은 겁니다. 이제 그 실을 눈알 쪽으로 빼내서 눈에 아예 묶어 버릴 겁니다.”
 
  말만 들어도 끔찍했다. 내 눈알을 가지고 바느질을 한다는 소리같이 들렸다. 눈에 바늘이 들어오는 걸 보는 건 고통이었다. 나는 전신마취를 해달라고 사정했다. 의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면서 꿰매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공포가 더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마취를 시작합니다.”
 
  의사가 선언하고 눈알에 약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면도날이 스치는 듯한 통증이 스치면서 깊은 물 속에 들어온 듯 시야가 변했다. 각막을 드러낸 것 같았다.
 
  “이 수술은 백내장 수술보다 백 배쯤 힘든 겁니다.”
 
  의사가 눈알에 뭔가를 붙이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세상이 파랗게 변했다. 십 년 전 백내장 수술에 이상이 생겨 큰 병원에 갔을 때 다시는 수술을 받기 힘들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힘들 것이라는 수술을 다시 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의학적 발전의 덕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다시 이렇게 수술을 받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시력을 잃는 것보다 수술은 다시 볼 수 있는 희망이었다. 하늘에서 눈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현미경같이 생긴 안과 수술기계에서 나오는 빛 같았다. 속으로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 밝은 빛 속에 한 달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감색 한복을 입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하나님한테 이 수술 잘되게 해 달라고 부탁해 줘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전에 수술을 할 때 어머니가 옆에서 꼬박 기도해 주었었다. 수술을 하면서 의사가 말한다.
  “그동안 사용하시던 수정체를 그냥 쓸려고 했는데 안되겠습니다. 제가 표준품인 새 걸로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자동차 부품을 갈아 끼듯 쉽게 말한다.
  “팅, 팅”
  가는 명주실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눈알을 꿰맨 실이 끊어지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치지직’ 하고 뭔가 타는 소리도 들렸다.
 
  “이거 왜 이래 사전에 준비를 잘하라고 했잖아?”
  의사가 옆의 레지던트를 질책하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긴장하고 있다. 나는 겁이 덜컥 난다. 이러다가 시력을 잃는 건 아닐까. 의사들이 슬리퍼를 끌고 수술실 위를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금속 수술 기구들끼리 부딪치는 메마른 소리가 났다.
 
  “수술이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보실 수 있으려면 한 달은 기다려야 할 겁니다.”
  의사가 선언했다.
 
  2
 
  눈알이 부어서 절간 입구에 보이는 화엄신장 같이 튀어 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화면 속에서 모래가 위에서 한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알 속에 여러 개의 좁쌀이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수술한 실밥인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그걸 떼내기 위해 손길이 갔다. 눈꺼풀이 그곳에 닿을 때마다 파란 불꽃이 이는 것 같이 따끔거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누운 채 시간이 갔다. 활자나 모니터를 보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긴지 처음 깨달았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인 채 정체되어 있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밤새 몸을 뒤척였다. 누워만 있으니까 허리도 아팠다. 멀쩡할 때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던 눈이었다. 생각해 보니 눈을 너무 혹사시킨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일같이 어둠침침한 만화방에 드나들었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면서 잠시도 쉬게 하지 않았다. 영양제 한 번 제대로 주지 않고 부려먹었다. 어떤 기계라도 그렇게 사용했으면 붉은 녹물이 흘러나왔을 것 같았다. 그 눈에 이상이 생기니까 세상이 없어졌다. 몇겹의 검은 썬팅을 한 것 같았다. 시간이 가지 않았다. 답답했다.
 
  ‘이럴 때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나는 벽에 기대 앉아 마음의 눈길을 내면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너는 안 보일까봐 벌벌 떨고 있지?’
  내가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그렇지.’
  ‘한번 생각해 봐. 왜 너만 아니어야 하는 거지?’
 
  나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 고통이 닥칠 때 ‘왜 나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속에서 또 다른 내가 밖의 나에게 묻고 있었다.
  ‘왜 너만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 거야?’
  ‘그건 그러네, 내가 뭐라고.’
 
  뇌리에 떠오르는 죽은 친구의 모습이 있었다. 그가 30대 초경 머릿속의 뇌수가 흐르는 미세한 관을 몸속에 떠돌아 다니던 기생충의 알이 막았다. 뇌압이 올라가자 그는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고 했다. 뇌수를 흐르게 하기 위한 수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시신경이 잘못되어 그는 시력을 잃었다. 그의 인생이 허물어져 버렸다. 그의 아내는 앞을 못 보게 된 남편에게 밥을 떠먹이면서 빨리 30년이 흘러버리면 좋겠다고 저주를 했다. 친구는 내게 자살을 하려고 더듬거리면서 벽에 혁대를 걸어 목을 맸는데 혁대가 끊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고 했다. 그 순간 너무나 아팠다고 했다. 은총인지 저주인지 그에게 암이 겹쳐서 덮쳐왔다. 그 친구는 암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 착하고 성실한 친구였다. 같이 법대를 다니고 법무장교 생활을 했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빨리 그리고 힘들게 데려가시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게 세상이었다. 나라고 그렇게 되지 않는 예외이어야 할 이유를 나는 찾을 수 없었다. 나도 이제 보이지 않을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돌이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육십대 중반이면 살만큼 살아왔지. 아들딸도 다 자랐고 집착할 가질 만한 재산도 명예도 아무것도 없는데 왜 너만 죽으면 안 되는 거지? 죽는다고 해도 세상은 전혀 지장이 없이 잘 돌아갈 텐데.’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 심연에 있는 존재가 부연해서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네가 지금 인생을 마감하나 십년 후에 마감을 하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신의 입장에서는 요절한 청년이나 백살을 산 노인이나 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나만 아프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살아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나만 아니어야 할 까닭이 전혀 없는 존재였다.
 
  3
 
  침대 옆의 병풍 속 오리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벽에 붙은 디지털 시계의 붉은 글자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환희였다. 하나님이 빛을 다시 주셨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 주는지 몰랐다. 볼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시력을 회복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 시야가 비가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앞에서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뿌옇게 보이는 세상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눈과 인간이 만들어 주는 눈은 질에 차이가 있었다. 색도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감사하다. 딸 정아가 손녀와 손자를 데리고 병문안을 왔다. 열 살짜리 손녀 다미는 오자마자 식탁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 네 살짜리 손자 태윤이는 내 방 옆에 있는 리모컨을 가지고 와서 “할베이, 어어” 하며 텔레비전 어린이 프로를 켜달라고 한다. 백발의 아내는 주방 식탁 앞에서 조용히 성경을 읽고 있다. 내가 다시 보고 싶던 아름다운 광경이다. 성경 속에서 소경을 데리고 들에 나가 예수가 진흙에 침을 썼어 소경의 눈에 바른 후 묻는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 내게 뭐가 보이느냐?”
  “뿌연 안개 속에 나무들이 어른거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세상을 보아왔는지도 모른다. 성경 속의 예수는 다시 소경의 눈에 침을 바른 후 묻는다.
  “이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느냐.”
  소경에서 명확한 세상이 보이고 있었다. 주님은 나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을 제거하고 바른 세상을 보게 해 주시려고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5-19 09:23   |  수정일 : 2017-05-1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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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매  ( 2017-09-14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0
공감대가 형성되는 강한 전율을 느겼습니다.힘내시고 조금만 기다리세요.믿음만큼 좋은결과 보실겁니다.백내장수술도가벼히 볼것은 아니군요!저도 같은 상황에있습니다.저는 고도근시로인한 황반변성이 와서큰병원으로 가봐야 할것같다고 의사가 말할때 정말겁이났었습니다.
추천서를들고 병원으로 가던중에 생각해보았습니다. 왜불행은 겹쳐서 따라다니는건지 ...얼마전 남편으로인해 수없이 사람들에게 쪼달리다 겨우 한가지해결을 보았는데,작년에 갑상선암 수술 할때 임파선으로 전이가 되서 왼쪽의임파선이 또 다시 속썩일까봐 아예 22개정도의 임파선을 떼어버렸다고ㆍ 했습니다. 수술하고 잠시동안 불편 했지만 내몸에서 자라고 있던 암세포를 모조리 긁어냈다니 오히려기분은 좋았습니다. 아 이제 회복만되면 평생동안 몇가지의 약을 먹어야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좀더 오랜시간을 함께할수 있다는 기쁨에조금은 흥분도 되었습니다. 퇴원후 내몸이 복용하는 약물에 적응하려면 일년이상 걸릴수 있다했습니다.그러나 결과는 아주 좋은듯했지요.매달 두번씩 서울을 오르내리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만 그정도는 내몸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지요!다섯시간 기차를타고 내려서 저철을타고 다섯정거장을 지나 내려서 다시전철을 갈아타고 병원에 도착하면 오직하는일은 채혈하고돌아오는일이었습니다.새벽밥을먹고 다섯시간기차타고 한시간동안 전철을두번갈아타고오는 나의 힘듦은 오분이면 모든것이 끝나 다시 저철타고 기차타고 집에오면 다 늦은 저녁이되고몸은 그야말로 녹초가 되어있었습니다.그렇게 매달 서울을오르내리며 수술한지 일년이 되던날에는 전체적인 여러검사를 하더군요.그후 일주일뒤에 진료예약이 잡혀 결과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왠일일까요? 외쪽 임파선에 작은 종양이 하나발견됬는데 두달후에 변이가있으면 조직검사를 해야겠다고 하셨습니다.아∼ 이렇게 서서히 죽음을향해 가고 있는 거구나! 생각하며 불안한 일상을하고 있던중 어느날 갑자기 왼쪽눈에 이상이생겨 모든 사물을볼때 반쪽쯤은 아니 그보다 좀더많이 물체가 조금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쳐다보면 눈도 하나, 코는 거의 없는 이상한 형쳬를 띠고 있었습니다. 또다시 동네 의사분의 추천서를들고 광주로 향했습니다.위에 쓰신글처럼 검사는 한시간 눈에주사를 놓는건 단 오분에 끝나더군요오른쪽 눈도 역시 시력이 안좋아 렌즈를 끼지못한채 더듬거리며 집으로돌아왔습니다.지금은 구월! 구월은 눈병원에가서 한달에 한번씩 맞는 그 주사를 맞으러11일에 가고 갑상선으로 인한 검사를위해 18일에 갔다가 19일 오전에 금식채혈을하고 오후에 조직검사를 해야했습니다 그리고일주일뒤인 27일에가서 정확한 검사결과를듵어야합니다.그날이 올때까지 하루하루가 불안한가운데 보내고 있다 9월11일에 광주로 눈에 주사맞으러갔다가 토다시 좋지않은 사실을 하나더 알게되었습니다.왼쪽눈망막에 이상한 막이 하나더 있다더군요.제거하는 수술을 해야하는데 현재 눈상태를 지켜보고 나서 수술날짜를 잡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보험설계사 일을 20 여년쯤 하고 있는데 작년 갑상선 수술을 한후로는 오전에 출근이 정말 어려웠는데 이제 구ㆍ월,시월은,제게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이 될것같습니다. 제가 한오년전쯤에 우연히 알게된 고황장해 증상 때문에 이시기를 넘기기가 더욱 불안하고 초조합니다.밤에도 잠을 자면 꼭 시간시간 잠이 깹니다. 아예 어떤날은 밤새 잠을 못자고 뒤척이다 잠을못이루고 제대로 잠을 이룬날도 보통네다섯번씩 잠이깹니다.며칠전에는 서울병워에 갔다가 골다공증 진단을 받고왔습니다. 진행이 되어버린....
모든 것이 힘이 듭니다.저도 혹시 알지못하는 주님의 은총을 받을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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