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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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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한국의 공민사회(civil society)...언론, 검찰, 헌법재판관들의 타락

⊙ ‘civil society’란 ‘자율적인 국민으로서의 공민(公民·citizen)이 이루는 사회’ 의미
⊙ 라틴어 ‘societas civilis’에서 비롯, 로크에 이르러 민주적·공민적 사회 뜻 확립
⊙ 현재의 상황은 문명적 공민사회를 떠받쳐야 할 엘리트 집단인 언론, 검찰, 헌법재판관들의
타락을 보여줘

유광호
1958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
연세대 강사, 이승만연구원 연구원 역임. 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한국자유회의 실행간사

글 | 유광호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 지난 3월 1일 광화문 등 서울 중심부에서는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참여자들 중 70~80대는 현대 한국의 공민 1세대에 해당한다.
촛불 시위를 주동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탄핵 인용 다음날인 3월 11일 ‘2017 촛불권리선언’과 ‘100대 촛불개혁과제’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들은 선언문에서 “촛불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의(代議)정치를 개혁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주권자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자코뱅주의적 인민주권론에서 나오는 직접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대의제로 평등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인 자유민주주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100대 과제 중 재벌체제 개혁, 공안통치기구 개혁, 노동기본권, 남북관계·외교안보정책 개혁, 언론개혁과 자유권 등만 보더라도 자유민주적 질서를 훼손하고 북한 권력에 이로우며 전체주의로 가는 고속도로를 까는 내용들이 무수하다. 이런 정책들을 과격 정파(政派)에서는 대선(大選) 공약으로 내걸고 있고 북한 전체주의는 《노동신문》을 통해 그 이행을 선동하고 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대통령 탄핵은 대통령에 한정되지 않고 ‘정책탄핵’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기존 안보·외교정책의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 요구에 불응하는 고위공직자들은 ‘부역자(附逆者)’라고 비난한다.
 
  부역자란 6·25공산남침전쟁 이후 나온 용어로서 ‘적방(敵方)에 대한 동조자’로 처단 대상이란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체제전복 세력의 대한민국 전복 전략은 공개적 차원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 즈음하여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사회적 기반인 ‘공민사회(civil society)론’을 살펴보고 그것이 처한 상황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시민사회’에 대한 오해
 
  한국에서는 비정부조직(NGO)을 ‘시민단체’라고 부르는 것과 맞물려 ‘시민단체들의 총체’를 ‘시민사회’라는 말로 불러왔다. 지난 30년 동안 ‘시민사회’는 좌경(左傾) 세력의 독무대였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그람시의 헤게모니 전략을 수용했다. 그것은 공민사회의 자발적 동의하에 헤게모니가 체제 측에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공민사회에 들어가서 진지전(陣地戰)을 벌여 헤게모니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의 지령도 있었지만 이에 따라 좌익학생 운동권은 우리 사회의 주요 분야들에 ‘투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civil society’를 ‘시민사회’라고 번역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그것이 ‘도시민의 사회’를 가리킨다고 오해해 왔다.
 
  ‘시민사회’라는 말과 관련해서 필자는 ‘정치담론에서 citizen을 왜 시민으로 번역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영한사전을 찾아보니 거기에도 ‘국민’이 첫 번째 뜻으로 돼 있는 데도 말이다. 미국 대통령이 “My fellow citizens”라고 하면서 연설을 시작하는데, 이것을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으로 통·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시민들만 보고 연설을 하는가? 아니면 ‘국민’이라는 말은 국가주의나 일제(日帝)가 쓰던 말이라서 민주주의 하는 미국이나 서구(西歐)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서구에서 그 역사에서 국가라고 하는 것의 의미와 실재, 그리고 공적(公的)인 것에 대한 서구인들의 중시를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하나의 짝을 이루어 왔다는 엄연한 사실과 개인의 이익의 총합이 국익(國益)이고 국익을 지키기 위한 민족주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소리 내어 외치지 않는다는 점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어의 번역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1980년대 말 이래 언론에서 쓰이기 시작하여 통용되고 있는 보수(保守)와 진보(進步)라는 개념은 사회주의적 과격 세력을 ‘진보’라는 좋게 들리는 말로 포장해서 그 위험성과 혐오감을 가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미국의 ‘리버럴(liberal)’을 ‘진보’로 마구 번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정확한 통시적(通時的)·공시적(共時的) 맥락을 모르면 오독(誤讀)을 하거나 음험한 의도에 속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기초적인 지식을 정확히 하지 않고 어긋난 의미에서 생각하고 주장을 펼쳐나가게 되면 그 괴리와 왜곡은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공민’이란 무엇인가
 
공민사회(societas civilis)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키케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civil society’와 그와 관련된 개념들의 의미를 어원과 사상사를 따져서 밝히고 옳은 번역을 제시한 작품이 사회학자 조혜인 교수의 《공민사회의 동과 서: 개념의 뿌리》다. 이 책은 구미(歐美) 학자들에게도 명확히 인식되지 않은 점들과 인식의 혼란을 일으키는 점들까지 밝힌 구미까지를 통틀어 가장 풍부하고 정확한 ‘civil society’ 개념에 대한 분석·정리라고 할 수 있다.
 
  ‘civil society’란 한마디로 국민이 자율성을 향유하는 사회를 가리킨다. 자율적인 국민으로서의 ‘공민(公民·citizen)’이 이루는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말은 그 어원(語源)이 고대 유럽에서 비롯되었다.
 
  어원을 살펴보면 ‘civil society’는 라틴어 ‘societas civilis’를 그대로 영어로 바꾸어 놓은 말이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이 말을 사용했었다. 거기서 ‘civilis’는 명사 ‘civitas’의 형용사가 되는 단어다. 라틴어 ‘civitas’는 ‘국민(civis, 복수 형태는 cives)’을 총체적으로 부르는 말이었다. 이 말은 그들이 이루는 ‘국가’라는 의미도 같이 지니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영어에서 ‘nation’이라는 말에 ‘전체로서의 국민’이라는 의미와 그들이 이루는 ‘국가’라는 의미가 함께 들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nation’도 ‘people’도 영어의 언어 체계상 국민 개개인을 가리킬 수는 없다. 그래서 개인으로서의 국민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citizen’이고 프랑스어로는 ‘citoyen’이다. 모두 어원이 라틴어고 그 본원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civitas’가 단순히 국민을 가리키는 것 이상으로 ‘자율성을 향유하는 국민’을 가리키는 맥락을 띠고 있을 경우에 ‘공민’이라는 번역이 적합한 것이다. 키케로가 ‘societas civilis’, 즉 직역해서 ‘civitas적 사회’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는 ‘공민적 덕성(civil virtue)을 지닌 사람들이 이루는 격조 높은 사회’라는 맥락에서 사용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하에서 모든 공민은 정부의 중요한 입법, 행정, 사법 활동을 일상적으로 수행했다. 폴리스(polis·로마의 civitas에 해당하는 말)의 모든 공민은 그대로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협의(狹義)의 국가’, 즉 광의(廣義)의 정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모두 포함한- 와 공민사회는 분리되지 않고 합일의 상태에 있었다.
 
  공민 서로를 하나로 묶어놓은 상태에서 철학자들은 ‘사(私·the private)’를 억누르는 ‘공(公·the public)’의 추구를 공민적 덕성으로 간주했다. 공민의 개인적 자유는 없었다. 마르크스는 국가와 공민사회의 이런 미(未)분화에서 분화로의 진화를 계급 분화와 착취 과정으로 보았고 그것을 다시 합일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이다.
 
 
  로크의 ‘civil society’
 
근대적 공민사회의 개념을 제시한 존 로크.
  공민사회는 근대 서구(西歐)에서 정부를 의미하는 국가에 대해 자율적인 사회로 의미를 일신하게 된다. 그 단초이자 과도 단계가 17세기 후반에 영국의 홉스가 ‘civil society’를 ‘국가를 갖춘 사회’, 즉 ‘문명사회’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17세기 말엽에 로크가 홉스와 달리 민주적인 국가를 갖추었을 때를 ‘civil society’라고 부름으로써 ‘민주적 사회’ 내지 ‘공민적 사회’를 의미하게 됐다. 로크는 결국 권력자 내지 그 정부를 입법기관을 통해 통제함으로써 법 앞에서 예외 없는 ‘공민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국가에 대하여 자율적인 공민사회’라는 근대적 분화와 그 근대적 의미를 드러냈다.
 
  국가에 대해 자율적인 근대 공민사회의 구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자유개념이었다. 로크는 자유란 국민의 합의에 기초하여 수립된 입법부에 의해 국민의 위임에 의거하여 제정된 법률 외에는 구속받지 않고 각자가 매사에 자신의 의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고 규정했다.
 
  그는 그러한 개인의 자유가 정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중대한 가치임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로크는 자유 개념을 갖춘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 다시 말해 근대적 민주주의, 즉 대의민주주의의 이념을 정립했다고 할 수 있다.
 
  로크는 자유를 보장해 줄 장치로서 행정권으로부터의 입법권의 독립 같은 권력분립의 기제를 중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것이 전체로서의 통합성을 전제하면서 공익에의 지향을 불가분의 요소로 내포하는 공민사회 개념인 것이다. 공민사회는 과격한 자유주의의 관점과는 달리 민주적 국가기구들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으면서 조직적으로는 그것과 분화되어 자율성을 누리는 전체를 의미한다.
 
 
  공민사회론의 변천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아테나의 정치가 페리클레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공민사회와 국가가 분화되지 않았다.
  국가와 공민사회의 분화 없이 많아야 수만 명에 불과한 모든 국민, 즉 자유민이 서로 모두를 통치하는 직접민주주의하에서는 국가에 대해 공민사회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지향을 담고 있는 개념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유’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라고 불리는 하나의 커다란 이념 체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가치 개념이다. 이것이 근대 공민사회의 자율성을 지켜주는 신념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념이 종교적 신념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해서 루소는 ‘공민종교(civil religion)’라고 일컬었다. 그것은 영국에서 발전하게 된 일체의 제약을 혐오하는 자유주의적 자유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그것으로는 공민사회의 통합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로크도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후 19세기에 헤겔의 국가를 중시하는 공민사회론과 국가를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가 계급의 착취 공간일 뿐이라고 각색한 마르크스의 ‘부르주아 사회(bourgeois society)’론이 나왔다.
 
  그리고 20세기에는 공산주의자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진지전 담론을 비롯하여 자본주의의 ‘폐해’를 교정하겠다는 목적에서 하버마스 등의 공민사회 담론이 나와서, 공익 내지 공동체를 위해 공민사회에서 사익 지향을 아예 배제하는 개념화를 시도하기까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관심에서 보면 로크가 성립시킨 계열의 공민사회론을 살핀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역설적 상황에 놓인 한국의 공민사회
 
  한국의 공민사회는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 사회의 네트워크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위민(爲民)’과 ‘이공멸사(以公滅私)’를 주지로 하는 주자학을 공민종교로 하고 재야(在野) 사대부와 재조(在朝) 사대부들이 상향적(上向的)으로 공론을 수렴하면서 ‘붕당(朋黨)’이라는 일종의 정당을 형성하여 정치를 했다. 또한 조정에는 대간(臺諫)들과 중신(重臣)들 간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어서 정책 결정이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근대적 의미의 공민사회가 형성되는 것은 1948년 건국혁명 이후였다. 자유당 정권 시절에도 언론계와 학계는 자율성을 누렸다. 그리고 1961년 군사혁명 후 본격화된 산업혁명의 성공 결과 두꺼운 중산층이 형성된 것을 배경으로 해서 1987년 넥타이 부대의 민주화운동이 성공했다. 이후 공민사회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근래의 모습은 그 공민사회라는 자유의 영역에서 전체주의가 움직이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사상적 문제가 있다. 자유를 죽이는 데 앞장선 자들은 지배자가 되고 다른 사람들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치권력까지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복 전략이 실행 중이다.
 
  최순실사태 이후의 상황은 문명적 공민사회를 떠받쳐야 할 엘리트 집단인 언론, 검찰, 헌법재판관들의 타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그들이 자율성에 바탕을 둔 공민적 덕성도, 직업윤리도 저버리고 전체주의에의 유혹에 빠져 저지른 야비한 야만이었다. 이것은 ‘일상적 전체주의’ 풍조다.
 
  ‘쓸모 있는 바보들’인 좌경 리버럴인지 좌익분자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기자가 소설로 특종 기사를 만들고 헌법재판소 판결문은 그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3류 에세이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소신을 갖고 이를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학계와 지식계 및 사(士) 계층 내 ‘일상적 전체주의’의 구속력이 가공할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현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야만적 전체주의 추종 세력과의 결전장(決戰場)에 서 있다.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단기적 일과성으로 인식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만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화를 내세우며 독재규탄과 인권을 마치 노란 리본처럼 달고 외치던 그들이 어찌하여 북한의 노예적 인권 상태에는 침묵하며 천사처럼 평화를 외치던 그들이 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외면하고 있는지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 전복 전략은 허위조작으로 선전선동을 주(主)무기로 하면서 불리한 것은 망각하도록 세뇌시키는 것이다. 어설프게 그들에게 끌려드는 것은 자신을 확실한 노예화의 길로 인도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태극기를 들고나온 대한민국 ‘공민 1세대’
 
  공민사회는 그것과 짝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 즉 공민종교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있다. 국가가 모든 것을 다해주겠다는 포퓰리즘적 유혹은 공민사회와 그 안에서만 가능한 개인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국가의 노예 내지 샐러리맨화를 불러오고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상적 전체주의 흐름이다.
 
  토크빌의 말대로 평등에의 열정이 권력의 중앙집중화로 이끌고 또 이 중앙집중화가 평등 정신을 키운다. 이런 풍조가 좌익혁명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어 왔다. 자조(自助)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이번에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던 70~80대는 현대 한국의 첫 ‘civis(공민)’들로서 첫 공민사회를 구성한 세대다. 그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박근혜 대통령’ 개인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신념과 열정 때문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내려진 후 천진한 지식인들은 매체들을 통해 국민통합을 호소하고 있다. 일견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호소는 최악의 사태에 맞설 아무런 정신적 준비도 없이 중대한 정치적 체제투쟁을 중성화(中性化)하고 정신적·사상적 무장해제를 초래할 수 있다. 무원칙한 원만주의(圓滿主義)는 의도와 관계없이 시민들을 무의식적으로 전체주의적 전복 음모를 위한 동반자로 만들 수 있다. 그런 주장은 전복 세력이 바라는 ‘평화적’ 정권 장악에 필요한 조건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다가오는 선거는 여야(與野)의 경쟁이라는 통상적 선거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당면하고 있는 국가안위 문제까지 더해져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폭발성이 강한 선거다. 5월 대선은 동질적(同質的) 세력 간의 게임의 장(場)이 아니라 이질적(異質的) 세력 간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5-17 09:11   |  수정일 : 2017-05-1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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