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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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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대(對) 진보’가 아니라 ‘우익 대 좌익’이다

⊙ 헌팅턴, “보수주의는 기존 제도에 심대한 도전이 제기되었을 때, 기존 제도를 옹호하기 위하여‘잠시’ 원용(援用)하는 이데올로기”
⊙ 보수주의는 번영과 위세를 가진 선진국의 이념, 한국 보수주의는 형성 중
⊙ 우리나라의 좌익을 ‘진보’라고 부르거나, 미국 ‘리버럴’을 ‘진보’로 번역하는 것은 인식의 혼돈 초래

유광호
1958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
연세대 강사, 이승만연구원 연구원 역임.
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글 | 유광호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직후인 2014년 12월 22일 이른바 진보성향 재야인사들은 비상원탁회의를 열어 항의했다.
최근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이 새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명(黨名)에 ‘보수(保守)’라는 말을 집어넣을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새누리당도 당명을 바꾸면서 ‘보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정당사에서 당 이름에 ‘보수’를 전면에 내건 것은 군소정당의 경우를 제외하면 전에 없던 일이다. 하지만 어느 정당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보수주의’가 무엇인지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도대체 ‘보수주의’란 무엇일까?
 
  한국의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한국에는 철학으로서의 보수주의가 없다고 한탄하거나 조롱하곤 한다. 그에 대해 식민지배와 대전란을 겪은 가난한 신생국이 단기간에 그렇게 엄청난 발전을 이뤘는데 보수할 가치와 내용이 없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오래전부터 정치사상과 세력을 논할 때 ‘보수·진보’ 호칭법이 정착되어 많은 식자들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냥 관행이 되고 말았다. ‘보수’(conservative)란 말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명예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경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에는 철학으로서의 보수주의가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국 보수주의의 내용이 명료하게 제시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보수주의에 대하여 서양사학자 이태숙 교수의 역사학적 접근을 빌려서 살펴보자.
 
 
  보편적 가치인가, 잠정적 이데올로기인가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
  우선 ‘사상으로서의 보수주의’는 보수주의 이론을 ‘시대나 계층에 관계없는 보편적 가치체계이자, 일종의 도덕률’로 규정하면서 그 현대적 효용성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신(新)보수주의자 측에서 많이 채용한다. 이는 19세기 영국의 정치인이자 보수주의의 비조(鼻祖)인 버크의 주장들에 근거한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니스벳은 ‘이상론(理想論)에 빠져 변화 자체를 목표로 삼거나 무조건 혁신만 숭배하는 정신의 맹목성을 경계하는 정신이며,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대중의 경박한 욕구에 영합하는 정치가 초래할 파국적 결과를 막으려는 태도’로 요약하였다.
 
  반면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예리한 보수주의 논객인 새뮤얼 헌팅턴은 보수주의를 ‘상황적 이데올로기’로 규정한다. 보수주의는 기존 제도에 심대한 도전이 제기되었을 때 그 지지자들이 기존 제도를 옹호하기 위하여 ‘잠시’ 원용(援用)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기존 제도에 대한 위협이 사라졌을 때는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도 같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보편적 가치체계로서의 보수주의론을 정치사상적 덕목의 저장고로 여기고 음미해 오던 사람들은 헌팅턴의 입장을 피상적이라고 느끼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태숙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에 대한 버크의 논지와 입장은 다르며, 버크의 보수주의는 개혁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버크는 프랑스혁명이 초래한 문명 파괴와 영국 헌정(憲政)에 대한 위협에 대해 반대한 것일 뿐이다. 결국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현재 상황에 대한 정치양식을 규정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차원에서 보수주의에 대립하는 이데올로기는 과격주의(radicalism)다. 결국 ‘보수주의’는 ‘인간·사회·역사에 대한 특정한 규정을 기반으로 인식론적 회의주의와 역사적 공리주의를 주요 논지로 삼아 역사적으로 발전되어 온 기존 제도들은 사람들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효능을 지니므로, 기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 정치양식’이라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선진국의 이념
 
  한국에서 ‘좌익세력이 자유민주주의 헌정체제를 전복하려 할 때 그것에 반대하는 논리’를 보수주의라고 하는 것은 그른 것이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수호하려는 기존체제의 성격은 일정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기존체제의 성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때의 보수주의가 호소력을 얼마나 가지는지 결정된다. 그 지키려는 사상과 체제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 즉 보수주의자들은 수호하고자 하는 체제에 대하여 심각한 위협 세력이 존재함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 때 세력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위협이란 공산, 친공(親共), 용공(容共) 세력의 위협을 가리킨다. 1997년 김대중 집권 이후 좌경화(左傾化)에 대한 걱정과 반발이 한국 보수주의의 공통분모였다.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반대가 가장 중요한 공통분모라는 사실은 한국 보수주의의 이해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그런데 ‘사상체계로서의 보수주의’라는 개념에 집착하면 이런 실제를 놓치기 쉽다.
 
  보수주의는 선진국의 이념이다. 보수주의는 원래 선진국에서 호소력을 지니며 따라서 선진국에서 효과적으로 채택될 수 있는 이념이다. ‘현재의 번영과 위세를 이룩한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 곳이 바로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보수주의가 풍미했고 20세기의 수퍼파워 미국에서 보수주의가 자리를 잡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체계화한 사상으로서의 보수주의는 ‘인간과 세상은 불완전하다’는 ‘불완전성의 철학’이고 사리분별 내지 신중함(prudence) 같은 것을 요구하는 태도이다. 이들에게 보수주의는 고상한 지성인의 사유 감각이자 지혜로서 소중한 것이다. 버크는 타당한 정치양식으로 타협과 절제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기존 제도와 조상에게 존경심을 지니고 무한히 조심하며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우리에게도 대한민국을 세우고 산업혁명을 이루어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발전시킨 선조들을 존경하고 그 제도들을 매우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깊은 가르침을 준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한국은 보수(保守)할 것을 만들어 가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산업화에 성공한 박정희를 빼놓고는 한국의 보수주의를 말할 수 없다.
  보수주의는 어떤 지향성을 갖는 독자적인 정치사상은 아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정치사상 또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를 한국에서 찾거나, 찾아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헛된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후진국이었던 한국은 영국과 미국이 선진국이 되기까지 수행했던 여러 개혁들을 압축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처지였다.
 
  이승만(李承晩)과 박정희(朴正熙)를 경시하거나 폄하하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보수주의 이론을 찾는 것은 한국 지식인들의 고질적인 수입상(輸入商)적인 정신상태를 증명한다. 한국은 ‘신생국으로 보수할 것을 만들어 가고 있는 나라’였다. 사실 많은 것을 만들었다. 사회학자 송복(宋復) 교수의 말대로 한국은 건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혁명과 4・19 의거라는 의식혁명과 5・16 정변이라는 구조혁명을 거쳐 비로소 근대사회를 이룬 것이다.
 
  이승만 박사가 반공(反共)노선에 의해 자유민주국가를 건국했고, 피로써 나라와 체제를 지키고, 전후(戰後)복구를 이루었다. 교육혁명을 통해 문맹을 해소하고 인재를 양성했으며 자유민주 교육을 일관되게 시행했다. 이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4・19의거를 통해 의식혁명을 했다.
 
  이어서 당시 최고의 엘리트들인 군(軍) 장교들에 의해 5・16정변을 통한 구조혁명을 이루었다. 이들이 농경사회를 산업사회로 전환시키는 구조혁명을 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민주체제의 필수적인 인프라가 갖춰지게 되었다. 그 산업혁명은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주의에 의해 발견된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혁신들이 1990년대까지 지속됐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정치의 방종과 좌익의 성장에 의해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다.
 
 
  반공이 핵심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찌 보수할 거리를 마련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보수주의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투쟁과 업적을 깊이 연구하고 음미하는 데서 비로소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좌익을 제압하고 나라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키고 나서야 한국 보수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의 자유정신, 박정희의 자조(自助), 협동정신, 국가에 대한 주인의식과 충성심 등은 모두 반공으로 집약된다. 한국 정치의 보수주의를 판단하는 잣대는 사상적으로 반공을 제대로 하느냐 하는 것과 제도적으로 제대로 작동하는 자유민주 헌정을 구축하느냐 하는 것이다. 반공자유민주체제를 성공시킬 수 있느냐, 북한해방을 위한 역량을 갖출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한국 보수주의 성립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좌익에 반대하는 지식인 가운데 상당수는 “공산주의권이 몰락하고 냉전이 끝났는데 한국 우익은 반공에 아직도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무엇에 반대하는 것을 하지 말고 긍정적인 대안(代案)을 내놓으라”고 덧붙인다. 이런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잘못된 것이다.
 
  첫째, 그런 주장은 한반도에서는 지금 한창 냉전(冷戰)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둘째, 공산주의가 가장 나쁜 사상(思想)인데 그것을 선전하고 있는 북한 권력에 동조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셋째, 사상이라는 것은 멋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참을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반감과 역겨움에서 그것에 대한 안티테제로 태어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넷째, “긍정적인 대안을 내라”고 하는데 장밋빛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를 비롯한 유토피아주의자들이 만들어 퍼뜨리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省察)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환상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법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념도 이것으로 지상천국을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가장 해가 덜한 체제를 제공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삶의 방식인 것이다.
 
 
  좌익과 우익
 
1946년 1월 시작된 신탁통치반대 집회는 좌익과 우익을 가르는 계기가 됐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상으로서의 보수주의’는 안정 속에서 자유와 번영을 영위하면서 세계를 리드하는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민주헌정의 전통이 일천한 한국에서 보수주의를 기준으로 정치사상이나 세력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더 정확하고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프레임을 찾을 필요가 있다.
 
  사상을 달리하는 정치세력은 특별한 가치평가가 내포되지 않은 대명사적 용어인 좌익(左翼·the Left)과 우익(右翼·the Right)으로 호칭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보아도 타당하고, 다른 나라의 예에 비추어 보아도 옳다.
 
  좌익과 우익이라는 단어가 정치세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한국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부터다. 1945년 9월 중순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좌익세력이 조직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및 조선인민공화국에 맞서는 한국민주당이 등장한 이후부터 좌익과 우익이란 용어의 사용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해 말 발표된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1946년 1월 남한의 정치세력이 선명하게 양분되면서 신탁통치 찬성 편에 가담한 공산주의자들과 그 주변세력을 좌익, 반대편에 가담한 이승만·김구·한민당 중심의 세력을 우익으로 호칭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좌익과 우익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어 왔다. 1970년대 이후 사상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희박해지고, 또 좌익과 우익이라는 용어보다는 ‘보수’와 ‘혁신’이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는 일본의 좌편향 풍조가 이 나라 언론계와 정계에 강한 영향을 미치면서 좌익과 우익이라는 용어는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는 사회주의혁명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추진하던 이 나라의 운동권이 자기들을 진보세력이라 부르고 자기들에 반대하는 세력을 처음에는 수구(守舊)세력, 얼마 후에는 보수세력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운동권에 동조적인 언론계 종사자들이 그런 호칭법을 추종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좌·우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극히 희소해졌다. 혁명운동권은 좌익·우익 호칭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수구꼴통’, ‘극우(極右)’로 매도했기 때문에 그 호칭법을 피하게 된 것이다.
 
 
  ‘리버럴’을 ‘진보’로 번역하는 건 오역(誤譯)
 
  현재 우리나라의 언론매체나 학자들이 한결같이 ‘보수·진보’ 호칭법을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외국서적의 ‘좌익과 우익(Right and Left)’과 ‘보수와 리버럴(Conservative and Liberal)’을 거의 ‘보수와 진보’로 번역하면서 독자들을 오도(誤導)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사회주의, 즉 좌익이 미미해서 주요 정치세력을 호칭함에 있어서 좌·우익으로 호칭하기가 부적절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에서는 좌·우익이라는 말 대신에 보수주의세력과 리버럴(liberals)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정치구도를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큰 오역이다.
 
  언론매체나 학자들이 미국의 리버럴과 국내의 소위 진보세력을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번역하면, 한국의 사상갈등 상황에 대해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심각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 미국의 리버럴을 ‘진보’로 번역하면, 한국인들은 사회주의세력 및 그 주변세력이 미국에서 정권을 장악하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한국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집권을 하게 되더라도 미국 민주당 정도의 정책을 펼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또 한국의 소위 진보세력을 영어 ‘리버럴즈(liberals)’로 번역한 것을 본 미국인들은 한국의 사회주의혁명세력이나 반미(反美) 주사파(主思派)세력을 미국 민주당 당원과 비슷한 세력으로 오해할 것이다. 한국의 언론매체가 미국의 ‘리버럴(liberal)’을 ‘진보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관행화한 것도 어쩌면 언론계 내 좌익세력의 의도적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다.
 
 
  progressives와 radicals
 
  미국에서 ‘리버럴’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존중하면서 그 체제 속에서 정부의 역할 확대, 도덕적 엄격성의 완화, 사회적 약자(弱者)계층에 대한 배려 확대 등을 추구하는 세력을 뜻한다. 그들은 자유주의의 핵심적 가치들을 신봉하며, 자유주의의 주변적 요소들에 있어서만 미국의 보수세력과 입장을 달리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분명한 자유주의자들이다. 미국에서 리버벌이 추구하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자유주의의 차이를 구분하자면, 전자(前者)는 수정(修正)자유주의 내지 복지자유주의, 평등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고, 후자(後者)는 고전적 자유주의다.
 
  한국어의 소위 진보세력 내지 좌익세력에 해당하는 미국의 용어는 ‘진보세력(progressives)’이다.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이 사회주의세력을 지칭할 때는 ‘진보세력’이라는 말 대신, ‘과격세력(radicals)’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에서 ‘진보세력’이라고 하는 좌익세력에 대한 타당한 영어단어는 ‘radicals’다. 좌익세력은 전술적인 이유에서 한국의 비좌익계열 지식인이나 언론매체들이 영어 리버럴(liberals)과 한국어 진보세력을 동일시하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방관하고 있을 것이다.
 
 
  ‘진보’라는 단어의 오용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에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회주의를 의미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19세기 말부터 사회주의화를 진보로 보고 사회주의세력을 진보세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이라는 관념을 대중의 뇌리에 집어넣고, 진보라는 용어 속에 내포된 좋은 느낌으로 대중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노력을 집요하게 전개했으며, 그 결과 진보라는 용어는 점차 사회주의자들의 독점물이 되었다. 그로 인해 사회주의 국가의 언어생활에서, 그리고 비사회주의 국가의 사회주의 언론매체 및 사회주의 정치인들과 학자들의 언어생활에서 진보=사회주의화, 진보세력=사회주의세력이라는 등식이 일반화되었다.
 
  물론 구미(歐美)의 객관적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세력을 진보세력이라고 부르는 일이 결코 없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선전전술의 일환으로 그런 등식을 고수하고 있다. 사회인식 능력이 약한 언론인들이나 대중은 사회주의자들의 언어전술을 알지 못한 채 그와 같은 등식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옳은 지식을 가진 지성인들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나는 진보다”라고 하면 “아, 사회주의자로구나”라고 알아차린다.
 
  정치사상 전문가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에 따르면, 진보(progress)가 사상과 관련된 용어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부터다.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은 ‘진보’나 ‘진보적 민주주의’ -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따라 해산된 통합진보당도 정강에서 사용 - 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진보’란 ‘사회주의화’였다. 1956년에 진보당이 생기면서 그들이 말하는 진보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의 실현을 의미했다. 1958년에 진보당이 해체됨에 따라 진보는 한국의 정치담론에서 다시 사라졌다.
 
  진보가 한국 사회에서 다시 중요한 사상적 용어로 재등장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 그때부터 우리 사회에서 혁명투쟁을 전개해 오던 세력, 즉 혁명운동권이 스스로를 ‘진보세력’, ‘진보진영’이라고 호칭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그들에 동조하는 친(親)운동권 언론매체들이 그런 호칭 사용을 확산시켰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여타 언론매체들과 정치인들이 운동권을 진보세력, 진보진영으로 호칭하는 시류에 편승했으며, 그에 따라 그런 호칭법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되었다.
 
  그 후 초기에 혁명운동권만을 지칭하던 진보세력 또는 진보진영이 의미하는 범위가 혁명운동권의 영향하에 있는 주변세력들까지도 포괄하게 되었다. 지금은 좌익에 반대하는 사람들마저 문명에 반대하는 반동적인 좌익혁명세력을 ‘세상을 보다 좋은 상태로 변화시키는 세력’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진 진보세력으로 호칭해 주는 불합리한 세태가 되고 말았다.
 
 
  용어전쟁에서부터 밀리고 있다
 
  보수·진보 호칭법이 부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 탓에 우리 사회는 이미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인류 역사의 진행방향에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진보세력’으로 호칭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사상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민주인사’로 자처하며 중요한 공직을 차지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을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로 국민들이 착각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국가나 비사회주의 국가의 사회주의 언론매체에서나 좌익세력과 진보세력을 동일시하고 호환적으로 호칭하는 관행이 한국 사회에서 일반화되었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언어생활이 사회주의세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언어생활이 사회주의세력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사회주의화하는 데 대한 사상적 방어벽이 해체되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이를 ‘좌익’과 ‘우익’, ‘자유민주주의세력’과 ‘전체주의세력’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월간조선 2017년 3월호 / 글=유광호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15 09:43   |  수정일 : 2017-03-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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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4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0
보수같은 소리하넼ㅋㅋㅋ
바끄  ( 2017-03-19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7
뭘 그렇게 졸라게 아는척 하십니까?
탁상공론의 장에서 눈과 입에 혈액 유통시켜봐야
현실과 동떨어진 종교서적 읽어면서 기도하는 꼬리지인것을..
책을 들고 현장에 나가 비교분석해서 고뇌해보십시요.
과연 한국에 보수가 있는가?
보수를 가장한 어떤 다른 집단은 아닌가?
김성  ( 2017-03-16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2
현직 박대통령을 모함으로 문재인 김대중 추종 언론 국회 판검사 동원해서 탄핵하고 모자라 구속할려고 3월 21일 검찰 소환,대선부호 1위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한국 도착한지 20일만에 박대통령에 한 것처럼 지독한 모함과 범죄짓같은 인격살해짓으로 스스로 대선포기케한 주범이 문재인 아니구 누구겠습니까?
김성  ( 2017-03-15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1
우익대 좌익이요 대한민국대 반대한민국, 민주화대 공산화입니다.문재인 김대중 추종자들이 조중동과 종편 국영방송인 KBS까지 장악했으니 더 이상 무순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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