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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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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신념이 충돌할 때…

글 | 조성관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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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조선DB
주간조선 2007년 9월 17일자(1972호)는 ‘노무현 타운, 6배 커졌다’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부속기사로 ‘노건평씨의 골프연습장’을 실었다. 이 기사에는 노건평씨가 잔디밭 위를 아이언클럽을 들고 걸어가는 사진이 게재됐다. 그런데 2008년 2월부터 노씨가 들고 있던 골프클럽이 낫으로 변한 사진이 인터넷에 돌면서 주간조선이 ‘악의적으로 기사를 왜곡했다’는 공격이 시작됐다. 누군가 포토샵으로 사진을 조작한 것이다. 대표적 좌파 매체인 데일리서프라이즈가 공격의 선봉에 섰다. 이 논란은 이범진 기자(현 팩트올 대표)가 취재 전말기와 원본 사진을 공개하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이수근을 이중간첩으로 조작해 처형했다”고 공식발표했다. 1967년 판문점에서 귀순한 이수근은 1969년 돌연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판단의 근거는 1989년 조갑제 월간조선 기자가 쓴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라는 기사였다. 이수근은 자신을 보호·관리하던 중앙정보부 간부의 모욕과 폭력에 못 이겨 중립국으로 탈출을 시도했고, 이 사실이 발각되는 것을 두려워한 중앙정보부가 이수근을 간첩으로 조작했다는 게 기사의 요지였다.
   
   기자(記者)는 사실과 진실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기자를 가리켜 역사의 초고(草稿)를 쓰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까닭이다. 링 위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링 밖에서 정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는 게 기자의 직무(職務)다. 기자는 사실을 보도할 때만 발언권이 있다.
   
   탄핵소추안이 기각될지 인용될지, 아니면 각하가 될지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떤 쪽의 결론이 나든 이번 사태로 기자의 위상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링 밖에 있어야 할 기자 상당수가 링 안에 들어가 특정 정치세력의 선전매체를 자임했다.
   
   월간조선 2017년 3월호는 ‘최순실 사태 25개 사례로 본 허위·과장·왜곡보도’를 20쪽에 걸쳐 실었다. 이 기사를 읽으면 기자로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다. 좌파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파 매체들도 허위·과장·왜곡보도 행렬에 동참했다.
   
   ‘미국대사관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평가’(중앙일보), ‘통일대박은 최순실 아이디어’(전 언론), ‘박근혜, 최순실을 선생님이라 불러’(동아일보), ‘최순실 대통령 전용기로 해외순방’(채널A), ‘미 대사관도 촛불 지지 1분 소등’(중앙일보)….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켜 촛불을 들게 한 보도들 상당수가 허위사실이거나 왜곡보도였다.
   
   의사가 오진(誤診)을 피할 수 없듯 기자 역시 오보(誤報)를 피할 수 없다. 25개의 보도가 과연 속보경쟁에서 빚어진 단순한 오보였을까. 임정덕 부산대 명예교수는 이번 사태를 ‘철저하게 기획된 좌파의 작품’이라고 규정한다. 좌파가 쳐놓은 프레임에 언론과 검찰과 대중이 걸려들었다는 주장이다.
   
   뼛속 깊은 사회주의자 조지 오웰은 1936년 스페인내전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로 참전한다. 좌익 진영의 최전선에서 그는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는 사실을 목도했다. 영국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 그게 ‘카탈로니아 찬가’와 ‘동물농장’과 ‘1984’이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신념이 있다. 그러나 기자 명함을 가지고 다니려면 신념보다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08 09:25   |  수정일 : 2017-03-0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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