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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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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오카모토 미노루인가

글 | 이범진 조선pub 차장대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에서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로 한번 더 창씨개명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일제 35년을 통틀어 창씨개명을 두 번이나 한 사람은 가와모토 다츠오(河本龍雄)로 이름을 바꿨다가 우에다 다츠오(上田龍男)로 이름을 다시 바꾼 이영근(李永根)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근은 1943년 11월 ‘황도(皇道) 조선(원제; すめら朝鮮)’이란 책에서 “완전한 내선일체를 구현하기 위해 일본어를 국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극렬 친일파였다. 따라서 박정희가 두 번이나 창씨를 개명했다는 주장은 ‘박정희=극렬 친일파’로 등치된다는 점에서, 그 진위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창씨개명’이란 일본식 성을 새로 만드는 창씨(創氏)와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는 개명(改名)의 두 가지를 말한다. ‘다카기 마사오’에서 다카기(高木)의 ‘高’는 박정희의 성(姓)이 유래한 고령 박씨의 ‘高’에서, ‘木’은 그의 성씨인 박(朴)씨의 나무 목(木)을 따온 것이다. 당시엔 ‘창씨’에 대한 거부감을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기 위해 기존 성씨나 고향 이름에서 글자나 획을 따, 새 성을 만드는 일이 많았다.
 
조선인들은 창씨개명을 할 때, 문중회의를 열어 집안 어른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관례적이었다. ‘다카키 마사오’의 마사오(正雄)의 경우 본명인 정희(正熙)에서 ‘正’을 살리고, 일본 남자 이름에 흔히 들어가는 한자인 ‘雄’을 붙여 이름을 지었다는 점에서, 당시 조선인들이 가졌던 거부감을 박씨 문중 역시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는 창씨(朴→ 高木)와 개명(正熙→ 正雄)을 모두 했지만, 그의 큰 형 박동희(朴東熙)는 다카키 토히로(高木東熙)로 이름을 바꿔 (개명은 하지 않고) 창씨만 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1. 고 문명자의 주장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로 한번 더 창씨개명을 했다는 주장을 제기한 사람은 재미언론인 고 문명자(미국명 줄리 문, 2008년 작고)씨다. 문씨는 1999년 11월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월간 말)’이란 책을 냈는데, 그는 이 책에서 “만주군관학교 시절 박정희의 창씨명은 다카기 마사오, 그곳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했을 때 박정희는 창씨명을 완전히 일본사람 이름처럼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꿨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씨는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진 않았다. 그는 자신에 대해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MBC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백악관을 출입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1961년부터 1972년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그(박정희)와 만났다”며 “육 여사의 초청으로 참석한 식사 자리에서 ‘손잡고 함께 일하자’는 박정희 부부의 권유를 뿌리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문씨는 책에 대해 “취재과정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들을 토대로 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 일부는 과장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면 책 14페이지에 적힌 기술이다. 문씨는 (박정희가) “수도꼭지까지 금으로 된 안가에 뭇 여성들을 불러들여 방종한 생활을 일삼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일부 사실이지만, 일부는 과장이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경호실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3학년 학생으로, 대학생 모델이었던 신재순씨가 가수 심수봉씨와 함께 동석하고 있었다. 대통령, 중앙정보부장, 경호실장 등 당시 최고 권력자들이 대학생 모델과 가수를 불러 연회를 벌였다는 점에서, 이를 ‘방종한 생활’이라 지적한 문씨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궁정동 안가에서 금으로 만들어진 수도꼭지는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책에는 코리아게이트를 비롯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폐차장 압사설 등 박정희 정권 시절의 비화가 수록돼 있다. 그러나 문씨가 주장하는 ‘김형욱 부장의 폐차장 압사설’ 역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발표와 차이를 보인다.
 
김형욱은 1979년 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차장 윤일균으로부터 ‘프랑스 파리로 가라’는 말을 듣고, 1979년 10월 1일 파리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밝혀진 팩트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은 ‘폐차장에서 압사됐다’는 문씨 주장과 약간 다르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김형욱이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중앙정보부의 사주를 받은 외국인 2명에게 끌려가 인적드문 숲에서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중앙일보는 약간 다르게 2009년 7월 23일 “김형욱이 프랑스 파리 외곽의 양계장에서 피살됐다”고 보도했다. 파리 외곽에서 총 맞고 숨졌다는 점은 일치하지만 ‘인적 드문 숲’과 ‘양계장’이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편 재미 언론인 안치용씨는 자신의 블로그(http://andocu.tistory.com)에서 2009년 5월 8일 “김형욱의 시신이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 뉴저지 인근의 공원묘지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문명자는 (박정희 뿐 아니라) 김일성 부자와도 면담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던 인물이다. 문씨가 1994년 4월 21일 평양 주석궁에서 김일성과 가진 단독 인터뷰는 ‘말’지 1994년 6월호에 실렸다. 해당 기사는 현재 ‘민중의 소리’(http://www.vop.co.kr/A00000217115.html)  2008년 7월 29일자에 올라 있다. 김일성 인터뷰 부속 기사로는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인터뷰가 추가로 실려 있다.
 
‘민중의 소리’는 민주노동당 당권파(NL 계열)를 대변하는 미디어로, 통진당 사태의 핵심이던 이석기 전 의원이 이사를 맡기도 했다. 이 매체 대표였던 윤원석은 19대 총선 때 성남 중원구에 출마했다가 성추행 논란으로 낙마했다. 문명자와의 인터뷰에서 김일성은 “(북한 인민에게) 식량 배급은 안준다는 것은 낭설”이라며 “핵무장을 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오늘날 모두 거짓으로 확인됐다.
 
2. 민족문제연구소와 최상천의 주장
 
문명자의 책이 나오기 3개월 전이던 1999년 8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는 ‘8월의 친일인물’로 박정희를 선정했다. 연구소는 “(박정희가) 42년 일제 괴뢰국인 만주제국의 신경군관학교에 다니면서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으며 졸업식에서는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해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다고 답사하는 등 친일행적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소는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단언했지만 그 단언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오카모토 미노루’의 바통을 이은 것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출신인 최상천이다. 그는 2004년 7월 ‘알몸 박정희(사람나라)’라는 책을 통해 “평범한 시골학교 학생에서 ‘두목 급장’으로, 보통학교 교사에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거쳐 만주군 장교로, 박정희에서 다카키 마사오로, 다카키 마사오에서 오카모토 미노루로, 오카모토 미노루에서 다시 박정희로”라는 말로 박정희의 변신을 주장했다. 그러나 최상천 역시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3. ‘일본 육해군 총합사전 2판’의 기록
 
‘오카모토 미노루’란 이름을 일반에 각인시킨 것은 2005년 8월 도쿄대학 출판부가 낸 ‘일본 육해군 총합사전 2판’이다. 2005년 발간된 이 사전 2판에는 박정희의 일본 이름이 ‘오카모토 미노루’라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자유기고가 이시완씨는 2012년 12월 5일 ‘빅뉴스’란 인터넷 매체에 올린 글에서 “이 사전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라, 도쿄대학 출판부에서 출판한 개인출판물”이며 “이 사전 초판(1991)에는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없었는데, 2005년 발간된 2판에 갑자기 이 이름이 추가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도쿄대학 출판부를 통해 이 사전의 저자에게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의 근거를 확인해 본 결과, ‘근거 확인이 안되니 3판을 출판할 때는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을 삭제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안티 박정희’ 세력이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오던 ‘일본측 자료’ 의 설득력도 이것으로 없어진 셈”이라고 주장했다.
 
‘오카모토 미노루’는 2006년 8월 9일 다시 부각됐다. 세계일보는 이날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은 왜 두 개였나’라는 기사를 싣고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와 함께 박정희의 해방 전 일본식 이름”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기존에 알려진 주장 외에 새로운 근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정운현씨는 2012년 12월 9일자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세계일보 기사는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신문이)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와 함께 박정희의 또다른 일본식 이름이라고 주장하면서 ‘몇몇 재중동포들의 기억’을 근거로 들었다”면서 “(그런데) 이 ‘몇몇 재중동포들’은 박정희가 간도특설대 출신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분명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씨는 “당시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던 송석하(예비역 육군 소장, 작고), 신현준(전 해병대 사령관, 작고) 등은 ‘박정희를 본 적 없다’고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4. 1973년 8월 11일자 노동신문의 기사
 
‘오카모토 미노루’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자유기고가 이시완씨의 주장이다. 그는 2012년 12월 5일 ‘빅뉴스’에 올린 글에서 “오카모토 미노루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3년 8월 11일자 북한 로동신문”이라고 주장했다. “김대중 납치사건 직후, 북한은 박정희에 대한 비판을 집중적으로 쏟아놓는데, 그때부터 ‘오카모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씨가 인용한 노동신문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다.
 
“남조선의 한 집권자는 우리 인민이 일제 침략자들에 항거하여 싸울 때 혈서를 써서 ‘천황’의 ‘적자’가 될 것을 맹세한 후 ‘특등 일본인으로’ ‘돌격대장’으로 ‘오까모도중위’로서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애국적 인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이른바 ‘토벌’에 110여회나 참가하였으며 조선동포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속에서 기여나오는 동포 어린이들과 늙은이들을 총창으로 마구 찔러 죽이고 생매장하는 몸서리치는 만행을 손가락 하나 떨지않고 감행한 자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1973년 8월11일 로동신문)
 
이씨는 “오까모도가 박정희를 지칭한다는 것은 1987년 북한의 금성청년출판사에서 나온 ‘원쑤는 재침을 노린다’라는 책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며 관련 내용을 추가로 인용했다.
 
일본 군국주의 우두머리 한놈인 구모놈은 박정희 역적놈을 ‘가즈오료리점’에 특별히 불러내다 먹자판을 벌려놓았는데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오갔다.
“자네 퍽 몰라보게 됐네”
“각하, 절 알아보시겠습니까? 사랑 받던 오까모도입니다”
“아무렴 알아보고 말구”
“그떄 선생님은 저를 돌격대장이라고 불렀지요”
“그랬지.암 돌격대장이야. 오까모도군이 지금 남조선의 실권자로 나타났지만 내 눈에는 옛날 자주빛깔 만주국군의 군관생으로밖엔 보이지 않네”
“고맙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저 역시 그 때를 자주 추억하곤 합니다”
(‘원쑤는 재침을 노린다’ 금성청년출판사 1987)
 
이씨는 “단지 북한과 한국의 일본어 표기법이 달라 ‘오카모토’가 북에서는 ‘오까모도’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라며 “한일회담을 비판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박정희를 (북한이) 악의적으로 ‘오까모도’ 라고 설정하여, 일본인에게 저자세로 일관하는 인물로 그려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 1973년 이전에 박정희를 ‘오카모토 미노루’ 라고 주장한 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다시 말하면 한국 사회에 퍼진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설은 북한의 주장을 확인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정적비판을 위해 퍼뜨렸다는 말이 된다”고 해석했다. 그는 “정적 비판도 좋지만 도를 넘어서는 인신공격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4-05-14 13:38   |  수정일 : 2014-07-3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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