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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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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실리콘밸리 이야기(1)...모세의 축복, 모래와 실리콘밸리

글 | 홍익희 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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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느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중략)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신명기 33장 1, 19)
 
여기서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모래를 콕 찍어 가르쳐주며 그의 후손들을 축복했다. 모세는 세상의 하고 많은 물질 가운데 왜 모래를 지목해 후손들에게 모래로부터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라고 했을까? 그런데 실제로 모래는 이후 많은 기적 같은 일을 해낸다. 

모래로 유리 만들어
 
가나안 사람들은 모래를 갖고 인류 최초로 유리를 만들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들 가나안 사람들을 페니키아인이라 불렀다. ‘자주색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고대의 유리는 금보다 더 귀한 보물이었다. 
 
유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1세기 로마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제36권에 쓰여 있다. "어느 날 천연소다를 교역하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시리아의 베리우스 하구 모래밭에서 천연 소다석을 솥의 받침대로 사용하여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불을 피웠다. 불길이 너무 강해 소다석과 흰 모래가 한꺼번에 녹았다. 이게 다시 굳으면서 투명한 물체 유리가 만들어 졌다." 
 
그 뒤 페니키아는 유리제품 수출로 번영을 누렸다. 이는 모세가 말한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라는 축복의 첫 실현이었다. 로마 시대 베네치아 유리세공업자 대부분은 유대인이었다.
 
 
유리, 안경과 거울 그리고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진화 
 
그 뒤에도 모래로 만든 유리가 우리 인간에게 베푼 축복은 많았다. 유리는 유리창 이외에도 용도가 참으로 많다. 1세기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에오스는 유리로 물건을 확대시켜 볼 수 있는 돋보기를 만들었다. 
 
그 뒤 13세기에 이탈리아 수도사에 의해 유리를 이용해 안경이 만들어졌다. 이후 안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좀 더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모레가 인간에게 건네 준 큰 축복의 하나였다. 유대인 사회에서 쫓겨난 스피노자도 안경알 만드는 게 직업이었다. 
 
이후 유리는 거울로도 진화했다. 1317년에 베네치아의 유리공이 수은 아말감을 유리의 이면에 부착시켜 거울을 만들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좀 더 확실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16~17세기에 안경 제작자들이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이용해 현미경과 망원경을 만들어내어 그간 사람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많은 걸 보게 해주었다. 이로써 과학과 의학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현미경은 육안으로 안보이던 세균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하여 의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현대 들어서도 유리와 거울의 활약은 눈부시다. 에디슨에 의해 유리로 만든 전구와 필라멘트가 전기를 빛으로 바꾸었으며 형광등도 유리로 만들어졌다. 유리가 없었으면 밤에 빛을 밝히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는 TV나 컴퓨터 모니터도 모두 유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거울 역시 다방면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거울은 빛을 반사한다. 거울과 렌즈를 결합해 탄생한 게 카메라이다. 카메라에서 거울은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반사시켜 필름이나 이미지센서에 상이 맺히도록 해준다. 
 
또 거울은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뿐 아니라 전자기파도 반사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 `레이저'에 거울이 쓰인다. 레이저는 가늘고 긴 레이저 봉 양쪽에 반사거울을 달고 그 사이에 매질을 채운 후 외부에서 에너지를 줘서 빛을 발생시키는 원리이다. 위상과 파장이 같은 빛이 양쪽 거울에 반사돼 무수히 왕복하면서 빛이 증폭돼 강력한 레이저광선이 뿜어져 나온다. 레이저광선은 빛이 주위로 퍼지지 않고 앞으로 멀리 나아가는 직진성이 좋다. 레이저는 바코드, CD플레이어, 프린터, 광통신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거울이 대활약을 하고 있다.
 
 
모래에서 추출하는 실리콘, 정보화시대 열어 
 
모래의 축복은 계속되었다.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을 모래에서 추출한 것이다. 실리콘(Silicon)은 모래에 있는 규소(Si)의 영어 이름이다. 규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소 중 산소 다음으로 많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쪽에는 실리콘밸리가 있다. 이름이 실리콘밸리라고 붙여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 페어차일드 등 반도체 회사와 연구기관들이 이곳에 반도체 제조단지를 형성했다. 반도체재료인 '실리콘'과 산타클라라 '밸리'(계곡)에 위치한다 하여 ‘실리콘밸리’라 이름 지어졌다. 
 
1970년대에는 미국 반도체회사 45개 가운데 40개가 실리콘밸리에 모여들었다. 이후 실리콘밸리는 신기술 창업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반도체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화시대를 열었다. 모세의 축복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이다.
 
 
실리콘밸리 탄생 이면에 6.25 전쟁 
 
실리콘밸리 탄생 이면에는 6.25 전쟁이 크게 한 몫 했다. 당시 스탠포드 대학에는 2차대전 당시 하버드대 전파연구소를 이끌었던 프레데릭 터먼 교수가 있었다. 그는 1944년 스탠포드대로 돌아와 공대학장으로 임명되자 하버드대 전파연구소 연구원들 다수를 스탠포드대로 영입했다. 더구나 스탠포드 대학 인근에는 미 정부가 1930년에 건설한 방위산업단지가 있었다. 
 
이런 연유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스탠포드 대학은 동부 유명대학들을 물리치고 대학 내에 군과 협력하는 전파연구소가 설치되었다. 당시 미군은 소련 비행기와 잠수함, 핵무기를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전이 레이더 정보수집 등 전자전 양상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미국 정부의 막대한 연구자금을 지원 받은 스탠포드대 전파연구소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800명 연구인력으로 커져 레이더 정보수집 연구를 크게 발전시켰다. 연구성과는 대학 인근 군수산업체들을 통해 제품으로 만들어져 군에 공급되었다. 
 
이렇게 군수산업에서 힘을 얻은 스탠포드 대학은 터먼 교수의 정책에 힘입어 실리콘밸리를 조성하는 첫 발을 내딛는다. 1953년에 80만평 부지의 스탠포드 연구단지가 건립되었다. 이 단지가 하이테크산업 성장과 벤처창업 붐을 일으켰다. 
 
터먼 교수는 학생들에게 창업을 장려했다. 그는 스스로 대학주변 기업들에도 조언을 많이 했다. 대학교수가 관련기업 임원이 되는 것을 적극 권했다. 그는 대학이 소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창업하는 학생에게 과감하게 이양하는 정책을 단행해 학생들이 대학 소유기술을 이용해 창업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냉전시대라는 시대적 조류와 터먼 교수의 정책 덕에, 스탠포드 대학 주위에는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마이크로파 관련기업이 모여들어 마이크로웨이브밸리를 형성했다. 그러자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탈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어울려 함께 성장하면서 반도체회사들과 터먼 교수 제자가 만든 휴렛패커드(HP)를 비롯한 IT기업들이 모여들었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시절 한국 정부는 스탠포드 산업단지의 성공을 한국에 이식하기 위해 터먼 교수를 초청했다.  이후 터먼 교수가 중심 역할을 하여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대덕연구단지가 설립되었다. (출처; 이동희, 테크홀릭 최필식 기자 등)
 
 
규소가 태양전지 원료로 
 
재미있는 점은 모래의 규소가 또 다시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체는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와 전기를 전혀 통하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자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부도체처럼 전기가 잘 안 통한다. 하지만 온도의 변화나 혹은 불순물이 섞여있는 경우 전기를 통하게 하는 성질이 증가된다. 특히 규소는 이러한 성질이 강해 반도체에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질 때문에 규소가 태양전지 원료로 쓰이고 있다. 태양전지는 빛을 흡수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는 장치로 태양만 있다면 계속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초기 태양전지는 셀레늄을 이용했는데 효율이 1~2%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태양전지 개발은 셀레늄을 실리콘으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1954년 벨연구소가 실리콘 기반의 태양전지를 만들어 효율을 4%까지 끌어올렸다. 태양전지 효율은 계속 좋아지고는 있으나 아직 20%대에 머물러 있다. 
 
태양광 발전의 진화는 이제부터이다. 2002년 이래로 발전효율의 향상과 발전량의 증가가 맞물리면서 2년마다 태양광 전기생산량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3년 후면 세계태양광 시스템 평균가격이 이른바 ‘그리드 패리티’ 곧 태양광 발전단가가 화석연료 발전단가와 같아지는 시점에 진입할 것이라 한다. 
 
더구나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태양광지붕과 태양광도로, 태양호수와 태양광 논밭. 태양광식물공장 등 그 발전 여지는 이루 다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실리콘 기반 광섬유도 개발됐다. 인간이 광섬유 옷을 입고 다니면서 자기가 필요한 전기를 생산할 날도 머지않았다. 
 
미래학자들은 태양광 발전이 향후 전기요금을 제로로 수렴시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마치 그리 비쌌던 국제전화 요금이 이제는 제로로 수렴하듯이. 
 
과연 모래의 축복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7-17 09:35   |  수정일 : 2017-07-1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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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세종대 교수

서울고와 외대 스페인어과를 나와 1978년 KOTRA 입사하다. 이후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무역관 근무를 거쳐, 경남무역관장, 뉴욕무역관부관장, 파나마무역관장, 멕시코무역관장, 마드리드무역관장, 밀라노무역관장을 역임하고 2010년 정년퇴직했다. 배재대학에서 ‘서비스산업의 역사와 미래’, ‘유대인의 창의성’, ‘기업가 정신’을 가르친 바 있으며 현재는 세종대학에서 ‘세종리더십’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32년간 수출전선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부딪치며 그들의 장단점을 눈여겨보았다. 우리 민족의 앞날도 제조업 보다는 그들이 주도하는 서비스산업에 있다고 보고 그는 10년 전부터 유대인 경제사에 천착해 아브라함에서부터 현대의 월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궤적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경제사> 시리즈 10권을 썼다. 그 축약본 <유대인 이야기>가 2013년 초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예스24 네티즌 투표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출간한 <세 종교 이야기>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2년 연속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또 같은 해 화폐금융시리즈 곧 <달러 이야기>, <환율전쟁 이야기>, <월가 이야기>를 동시 출간했다. 최근에는 <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상품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종이책 이외에도 금융산업 등 각종 서비스산업에 대한 이야기와 <한민족 이야기> 등 103권을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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