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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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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미동맹 앞에서 데니 태극기를 다시 생각한다

글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데니 태극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가 전시돼 있다. 등록문화재 제382호인 이 국기는 ‘데니 태극기’라고 불린다. 고종이 외교고문으로 일했던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1838~1900)에게 하사한 태극기다. 오리건주 판사 출신으로 1877년 중국 톈진 주재 영사로 부임한 데니는 1880년 상하이 주재 총영사를 거치며 외교 수완을 발휘해 청나라의 실권자 리홍장(李鴻章)과 친교를 맺었다. 1884년 미국으로 귀국한 데니는 리홍장의 제안으로 고종의 외교고문직을 제안받았다. 1886년 3월 28일 조선에 도착한 데니는 같은 해 4월 9일 조선 조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협상 체결을 처리하기도 했다. 당시 청은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조선 주재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보내면서 노골적으로 조선 내정에 간섭했고, 고종의 폐위까지 획책하기도 했다. 위태로운 조선을 지켜본 데니는 청의 의도와 달리 고종의 외교정책을 적극 지지하면서 조선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청에 미운털이 박히게 된 데니는 1890년 외교고문직을 박탈당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때 고종이 조선을 도운 데니에게 태극기를 감사의 선물로 주었다. 이 태극기는 데니 친척들이 대대로 보관해왔다. 그러다 데니 누나의 손자인 윌리엄 랠스턴이 가족들의 유품을 정리하다 이 태극기를 발견해 1981년 6월 23일 한국에 기증했다.
   
   데니가 외교고문으로 일하던 시절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는 복잡했다. 청은 조선이 속국이라면서 미국과의 수교를 방해했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이 미국 함정을 타고 워싱턴 D.C.로 떠날 때 위안스카이는 영약삼단(另約三端)이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주재국에 가면 먼저 청국 공사관에 알린 뒤 청국 공사와 함께 주재국 외교부를 방문하고, 외교 모임에서는 청국 공사의 아랫자리에 앉고, 문제가 생기면 청국 공사와 합의 처리하라는 치욕적인 명령이었다. 박정양이 청국 공사를 배제하고 스티븐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청하자 위안스카이는 처벌을 요구했다. 고종은 박정양을 국내로 소환했지만 형식적으로 처벌한 뒤 다시 중용했다. 고종의 반청(反淸) 의지를 확인한 데니는 ‘청한론(淸韓論·China and Korea)’이라는 저서를 통해 조선이 청에 속한다는 속방론(屬邦論)을 부정하고 조선의 국제적 지위를 독립국으로 규정하면서 청의 간섭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데니는 위안스카이를 규탄하고 청나라 정부에 소환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11일 제주 서귀포시 해군기지에서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 관함식 해상 사열이 진행됐다. 관함식에 참여한 강습상륙함인 독도함에는 지금의 대한민국 태극기와 함께 데니 태극기가 게양됐다. 미국은 핵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해 4척의 함정을 이번 관함식에 파견했다. 그런데 로널드 레이건호는 반미단체의 반대로 행사 당일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하지 못했다.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와 민주노총, 전교조 회원 200여명은 지난 10일 10일부터 제주해군기지 입구에서 “핵 항모가 제주 바다를 핵으로 오염시킨다”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중 일부는 제주해군기지 앞바다에서 카약을 탄 채 로널드 레이건호 입항을 반대하는 해상 시위를 벌였다. 로널드 레이건호는 행사 당일 해상 사열에만 참가하고 이틀이나 지난 10월 12일에야 제주해군기지로 입항했다. 로널드 레이건호는 그동안 북핵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에 파견됐던 미 해군의 정예 전력이다. 그런데도 반미 시위로 제주해군기지에 입항조차 제대로 못한 것은 한·미동맹에 위험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오웬 니커슨 데니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이 부른 파장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데니 태극기가 상징하듯 오랜 우의(友誼)를 맺어왔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남침으로 벌어진 6·25전쟁 때 가장 먼저 군대를 파병해 한국을 지원한 국가이다. 미군은 3만3686명이 전사하는 등 한국을 수호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한국과 미국은 말 그대로 피로 맺어진 동맹이다. 한·미동맹은 6·25전쟁 이후 양국이 1953년 10월 1일 서명하고, 1954년 11월 18일 발효된 상호방위조약을 바탕으로 유지해온 우호·협력 체제를 말한다. 한국이 지금까지 경제 발전과 평화를 유지해온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견고히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굳건했던 한·미동맹 관계가 최근 들어 문재인 정부의 지나친 친북정책 때문에 금이 가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경한 반대 입장을 천명한 것을 들 수 있다. 강 장관은 지난 10월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24조치를 해제할 용의가 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질문에 “관계부처가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답변이 논란이 되자 강 장관은 “중요한 행정명령인 만큼 지속적으로 (해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고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며 사과까지 했다. 5·24조치는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응해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한 제재를 말한다. 방북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투자 금지, 북한 선박의 한국 해역 운항 불허, 대북 지원사업과 인도적 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을 담고 있다.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5·24조치를 풀어도 실효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5·24조치 해제 검토를 담당 책임자인 통일부 장관도 아닌 외교부 장관이 언급한 것은 말이 안 된다. 5·24조치 해제를 꺼낸 이해찬 대표의 질문도 난데없다. 때문에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여론과 미국을 떠보기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사전에 각본에 따라 질의응답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3번이나 강조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문재인 정부의 한·미동맹 이탈 조짐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우선한 나머지 미국의 핵심 협상카드인 대북제재에 구멍을 낼 우려가 있는 데다, 북한·중국·러시아가 반미 연대를 강화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문재인 정부에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경고를 보낸 셈이다. 미국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 체결된 남북 군사합의서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9월 17일 강 장관에게 전화해 남북 군사합의서 내용과 관련해 40분이나 거칠게 항의했다. 남북 군사합의서 내용은 미군의 활동을 상당히 제약할 수 있다. 군사분계선 상공에 설정한 비행금지 구역만 하더라도 미국의 정찰능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이런 민감한 사안을 충분한 한·미 조율 없이 북한과 덜컥 합의했으니 미국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사항을 남북 정상회담 이틀 전에야 알린 것도 문제다.
   
   
▲ 한국군과 미군 병사들이 연합훈련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미 국방부

   북·중·러 연합전선에는 한마디도 안 하고
   
   강 장관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북한 핵 목록 신고 요구’를 일단 미루는 중재안까지 제시했다. 먼저 영변 핵시설 폐쇄와 종전선언을 맞교환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완성한 ‘현재 핵’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조차 없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발언이다. 강 장관의 중재안을 놓고 청와대는 “새로운 접근법, 창의적 접근법”이라고 치켜세웠다. 강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결정 과정에서 핵심 멤버가 아니다. 그런데도 중재안을 내놓은 것은 청와대 대신 총대를 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4·27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고도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핵 목록에 관한 신고에 대해선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중재안을 내놓은 것에 대해 미국 정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이다.
   
   핵을 완성한 김정은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것은 확고한 한·미의 대북제재 덕분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감싸는 입장을 계속 보인다면 북한 비핵화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했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관광 재개와 같은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국제사회에서 ‘순진한 바보’로 취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칫하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12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어느 정도 단계에 도달하면 그때부터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서서히 완화해나가는 것까지도 진지하게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지금까지 비핵화 조치를 한 것이 쓸모없게 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발사 중단뿐인데도 제재 해제만을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연내 종전선언 채택(판문점선언)과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착공(평양 공동선언)을 북한과 합의한 데 이어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까지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의 반미 3국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북·중·러 3국은 지난 10월 10일 외무차관급 회담을 갖고 대북제재 완화와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에는 △대북제재 완화 공조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해법 △러시아 포함 6자 회담 필요성 등이 담겼다. 북·중·러 3국은 앞으로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하면서 반미 연대를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움직임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는 것은 북·중·러 3국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지난 5월 11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미 국무부

   “한국이 대북제재에 구멍 내고 있다”
   
   워싱턴 조야에는 혈맹인 한국이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에 구멍을 내고 있다는 기류가 역력하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남북관계 개선 속도가 미·북 간 비핵화 협상 속도를 앞질러가고 있다며 한·미동맹 간 대북 인식의 차이를 조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첼 리스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미국과 한국은 현재 북한 문제에 관해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지 않다”며 “두 나라가 북한 문제에 대해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는 입장이 사실로 증명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위협보다는 파트너로 여기는 시각이 강한 것 같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지금 북한이 하는 말에 약간 의심을 더 갖고, 덜 낭만적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매닝 연구원은 “실질적으로 북한 비핵화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제재 완화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북한에 최대 압박을, 한국은 최대 대화를 각각 따로 추구하고 있다”며 한·미동맹 균열을 우려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지금까지 취한 조치는 핵실험 동결 뿐”이라며 “남북경협을 늘릴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제재 해제 움직임을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한국의 은행들을 직접 접촉해 대북제재 준수를 요청한 것은 사실상 한국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경고한 것이다. 미국 재무부가 또 대북제재 명단에 ‘세컨더리 보이콧 위험(secondary sanction risk)’ 문구를 추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3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국이 북한에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북한 쪽으로 너무 기울고 있다는 워싱턴 정계의 우려가 있다”며 “미국 재무부의 한국 은행들에 대한 대북제재 준수 요구는 한국에 강력한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만약 한국 은행들이 북한과의 거래에 관여한다면 해당 은행은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가운데 한국이 최대 압박 정책을 깨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이 거듭 강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티븐 해거드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학 교수는 “최근 한국 정부가 5·24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여러 측면에서 경제협력을 모색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풀려고 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미리 경고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의 첫 외교공관인 옛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을 역대 대통령으로선 처음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공사관 방문은 한·미 양국의 우정과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주미 공사관은 대한제국 시기인 1889년 2월 설치됐지만 1910년 한·일 강제병합 후 일본이 매각했다가 문화재청이 2012년 350만달러에 매입하면서 재개관됐다. 113년 만에 태극기가 다시 걸린 주미 공사관을 방문했던 문 대통령이 말로만 한·미동맹을 강조해선 안 될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0-30 15:38   |  수정일 : 2018-10-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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