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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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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실업률!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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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조선 캡쳐본
8월의 취업자수 증가폭은 3000명, 실업자수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 청년실업률 역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았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8월 취업자 수는 2690만7000명으로 지난해 8월과 비교해 3000명 늘었다. 7월(5000명)과 8월 두달 연속 취업자수 증가폭이 천명대 수준.
  
  경기 성장기에는 취업자수는 1년 전과 비교, 30만명가량 는다. 제조업 취업자수가 10만5000명 줄었고, 도매 및 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취업자수는 각각 12만3000명과 7만9000명 감소했다. 정부 재정이 투입된 공공행정 및 국방, 사회보장행정(2만8000명),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14만4000명) 등의 취업자수만 늘었다.
  
  실업자수는 113만3000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13만4000명 증가했다. 이는 8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136만4000명 이후 최고. 실업자수는 8개월 연속 100만명을 넘었다. 1999년 6월부터 2000년 3월까지 10개월간 이후 18년 만.
  
  통계청은 "30~50대에서 실업자수가 집중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40대에서 4만3000명, 50대에서 3만6000명이 각각 늘었다.
  
  그래도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이란 이름의 對北퍼주기를 하겠다고 판문점 국회비준동의를 추진하는 정권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9-13 09:35   |  수정일 : 2018-09-1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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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月刊朝鮮>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 傳記》(全13권)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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