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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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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 누가 이 아픔에 또 못을 박나

글 |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필자의 다른 기사

▲ / photo by 뉴시스
 “6. 25 전시납북자 가족협의회는 7일에도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민주당 OUT' 등 슬로건을 내걸고 "눈앞에서 끌려간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꾸겠다니, 10만 전쟁납북희생자와 가족들은 피를 토한다"며 "납북자를 데려오진 못할망정 북한의 반(反)인도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민주당은 각성하라"고 촉구했다. ‘펜 앤 마이크’ 기사다.
 
  더불어민주당의 송갑석 등 몇몇 금배지 단 사람들이 ‘납북자’를 ‘실종자’라고 명칭변경을 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납북자 본인들과 그 가족들의 가슴에 북한 납치꾼들이 한 번, 거기다 남쪽의 자칭 ‘진보주자’들이 두 번째로 못을 박은 셈이다. 이유는 ‘납북자’란 호칭을 북한 공산당이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이 싫어하는 용어는 모조리 없애자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나중엔 예컨대 대한민국이란 국명, 자유민주주의, 북한인권이란 용어도 남조선, 부르주아 방종(放縱)민주주의로 바꾸고, 북한 인권이란 말은 사전에서 아예 삭제하는 식으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왜 ‘납북자’란 말을 썼나? 필자는 13~14세 때 어느 부인이 여럿 앞에서 자신의 남편과 꽃 같은 미혼 딸이 6. 25 남침 하에서 우익이란 이유로 어떻게 북으로 끌려갔는지를 단장(斷腸)의 아픔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납북자들은 여기저기 수감됐다가 9. 28 수복 직전에 북으로 끌려갔다. 가족들은 그들이 걸어서 '죽음의 행렬'로 내몰리는 것을 미아리 고개까지 따라가 보았다. "고개를 넘으며 우리 딸이 묶인 두 손을 번쩍 들어보이는 걸 봤어요~~!!!"  미아리 고개의 비극은 1956년에 '단장의 미아리 고개(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란' 애처로운 가요로 발표되었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뜨고 헤메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손 꼭꼭 묶인채로
뒤 돌아보고 또 돌아 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대사)
여보 ! 당신은 지금 어데서 무얼하고 계세요
어린 용구는 오늘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 동지섣달 기나긴 밤
복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얼마나
고생을 하세요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 오세요 네 여보 ! 여보 !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밤 복풍한설 몰아 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하오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 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그로부터 10년 뒤, 필자는 감옥에 가 큰 감방에 6. 25 때 백암산,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을 하다가 잡혀온 남한 출신 좌익 몇 명과 함께 수감되었다. 그들은 공부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어쨌든 북한 편에 선 공산주의자들이었다. 필자는 “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고 의회주의를 전제로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자임하던 20대 대학생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약간 도전적으로 질문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왜 1당 독재를 하느냐? 나는 그건 반대다. 평등을 추구하더라도 언론-출판-결사-양심-신체-종교의 자유는 있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을 납치해 갔나? 내 주변에 그 가족들이 많다”

 그랬더니 그들은 무척 안 좋아 하면서 우물우물하더니 “납치는 아니지”라고 답했다. 자진입북이란 뜻이었다. 대화가 안 되는구나 싶어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한제, 웃기는 것은 서대문 구치소의 점심시간엔 어쩌자고 '단장의 미라리 고개'를 어김없이 스피커로 들려주는 것이었다. 누굴 괴롭히는 것이었을까? 

 그로부터 다시 60년, 필자는 최근 그들이 한 말 그대로 “납북자란 말은 안 된다”는 소리를 명색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에게서 들으며 기가 막혀하고 있다. 북한은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한의 일부가 그들과 똑같은 말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허허, 참.   
 
 이 국회의원들 중엔 권위주의 시절에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진보 아니라 그보다 더 한 걸 하더라도 ‘양심수’에 대해서만은 보수 진보 따질 것 없이 공통의 연민을 가질 법도 하련만, 그들은 공산당에 끌려간 피납자들에 대해서는 그 말을 북한이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실종자’라고 부르겠단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돌덩이처럼 만들었을까? 이데올로기? 증오심? 인간에 대해 정말 환멸을 느끼게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입북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잡혀갈 때부터 부르주아 악질 반동으로 낙인 찍혀 있었으니까.
 
 권위주의 시절에 운동권 활동가들이 많이 잡혀갔는데, 그렇다면 이들도 ‘정치범’이라고 부르지 말고 트럼프 말 맞다나 ‘반역자’ ‘역모 꾼’ ‘세볔 3시에 돌연 새까만 지프차에 실린 채 실종된 자들’이라고 불러도 될까? 필자도 가족이 못 보는 가운데 잡혀간 적이 있다. 그렇다고 당시 당국이 필자를 ‘실종자’로 불렀나? 그러지 않았다. 최소한 ‘구속자’였다. 빵깨나 살았다는 왕년의 정치범치곤 정말 쩨쩨하구먼!!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9-10 09:27   |  수정일 : 2018-09-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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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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