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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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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李承晩)은 호치민(胡志明)보다 더 위대하다. 10배쯤!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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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李承晩), 호치민(胡志明) / photo by 위키피디아
문재인 대통령이 호지명(胡志明)이 살던 집을 찾아가 극찬하였다. 
 
  "베트남을 넘어 전 인류의 위대한 인물", "이 세상의 정치인들이 호치민을 본 받는다면 부패가 없어질 것."
 
  공산독재자를 존경한다니 할 말이 없다.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는 호지명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호지명처럼 전쟁을 부르지도 가난을 부르지도 억압을 부르지도 않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국력(國力) 면에서 베트남보다 10배 정도 더 우월하다. 
 
  신영복, 윤이상, 호지명. 문재인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인물들은 독재자이거나 그 추종자들이다. 그런데 자신을 민주주의자라고 부른다. 그가 말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플로레타리아 독재를 민주주의라고 사칭할 때의 그 민주주의 아닌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홍보 자문역(役)이었던 로버트 올리버가 쓴 책, '이승만'(SYNGMAN RHEE-The Man Behind The Myth. 번역 서정락, 단석연구원)의 마지막 장은 인물평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걸출하였던 위대한 인물 중에서 그는 아마도 가장 덜 알려진 인물일 것이다. 위대한 정치가가 반드시 강대국에서만 배출되는 것은 아니다. 약소민족 중에서도 얼마든지 큰 인물이 나올 수 있다. 이승만은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조직력과 지도력, 그리고 예언자의 비전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올리버는 이승만의 한 숙명(宿命)은 비난을 받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오해(誤解)와 비방을 많이 받은 지도자는 드물다는 것이다. 
 
  <그는 가끔씩 골칫덩어리로 무시되었다. 그의 요구는 거절되었지만 그를 몰아낼 수는 없었다. 그는 거듭 비난 받았지만 그의 정책과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거듭 증명되었다. 그의 주장은 옆으로 밀려버리기가 일쑤였지만 그가 예견한 사건의 논리는 곧 바로 그를 세계적 문제의 한 가운데로 돌려놓곤 하였다.>
 
  올리버는 이승만을 이렇게 규정한다. 
 
  <대한민국의 건국자, 아시아 민주주의 확산의 촉매자, 미국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인이 수호해온 '도덕적 가치 기준'을 극동지역에서 지켜낸 사람.>
 
  올리버는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승만은 그의 친구들보다는 그를 비판해온 이들로부터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라고 썼다. 이승만은 초인적 힘을 지녔다고 평가되기도, 모순덩어리라고 평가되기도 하였다. 올리버는 이승만에 대한 비판이 모순투성이였다고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를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비방하다가 때로는 '미국을 좌지우지한다'느니 '미국을 끌어들였다'고 욕하였다. 이승만처럼 국내외(國內外)로, 공사간(公私間)에 욕을 많이 먹은 이도 드물다는 것이다.
 
  <그는 두 미국 대통령, 두 영국 수상, 두 유엔 사무총장, 그리고 호주 인도 캐나다의 장관급 인사들로부터 우방국 원수(元首)에게 보내는 편지로서는 너무나 날카로운 비판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열렬한 지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는 격렬한 비난을 받는 가운데서도 헌신적이고 충성스러운 지지를 얻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이승만을 욕하는 이들도 그가 초인적 능력을 가졌다는 점은 인정하였다. 특히 국정(國政)의 세부사항까지 파악하고 챙기는 데 놀랄 따름이었다. 
 
  겸손한 권력자
 
  올리버는 이승만에 대한 비판의 수준을 이렇게 비꼬았다. 
 
  <신문과 잡지들은 그를 논할 때 '미 군정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았다'면서 한편으론 '남한에서 美 군정이 실패한 이유는 그의 비협조와 反美(반미)주의 때문이다'고 했다. 그를 '반동분자'라고 욕하다가 갑자기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하였다. 지주(地主)와 자본가를 결속시킨다고 욕하다가 갑자기 일반 대중을 선동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방했다. 그가 테러집단의 독재자처럼 반대파를 용인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이들은 이승만이 국회, 언론, 서구식 교육을 받은 정치인과 사업가들의 줄기찬 반발에 직면하였던 점은 어떻게 이해할까. 그는 충성분자들만 관직에 임명하였다고 비판 받았지만 사실은 각료들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올리버 박사는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비방에 대하여 그를 잘 아는 유명 인사들이 변호를 해주었으므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다. 
 
  올리버는, <이승만의 진면목은 자신의 신념이 세계의 여론이나 최강국의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경우에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물>이란 점이라고 했다. 그는 인기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니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조차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옳은 방향이라고 마음을 정하면 자신과도 타협하지 않고 비판 여론은 아예 무시하였다. 
 
  <그는 역사의 길이라고 믿으면 주저없이 나섰고, 뒤 늦게 좇아오는 이들을 기다렸다. 그는 '위대한 정치적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아야 할 인물이다.>
 
  올리버는 이승만이 위대한 업적과 달리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겸손하고 소박한 어른이었다고 평하였다. 
 
  <술, 담배는 하지 않았지만 수도승처럼 산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좋은 음식과 독서, 그리고 담소를 즐겼고, 애완견을 사랑하였고 낚시 정원 가꾸기, 그리고 서예도 즐겼다. 그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고 국민과 역사가 자신의 편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언제나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았다.>
 
  이승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주의 종'이었다. 부인과 함께 하는 아침 식탁에서 성경 한두 장을 낭독하는 것이 일과(日課)였다고 한다. 기도는 그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신앙을 재확인하는 자극제였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리 거센 비판을 받아도 기도로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들면 최후의 승리를 믿었다. 
 
  올리버는 이 책 마지막 문단에서 이승만의 역사적 역할을 요약하였다. 
 
  <그는 22세에 총리가 된 영국의 윌리엄 피트처럼 단번에 명성을 얻지 않았고, 히틀러처럼 대중선동으로 권력을 잡지도 않았다. 그는 또한 루즈벨트나 처칠처럼 정치적 계단을 끈기 있게 밟아 정상(頂上)에 오르지도 않았다. 그는 동서양의 최고 교육을 자신의 것으로 용해(鎔解)하였다. 그는 위대한 이상(理想)의 추구에 헌신하였고, 때가 이르자 한국인들의 지도자로서뿐 아니라 위기의 시간과 장소에서 全세계 자유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승만은 드골보다 더 위대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서독 수상 콘라드 아데나워를 무척 존경하였다. 그가 서독을 대서양 공동체와 묶어놓은 점과 쇠하지 않은 인간적 활력(活力)을 높게 평가하였다. 1961년에 아데나워가 워싱턴을 방문하였을 때 케네디는 자신이 아데나워의 나이에 대통령이 된다면 그해는 2002년일 것이라고 계산하면서 즐거워하였다. 케네디는 자신의 사후(死後) '1000일간: 백악관의 케네디'라는 명저(名著)를 남기게 되는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2세에게 '아네나워는 드골보다 더 위대하다'고 평하였다. 
 
  '아데나워의 목표는 그의 조국을 초월하는데 드골은 그의 조국을 미화하는 데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승만의 정치철학이 드골보다는 아데나워의 기독교적 신념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드골에 못지 않는 애국심을 가졌으면서도 아데나워처럼 국경을 넘는 보편적 자유의지를 지녔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대인물이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들과 전쟁을 하면서도 민주주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중에도 선거를 하였고, 국회 문을 닫지 않았으며, 언론 검열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전쟁중인 나라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고 동시에 경제도 발전시킬 수 있다는 모범을 보였다. 그는 자기 성공의 희생자였다. 자신이 민주주의를 가르친 학생들의 시위에 스스로 물러났다.
 
  그가 트루먼과 함께 치른 한국전쟁은 국경을 넘어 汎세계적 영향을 끼쳤다. 대만이 살아났고, 일본이 부흥하였으며 서독이 재무장하고, 미국은 국방비를 네 배로 늘리면서 본격적인 대소(對蘇) 군비경쟁을 시작하였고, NATO가 군사동맹기구로 강화되었다. 동서 냉전에서 서방세계가 이기게 되는 틀이 여기서 생겼다. 그런 점에서 이승만은 프랑스의 이익만 생각한 드골보다 아데나워에 더 가깝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더 충실하였고 더 많은 나라들에 더 좋은 영향을 끼쳤다. 이승만은 드골보다 더 위대하였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들은 그런 이승만을 김일성보다 더 미워하고 있다. 흔히 하인(下人)에겐 영웅이 없다고 한다. 영웅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하인(下人)이 하인(下人)이기 때문이다. 
 
  거짓말로 박수를 받는 선동가가 있으면 진실을 말하여 미움을 받는 선지자(先知者)가 있어야 문명(文明)이 유지된다. 미움 받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일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3-26 09:49   |  수정일 : 2018-03-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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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月刊朝鮮>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 傳記》(全13권)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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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곤  ( 2018-03-29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8
문재인이 이승만이나 호치민 발치에도 쫓아갈 수 없다는 것이지, 이승만이나 호치민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문재인이 호치민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해서 호치민을 깍아내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조무라기를 탓하십시오.
김효태  ( 2018-03-27 )  답글보이기 찬성 : 12 반대 : 2
떡잎을 보면 나무를 알수있고 어떤 인물을 존경하는지를 보면 인물 됨됨이를 알수있다고 본다. 자유월남이 패망후 월남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원한을 품고 죽어갔는지 누구보다 똑똑히 목격한자가 호지명 앞에서 그런말을 했다는것이 믿기지 않는다. 김일성의 개인 야욕으로 일으킨 한국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돼었고 미군의 도움으로 보존된 대한민국이 얼마나 못마땅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통일을 이루지못한 잔인한 독재자에게 얼마나 애쟎한 마음으로 생각할지 구시대의 사회주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좌파정권을 이제는 자유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돌아볼때이다. 더 늦어 빈대 몇마리 잡자고 초가삼칸 태우는 일이 이나라에서 제발 일어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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