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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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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이야기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파키스탄의 소년 골프 캐디

※ 필자의 동의를 얻어 페이스북 포스팅을 전재한 것임.

글 |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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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카라치 골프클럽. / 이미지= 트립어드바이저

예전에는 골프를 좋아했다. 정말 잘 치고 싶어 몸도 만들고, 시간 날 때면 30분 차를 달려 300야드 드라이빙 레인지에 가고, 로프트와 라이의 상관 관계를 연구하고, 60도 웨지와 2번 아이언을 백에 넣고 다니곤 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폼은 개판이었고 거리도 방향도 숏게임도 뭐하나 안되었다. 운좋게 89개 딱 한 번.. 그 이후로 한 번도 80대를 쳐본 적이 없다.
 
그러다 파키스탄에 부임했다. 골프장에 갔더니 거기는 5000원에 개인 캐디를 쓸 수 있다. 주차장 한 켠에 누군가 불러주기만 바라는 캐디들이 모여있고 거기서 마음에 드는 친구를 손짓하면 냉큼 달려와 백을 들쳐맨다. 앳된 콧수염에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젊은 친구를 골랐다. 이름이 말릭이던가. 벨트를 구멍 끝까지 졸라매도 허리춤이 헐렁하게 느껴지는 호리호리한 애송이였다. 자기는 스무살이라 주장하는데 다른 캐디들은 코웃음을 치며 18살도 안됐을 거라 한다. 나름 볼도 잘찾고 라이도 잘 봐줘서 몇 번 그 친구를 썼다.
 
어느 날 레인지에서 볼을 치고 있는데 그 녀석을 만났다. 내 스윙을 묵묵히 보고 있더니 어깨턴을 조금만 더 해보라고 코치질을 한다. 어라? 이 녀석 봐라! 골프 칠 줄 아냐고 물어봤더니 안단다. 그럼 함 쳐봐라 그랬더니 티박스 안으로 들어서더니 연습 스윙 한 번 안하고 볼을 후드려 패는데, 폼이 완전히 애덤 스콧이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꿈의 스윙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임팩트가 걸릴 때마다 단조 아이언 특유의 슈팟하고 짝짝 붙는 소리가 난다. 드라이버를 휘두를 때마다 날아가는 볼에서 쉬익 쉭 초음속 비행기 소리가 난다. 볼은 스트레이트, 페이드, 드로우 요구하는대로 궤적을 그린다. 250야드 마지막 푯말을 비거리로 지나면서 말이다.
 
골프를 어디서 배웠냐 물었더니 13살 때부터 레인지에서 볼보이를 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다고 한다. 독일인이 버리고 간 채를 주워서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이 전부 독학으로 배웠다 한다.
재능이었다. 그 호리호리한 몸에서 스윙 한 반 제대로 배운 적 없이 눈썰미로 스윙을 익혀 7번 아이언으로 180 야드를 하이 라이징 궤적으로 똑바로 날릴 정도의 재능이었다.
 
파키스탄이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일당 5천원짜리 캐디로 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이 그에게 준 축복은 위대한 골프선수가 될 수도 있는 재능이었고, 신이 그에게 준 저주는 그를 파키스탄에서 태어나게 한 것이었다.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에서 태어나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친구를 보며 새삼 느꼈다.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 나는 한국이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그걸로 족하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3-21 13:37   |  수정일 : 2018-03-2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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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1996년 제 30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근무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핵안보정상회의 의전과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했다. 2012년 일식 우동에 반해 외무부를 퇴직하고 현재 기리야마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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