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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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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형사사건을 많이 수임한 비결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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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 by 조선DB
칠십대 중반의 원로인 오 변호사와 육십대 중반인 나는 사무실 빌딩 지하의 작은 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옆의 조그만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변호사로서 지나온 세월을 얘기하고 있었다.
  
  “제가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원에서 나올 때 데리고 있던 배석판사들이 전송을 하면서 ‘진정으로 존경합니다. 부장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어요.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의 관계는 평생 끈끈한 인연이 되는 거죠.”
  
  “그런 끈끈함 때문에 전관예우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까?”
  모든 분야의 일들이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게 현실이었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변호사를 개업해서 형사사건을 맡았는데 그 사건을 내 배석을 했던 판사가 담당한 거야. 나로서는 마음이 놓였죠. 모시던 부장이 맡은 사건인데 봐주고 싶지 않겠어요? 사안도 별 게 아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까지 했어요. 그런데 담당판사가 실형을 선고해 버린 거야. 이럴 수가 있나 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더라구. ‘존경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를 연발하던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싶더라구요. 몇날 며칠 밤을 배신감에 분노하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부장판사를 할 때 데리고 있던 그 배석판사에게 강한 인연의 줄이 엮여있어도 재판에서는 가차 없이 연줄을 끊고 판결을 내리라고 했어요. 따지고 보면 그 판사가 내가 가르친 대로 한 거잖아? 난 할 말이 없더라구요.”
  
  오랫동안 변호사 생활을 해 보면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고 해서 무리하게 봐주는 판사는 드물었다. 기준이라는 것과 세상의 눈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 변호사는 변호사를 하면서 특히 형사사건을 많이 했다. 그렇다고 브로커를 사용해서 사건을 유치하는 성품도 아니었다.
  
  “형사사건을 많이 하셨잖아요?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이제 변호사 업무를 접을 때가 된 우리들은 영업비밀을 누설해도 괜찮을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다.
  
  “제 나름대로 비결이 있죠. 제 경우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재능을 부여받은 것 같아요. 싫증을 안내고 끝까지 들어주는 거죠.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요점만 말하라면서 상대방의 말을 툭툭 끊어버리잖아요? 그런 식으로 한다면 사실에 대해서는 사건기록에 다 나와 있는데 뭐 더 할 말이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감옥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정말 중요한 거예요. 나는 끝도 없는 그 얘기들을 다 들어줬어요. 어떤 얘기는 들으면서 나도 같이 울곤 했죠. 그랬더니 오 변호사 같이 함께 울어주는 진짜 인간이 있더라는 소문이 퍼진 거예요. 공감해 준다고 하니까 저에게 사건이 몰리더라구요. 혼자 그 많은 사건을 하다가는 과로로 죽을 정도였어요.”
  
  전관예우보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성품이 그를 성공시킨 원인인 것 같았다. 나이가 들었어도 오 변호사는 맑고 투명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아인슈타인은 인격 없는 전문가는 잘 길들여진 개라고 했다.
  
  정권의 명령에 무리한 수사를 하는 일부 검찰이나 경찰이 그럴지도 모른다. 물라고 하면 무는 훈련받은 개들이 많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가득 들어찬 채 남의 호소를 외면하는 교만한 판사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 그게 바로 인격이 아닐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2-07 09:50   |  수정일 : 2017-12-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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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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