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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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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지낸 탤런트 정한용, “정치? 정말 더러워. 다시는 안 해.”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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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년 전 봄볕이 따뜻하던 날 점심시간 후였다. 같은 빌딩에서 법률사무소를 하는 대학 후배 윤 변호사가 내 방으로 놀러왔었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나아갈 길을 생각해 봤죠. 정치에 뛰어들어 의정단상에서 자기의 포부를 이루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에 가서 보다 전문적인 분야를 파고들어 특별한 변호사가 되고 싶기도 하구요.”
  
  경주마 같이 커온 많은 변호사들은 세상이라는 트랙에서 더 달리고 싶어 했다.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죠. 지금부터 토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의 고전부터 시작해서 문학, 역사, 철학에 관한 책들을 예전 고시공부하듯 이삼십 년 동안 만 권을 읽으면 엄청난 내공을 쌓게 되지 않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 속에서 전구가 환하게 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흥미로 책을 읽었지 진지하게 계획을 세워서 독서를 한 적이 없었다. 정치인이 된다는 욕구의 본질은 남의 위에 올라가 대접을 받고 싶다는 권력욕이었다. 또다른 경주마가 되어 트랙을 달리는 일이다. 변호사로서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 역시 더 돈을 벌고 특별취급을 받겠다는 욕망이 숨어있다. 거기에도 면도날 같은 경쟁이 따라붙는 게 틀림없었다. 독서인이 된다는 건 경주마로 달리던 트랙에서 벗어나 푸른 초원으로 간다는 의미 같았다. 나는 아버지가 보시던 오래된 세계문학전집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다. 확대경을 구입해서 고서를 연구하는 학자처럼 누렇게 변색된 종이 위에 납 활자로 찍힌 깨알 같은 글씨들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국회의원에 당선된 탤런트 출신 정한용이 사무실로 놀러왔다. 중고교 동창이었다. 꿈을 이룬 그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국회의원이 되니까 너무 신나. 노른자위인 재경위로 배정이 됐어. 은행장들이 내 사무실 앞에 줄줄이 고개를 숙이고 늘어섰어. 국정감사를 갔는데 그 교만하던 공무원들이 꼬리를 내리고 눈치를 보는 거야. 내가 한껏 건방을 떨었어. 너무 신나.”
  
  그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래서 정치권력을 잡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시선이 책상위에 놓인 낡은 책 위로 떨어졌다. 시엔키에비치가 쓴 ‘쿼바디스’였다. 두꺼운 표지가 보풀이 일고 누렇게 찌든 종이는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았다.
  
  “이게 뭐야? 죽치고 앉아서 왜 이런 걸 읽어?”
  
  그의 얼굴에 한심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해가 갔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십 년쯤 지난 어느 추운 겨울날 큰 병원의 영안실에 문상을 갔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바로 옆의 영안실 입구에 낯익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내게 변호사가 갈 길을 의논하던 대학후배였다. 그가 죽은 것이다. 그동안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세 번 도전했다가 모두 낙선했다. 그는 그쪽으로 미쳐 있는 것 같았다. 이혼을 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어쩌다 그를 만나면 사는 세상이 다른 것 같았다. 말끝마다 국가와 민족이란 용어가 튀어 나왔었다. 그가 있는 영안실로 들어갔다. 영정사진 뒤에서 그는 서글픈 표정으로 이승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선거에서 떨어지고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는 갑자기 암으로 죽었다고 했다. 그의 영안실은 의외로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세월이 강물같이 흘러갔다.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 예금을 하듯 나름대로 좋은 책을 선정해서 한 권 한 권 영혼 속에 저장해 나갔다. 문학에서 역사로 그리고 철학에서 정신세계 쪽도 섭렵해 보려고 노력했다. 이십 년이 흐르고 삼십 년이 멀지 않았다. 친구들의 모임에서 탤런트인 정한용을 만났다. 그는 다시 천직으로 돌아가 연기에 전념하고 있었다.
  
  “정치 어땠어?”
  내가 물었다.
  
  “정말 더러워. 다시는 안 해.”
  그는 구역질난다는 표정이었다. 사람마다 섭리처럼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연기에 미친 사람은 배역을 맡고 무대에 섰을 때 비를 맞은 식물처럼 생생해진다. 화가는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릴 때 살아있는 걸 실감할 것이다. 자기의 길을 자기에게 들려오는 음악의 박자에 따라 갈 때 가장 편한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닐까. 지난 세월 그런대로 읽어왔던 책들이 나의 영혼의 재산이 된 것 같다. 그 깨달음을 준 죽은 후배에게 감사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2-04 09:36   |  수정일 : 2017-12-0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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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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