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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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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국정원장, "나는 그런 짓 안했어요"

"국정원 직원들도 겉으로는 명령에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정치공작이나 그런 걸 싫어해요."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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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3월 7일 오전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와 헌재 불법사찰의혹과 관련,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16년 뜨거운 폭염이 쏟아지던 팔월 중순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국정원장과 만나기로 한 인터컨티넨털 호텔 정문에 도착했다. 호텔 정문에는 짙게 썬팅을 한 검은색 카니발 세 대가 서 있었다. 눈길이 날카로운 경호요원들이 서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일식당의 예약된 조용한 방으로 갔다.
  
  잠시 후 이병호 국정원장이 방으로 들어왔다. 국정원장과 공무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팔십년대 중반경 이웃에 살면서 같은 교회를 다녔다. 그는 교회 구역장으로 저녁이면 함께 예배를 본 적도 있었다. 국정원 차장과 대사를 마친 그는 15년 이상 힘든 야인생활을 했다. 그때 우연히 그의 소송대리인이 되어 일을 하면서 그의 지난날의 삶과 인격을 가까이 보았었다.
  
  정보기관에서 평생을 보낸 그는 사회생활은 정말 초년생이었다. 허망하게 퇴직금을 사기당했다. 투기나 돈을 늘리기 위한 동기도 아니었다. 법원의 판사는 정보기관에 있던 사람이 속을 리가 있느냐며 빈정거리다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인생의 말년에 돈을 잃고 망연히 사무실 앞거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었다. 그는 보통의 변호사비 정도의 비용도 없었다. 심지어 가족이 걱정을 할까 두려워 소송 자체를 한다는 것도 비밀로 해달라고 하는 성품이었다. 이따금씩 일간지의 칼럼에 그의 글이 실렸다. 정보기관이 바로 가야 한다는 그의 글들이었다. 그가 박근혜 정권에서 칠십대 나이에 갑자기 국정원장이 됐다. 야인시절 나와의 관계를 떠올리고 한번 점심을 먹자는 약속을 하고 뒤늦게 만난 것이다.
  
  “여기 회는 일인분만 하고 나는 소바를 줘요.”
  국정원장이 여종업원에게 주문을 했다. 나는 냉우동을 시켰다.
  
  “야인생활을 하면서 바닥을 치고 있을 때 그래도 엄 변호사하고 얘기하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이병호 국정원장이 말했다.
  
  “나이 드시고 국정원장일 할 만합니까?”
  내가 물었다.
  
  “십오년을 쉬고 있는 나한테 어느 날 대통령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국정원장을 하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민정수석은 청문회에서 걸릴 게 없는냐고 묻고 말이죠. 그렇게 해서 칠십대 나이에 현역으로 복귀를 했죠. 처음 근무하는 석 달 동안은 스트레스가 쌓이고 밤에 잠을 못 자겠더라구. 그러면서 적응을 했지.”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중국은 시진핑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사회주의 국가예요. 또 일본도 겉으로는 민주국가지만 전통적으로 단결력이 강하죠. 그런데 우리는 국민들이 뭉쳐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국가가 세계적으로 큰 소리를 치려면 돈을 많이 풀어야 하는데 이제 그 밑천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북한은 어떻게 보세요?”
  
  “김정은은 정말 나쁜 놈 같아요. 전 국민을 굶어죽게 하면서 혼자서 호의호식하고 정적을 잔인하게 죽이는 전제군주죠. 그런 사람하고 무슨 대화가 되겠어요? 차기 대통령은 안보가 뭔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즈음 북한의 사이버 테러가 아주 심해요. 국내 인터넷에 침입하는 건 물론이고 인터넷 뱅킹까지 교란시킨다니까. 국내에는 간첩이 득시글하죠. 간첩들이 대개 삼성의 핸드폰을 사용해요. 핸드폰은 세계적으로 워낙 여러 회사의 여러 종류이기 때문에 감청이 쉽지 않아요. 한다고 해도 기술개발에 워낙 투자를 많이 해야 하고 말이예요. 그런데 이태리에서 감청하는 기술이 개발됐어요. 이태리에서 해킹하는 회사가 설립되고 세계 각국이 핸드폰 감청은 그 회사에 의뢰하는 시스템이 된 거죠. 그런데 이태리의 그 회사가 거꾸로 해킹을 당했어요. 지금 세계적인 상황이 그래요.”
  
  “요즈음 간첩수사는 어떻게 합니까?”
  “변호사들 때문에 간첩수사를 못하겠어요. 간첩의 모든 증거가 사실 북한에 있는데 변호사들이 하나하나 증거를 트집잡으니까 어떻게 잡겠어요? 얼마 전 북한식당 종업원 열세명이 귀순했는데 북한에서는 납치라고 하는 거예요. 변호사들이 소송을 제기해서 그 사람들한테 귀순했느냐고 물었어요. 귀순이라고 대답했다가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당하는데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어요? 하여튼 우리의 상황이 그래요.”
  
  “국정원의 정치 관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그런 짓 안했어요. 칠십이 넘은 나이에 국정원장직을 끝내고 다른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예요. 그리고 국정원 직원들도 겉으로는 명령에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정치공작이나 그런 걸 싫어해요.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대통령도 그런 걸 지시하지는 못하죠. 많은 직원들의 현역 국정원장이나 대통령에게 절대복종하는 척 해도 그 속은 알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국정원장을 퇴직한 후 특수 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것으로 조사받는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국정원의 특수 활동비가 검찰수사와 언론을 통해 햇볕에 드러나고 있다. 특수 활동비란 첩보전이나 간첩검거의 공작들을 위해 은밀히 사용되는 자금으로 알고 있다. 국내의 각 공안기관은 물론 북한과 대치하는 해외공관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자금이다.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돈이라 철저한 비밀사항으로 되어 왔었다. 이제 정부의 비밀곳간인 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다. 어떤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쓰고 남은 것을 그 비밀금고에 집어넣고 심복을 국정원 간부로 보내 관리하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모르는 척 하면서도 국정원장이 그 돈을 쓰게 만든 대통령도 있다고 한다.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사용될 자금이 엉뚱하게 청와대로 흘러들어가 유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국정원장의 힘의 근거중 하나는 그 자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개혁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그 자금을 세상에 노출시키는 자체가 대통령이 더 이상 비밀금고의 돈을 쓰지 않겠다는 혁명적 의지표현일 수 있다.
  
  이병호 국정원장의 조사 보도를 보고 그를 잘 아는 사람으로써 의견을 올려보았다. 소신 있던 공직자가 휘말려 들어가는 걸 보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올린다. 정보기관의 고유기능이 보존되면서 개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1-13 09:50   |  수정일 : 2017-11-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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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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