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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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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인들은 남한이 보낸 식량을 먹고 김정일에 충성맹세했다!

글 | 이석영 자유북한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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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0일 오전 정부가 지원키로 한 대북 식량차관 40만t 가운데 1천500t을 실은 25t 트럭 60대가 북한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북으로 향하고 있다. /조선DB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려면 김정은과 대화나 협상을 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적 수장을 만나는 것은 물론 단절했던 개성공단도 다시 열겠다던 새 대통령(문재인)에게 북한이 한방 먹였다.
 
북한정권에게 과감한 반격이 아니라 타협을 주장하던 친북성향의 남한 대통령을 김정은이 보란 듯이 배신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5일만에 북한은 신형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형’의 시험발사를 감행했고, 15일 선전매체를 통해 발사성공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도발은 남한대통령이 좌파성향이든 우파성향이든 주도권은 북한 김정은이 잡겠다는 의도이다. 햇볕정책시절이나 강경정책시절이나, 또 김정일 시대나, 김정은 시대의 도발 패턴에는 변함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에 수많은 식량을 퍼부으며 자신이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한 ‘영웅’인 마냥 자처할 때도 서해에서는 연평해전이 있었으며, 그 지원이 오늘날의 핵과 미사일이 되었고 김정은 으로의 세습도 가능케 했다.
 
기자가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김일성 정치대학에서 공부할 때 일이다. 사회주의 진영이던 동구라파 나라들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그 여파로 북한에는 식량배급 중지로 굶어죽는 사람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인민군도 하루 한끼 죽을 공급하던 시기여서 젊은 군인들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탈영과 약탈을 감행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일반군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김일성 정치대학 학생들도 그 시기 탈영을 할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당시 인민무력부(지금의 무력성)와 총정치국에 보고된 1994~1996년 인민군 병사들의 탈영수는 4만을 넘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주민마을을 약탈하고 일부 부대에서는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장까지 한 탈영병들도 있었다.
 
이들속에는 7~8년 군복무를 한 분대장도 있었고, 강건군관학교에서 탈영한 학생은 물론 김일성 정치대학 학생들도 속해있었다. 그 시기 이들이 서로 만나 대열을 형성했다면 북한에 치명적인 타격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1996년 남한(김영삼 전 대통령)에서는 북한의 남포항에 수만톤의 식량을 보냈으며 이는 즉시 북한 전군에 공급되었다. 배부르면 고마움을 모르지만 인간에게 제일 배고플 때 식량 1kg는 천금보다 더 귀하다.
 
식량부족으로 영양실조 군인들이 부대의 20%를 차지하던 시기여서 그들에게 공급된 식량은 곧 김정일에게 충성맹세로 이어졌고, 김일성이 사망한 불과 3년만인 1997년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될 수 있었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시절에도 북한 김정일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긴장완화를 위해 식량과 금품을 바쳤지만 돌아온 것은 오늘날의 핵과 미사일이다.
 
한마디로 한반도의 적화를 꿈꾸는 김정은의 야망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이 시점에서도 개성공단 재개나 김정은과의 타협을 주장한다면 5천만 국민은 물론 북한 2천3백만 국민에게도 배신을 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5-16 09:07   |  수정일 : 2017-05-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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