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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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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주사파(主思派)가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 묻는다

⊙ “연세대 광혜원 건물에서 내가 안희정에게 주체사상 교육” (강길모)
⊙ 고려대 출신 조혁이 만든 반미청년회, 전대협 만들고 KAL 858은 자작극이라는 선전활동 전개
⊙ 헌법재판소, 전대협이 추구했던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해 “북한 대남혁명전략과 거의 모든 점에서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고 판시

이동호
1959년 출생.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 중퇴 /
전대협 연대사업국장 겸 서총련 연대사업국장, 북한민주화포럼 사무국장,
뉴라이트전국연합 조직위원장, 중소기업진흥공단 상임감사, 현 캠페인전략연구원장

글 | 이동호 미래한국 편집위원

 놀라운 속도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지지율이 놀라운 속도로 수직 상승했다. 특히 반기문씨가 대통령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그의 지지율이 하늘 높이 치솟기 시작했다. 갤럽이 2017년 2월 9일 발표한 대선후보 지지도에 따르면 안희정 지사는 일주일 전 조사 시 기록한 10%에서 무려 9%포인트나 수직 상승하여 19%의 지지를 기록하며 단숨에 꿈의 지지율인 20%에 육박했다. 한동안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문재인씨의 지지율을 맹렬한 기세로 추격하고 있다.
 
  연초 여의도 정가의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는 안희정 지사에 대해 “그가 너무 조심스러워 경선을 완주하기 어렵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희정 지사는 2007년 유시민이 중도에 대선 경선을 포기하면서 했던 ‘활주로가 너무 짧았어요’를 빌려 써야 할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조기대선과 (안희정식으로 표현하자면) 선발투수 문재인이 너무 잘 던지는 바람에 몸만 풀다 등판기회를 잡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계는 젊은 도전자 치고는 메시지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다. 조심스러운 다짐과 의지만 있었지 ‘품성’을 뛰어넘는 ‘담대함’이 없었다.”
 
  박성민씨는 안희정 지사의 메시지가 너무 조심스러워 문재인을 압박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한 것이다.
 
  박성민씨의 분석에 이유는 있다. 연초 갤럽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은 3%였다. 문재인씨의 29% 지지도와 비교하기 어려웠다. 그 정도 차이면 추격이 어렵다고 본 그의 분석이 일리가 있었다.
 
 
  보수층까지 흡수하고 있는 안희정
 
  그러나 안희정 지사에게 역전의 기회가 왔다. 반기문씨가 지속적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자 반기문씨를 지지했던 지지자들이 요동쳤다. 현재 안희정 지사가 기록하고 있는 지지율의 상당수는 반기문을 지지하던 충청 유권자들과 중도층에서 이탈한 사람들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반기문씨의 지지층은 두 곳으로 나뉘었다. 반기문씨 지지자들 가운데 충청도 출신과 상대적으로 중도층은 안희정 지사로, 경상도 출신과 보수층은 황교안 권한대행으로 갈라진 것이다. 안 지사는 반기문씨 불출마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2월 9일 갤럽의 조사는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안희정은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에게서 문재인씨 30% 지지 다음으로 25% 지지를 기록하고 있다. 보수층에서는 황교안 권한대행의 24% 지지에 이어 17% 지지를 기록하고 있다. 안희정 지사의 지지층은 중도층과 보수층에서 상대적으로 많다. 즉 반기문 지지층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안희정 지지로 옮겨왔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전체 언론이 모두 안희정 지사를 주목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양상훈 논설주간은 2월 9일 칼럼에서 안희정 지사의 수직 상승을 ‘안희정 현상’으로 불렀다. 그는 “식자층에서 ‘안희정이 괜찮다’는 얘기가 무척 많이 들린다”고 전하고 있다. 양상훈 주간은 ‘안희정 현상’의 비결을 안희정의 보수적 행동에서 찾았다.
 
  “사드 배치 한·미 합의 되돌릴 수 없다” “신뢰할 만한 북의 변화가 있어 국제 제재가 완화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세금 나눠 주는 정치는 답이 아니다” “일할 수 없는 약자에게 우선 복지”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 “세금으로 공무원 늘리는 게 일자리 만드는 것이냐” “(이재용 삼성 부회장 영장 기각에 대해) 무조건 구속하는 것이 사법 정의는 아니다” ….
 
  이런 “안희정 지사의 언급은 정치적 편견에 빠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평소에 하는 평범한 얘기들을 안희정 지사에게서 듣고 식자층이 감동받고 있다”고 양상훈 주간은 말하고 있다. 양상훈 주간이 말한 ‘안희정 현상’은 문재인씨가 너무 왼쪽으로 나갔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안희정 지사에게 느끼는 호감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안희정 지사의 상승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 안정감을 벗어나는 돌출 행동이 없는 한이다.
 
 
  광혜원에서 주사파 교육
 
안희정 지사에게 주사파 교육을 했던 강길모씨.
  과거 주사파 학생조직에서 활동하다 전향한 강길모씨는 2006년 4월 21일 한국발전연구원 초청강연에서 이렇게 증언을 했다.
 
  “반미청년회는, 당시 안기부 수사자료에 보면 1988년 1월 25일에 결성된 주체사상 학생운동 지도조직이라고 되어 있는데, 형식적인 결성은 그때쯤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학생운동의 지하조직 핵심들이 서로 연결하는 커넥션을 갖고 있었고, 그 커넥션은 이미 주사파(主思派)에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반미청년회는 그렇게 각자 학교별로 산개되어 활동하던 주사파 학생운동 리더십들을 총결집한 단체였습니다.
 
  이미 철저하게 주체사상으로 물든 학생운동의 지도역량을 조직적으로 묶어 세워 주체의 혁명역량과 투쟁역량을 더욱 극대화하려는 것이 조직 결성의 목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직 결성 전후로 각 대학별 조직들은 후배양성 교육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연세대학교 교육책으로서, 연세대 내 12개 단과대학에서 대학별로 앞으로 열심히 운동할 가능성과 자질이 있는 학생들을 엄선해서 단계별로 주체사상 교육을 시켰습니다. 강의시간은 주로 새벽 2시부터 4시까지였고, 연세대가 100주년 기념으로 복원했던 광혜원 건물을 자주 이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광혜원은 문화사적지로 복원한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설마 그 기념건축물의 문을 따고 들어가 그 안에서 ‘주체사상 학교’가 운영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정치학교’라는 이름으로 실시된 주체사상 교육에서는, 주체혁명이론과 수령론 (首領論)등을 주로 가르쳤습니다.
 
  그때 가르친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는 다른 곳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반미청년회라는 조직을 통해서 길러졌던 사람들 중에서 현재 대한민국 권력 내부에 포진하고 있는 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많은 분이 알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입니다.”
 
 
  반미청년회는 주사파 조직
 
  강길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주사파 배후 조직인 반미청년회의 핵심 조직원 중 한 명이 안희정 현 충남지사였고, 젊은 시절 안희정 지사는 그에게서 주체의 혁명이론과 수령론을 교육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반미청년회에서 연세대는 투쟁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희정 지사가 연세대 출신인 강길모씨에게 주체사상을 교육받았던 것이다. 강길모씨는 당시 ‘교양지도성원(成員)’이었다. 이런 용어만 봐도 당시 운동권이 얼마나 북한에 경도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강길모씨의 이런 증언은 당시 안기부의 수사발표에서도 사실로 확인된다. 안희정 지사는 대학생 시절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두 번의 옥고를 치른다. 한 번은 고려대 주사파 학생조직인 애국학생회 사건으로 1987년 9월에, 다른 한 번은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1988년 12월에 감옥살이를 한 것이다. 강길모씨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안희정 지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경력은 그가 주사파 핵심 조직원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공안 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에 의하면, 안 지사는 반미청년회 중앙위원 겸 조직책으로 서열 3~4위 정도였다고 한다. 고려대는 반미청년회 내에서 조직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직에 관한 한 그는 조혁 다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하운동의 특성상 조직도를 문건으로 남기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있었던 반미청년회는 주사파, 즉 김일성(金日成)주의 지하조직이었다. 법원은 반미청년회 관련 90노762 판결에서 “반미청년회는 …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확정적 인식하에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을 한 점의 의문 없이 그들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이념을 펴기 위하여 구성됐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또 99노122 판결 등을 통해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고려대 반미청년회 등 민족해방(NL)계열 주사파 학생운동권 지하조직”이라 하여 반미청년회 등이 주사파, 즉 김일성주의 지하조직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사파의 등장과 건대사태
 
  학생운동 내에 주사파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5년 말부터다. 이 시기 김영환을 비롯한 일단의 학생운동 그룹은 북한의 대남혁명론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을 수용하여 이를 학생운동 내에 전파했다. 김영환 등은 서울대에서 1986년 초 주사파 학생운동 배후조직인 구국학생연맹(구학련)을 결성했다. 그 산하에 반(半)합법 투쟁기구인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일명 자민투)를 1986년 4월 발족시켰다. 그 산하에 반전반핵투쟁위원회(반전반핵투위) 등 5개 투쟁위원회를 두었다. 구학련의 투쟁기구인 자민투는 1986년 4월 반전반핵투위를 중심으로 반전반핵투쟁과 전방 군부대 입소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세진·이재호 등이 분신을 감행하였다.
 
  자민투의 선도적인 구호와 투쟁은 당시 학생운동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이를 토대로 자민투는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급속히 장악했다. 구학련은 기관지 《해방선언》을 발행하여, 전체 학생운동에 그들의 혁명론을 파급시켜 나갔다. 주사파 학생조직은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1986년 상반기 투쟁을 통하여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주사파 학생운동 진영은 서울대 구학련을 필두로 연세대의 구국학생동맹, 고려대의 애국학생회 등을 결성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986년 10월 28일 건국대에서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일명 애학투) 결성식을 감행했다. 이것이 공안당국의 대규모 검거선풍을 일으켰던 건대사태다. 건대사태로 구속된 학생만 1290명에 이르렀다. 건대사태로 인해 주사파 학생운동은 큰 타격을 받았다.
 
  구학련 지도부가 1986년 초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과정에 각 대학 간의 비밀연대사업부서가 있었다. 이를 통하여 애학투가 건설될 수 있었다. 각 대학 간의 연대사업부서는 공안당국에 의하여 각 대학 지도부가 철저히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조혁, 반미청년회 결성
 
1987년 8월 19일 충남대에서 열린 전대협 발족식. 주사파 조직인 반미청년회가 배후 조종했다.
  당시 각 대학 간의 연대사업을 담당하던 핵심인물이 고려대 주사파 운동의 리더였던 조혁이다. 고려대 주사파 학생운동 조직은 조혁을 중심으로 각 대학의 잔존세력을 모아 1986년 12월 전국청년학생사상운동추진위원회(일명 전사추위)를 거쳐 1988년 초 반미청년회를 결성했다.
 
  전사추위는 고려대 주사파 잔존세력을 중심으로, 연세대·서강대 등의 주사파 잔존세력을 규합하여 만들어졌다. 전국 10여개 대학 출신 30여 명으로 구성된 중앙지도조직과 서울·수원·영남·호남의 지역을 지도하는 지역지도조직으로 2원화하여 조직을 만들었다. 당시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각 대학별로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과학생회에서 간부들로 활동했다. 이들 중 3~4학년을 중심으로 각 대학 지하지도부를 구성하고, 이들 중 일부를 반미청년회 회원으로 선발, 전국 학생운동을 장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주사파 지하조직인 반미청년회와 전국사상투쟁위원회는 1987년 이후 학생운동을 사실상 배후에서 주도하게 되었다. 지금도 1980년대 학생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약칭 전대협)는 이들의 배후 주동에서 작용해 건설된 조직이다. 전대협의 건설과 이들이 주도한 1987년 6월투쟁의 배후에는 반미청년회가 있었던 것이다.
 
  반미청년회는 의장인 조혁(고려대 노어노문학과 4학년, 제적)을 중심으로 무력부·연락부·선전부·후원부·교양부 등 5개 부서를 두었다. 이외에 의장 직속으로 청년부와 학생부를 따로 두었다.
 
  무력부는 그 밑에 구국결사대 8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은 연세대 김철이 이끌었는데 198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미국문화원 점거농성과 광주 미문화원에 대한 폭탄투척 사건을 벌였다. 선전부는 김일성 주체사상의 전파와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론에 대한 조직원들의 사상무장을 위해 《자주언론》이라는 지하 간행물을 발간하였다.
 
 
  반미청년회, KAL 858 관련 북한 두둔하는 선전활동
 
  반미청년회 산하 선전부가 주도했던 대표적인 선전전(宣傳戰)이 바로 1987년 대선 직전에 북한에 의해 자행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이를 부인한 북한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두둔한 선전활동이다. 북한방송인 구국의소리 방송은 KAL 858기 폭파사건이 남쪽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북한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반미청년회 선전부의 선전매체를 타고 한국의 학생운동에 대대적으로 전파되었다.
 
  이들은 각 대학 대자보를 통해 ‘KAL 858기 사건의 진상’이라는 제목으로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게재했다. 또 기관지를 통해 계속 이러한 북한의 주장을 전파해 나갔다.
 
  교양부는 각 대학별로 정치학교를 운영하면서 혁명지도자를 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앞에서 인용한 강길모씨의 증언이 바로 반미청년회 산하 교양부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강길모씨 증언에 의하면 안희정 지사는 당시 반미청년회 조직원으로 북한의 주체사상과 주체혁명이론, 수령론 등을 학습한 것이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나온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도 반미청년회와 그 하부조직인 전대협의 작품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학생운동은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인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고, 김대중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켜 이들과 학생운동 등 운동권이 연합하는 정부를 구성한다는 전술이었다.
 
 
  반미청년회, 북한 한민전 지령 따라 활동
 
  김대중 지지론에 앞장섰던 반미청년회 의장 조혁은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선거전술이 실패로 끝난 1988년 1월 ‘《자주언론》 편집자 조국’ 명의로 발표한 자기비판서 <나는 노태우 집권을 방조한, 운동가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를 발표했다. 조혁은 이 글에서 1987년 전대협 투쟁의 배후에 반미청년회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어 조혁은 1988년 투쟁을 위하여 “한국민족민주전선이 지령한 노태우 집권의 저지파탄과 단독 올림픽을 저지하는 투쟁에 모든 노력을 다 바쳐 싸울 것을 결의한다”라고 하여 반미청년회의 투쟁이 한민전의 지령에 따르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혁이 언급하고 있는 한국민족민주전선에 대하여 북한대사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한국민족민주전선(일명 한민전)은 1985년 7월 27일 결성된 북한의 대남공작부서 중 하나인 통일전선부 산하의 대남혁명전위대이다. 한민전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설정하고, 남한혁명을 위한 당면 3대 투쟁목표인 반미자주화투쟁, 반파쇼민주화투쟁, 조국통일투쟁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한민전은 북한에 있는 대남 공작부서지만 한국 내에 실재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대남선전선동 활동을 해 오고 있다. 한민전은 대남방송인 구국의소리 방송을 통하여 국내 좌익운동권과 재야운동권을 이념적으로뿐만 아니라 조직투쟁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특히 국내 좌익운동권 중 주사파 운동세력들은 한민전을 ‘남한혁명의 애국적 전위대’로 받들고, 국내 좌익 조직의 상급 조직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한민전이 매 시기 지령하는 투쟁지침을 그대로 수용하여 투쟁해 오고 있다.>
 
  1987년 학생운동을 배후에서 지도한 반미청년회는 북한의 대남공작부서의 지령을 따르는 북한 추종 조직이었다. 그리고 반미청년회가 건설하고 지도한 전대협은 북한 노선을 추종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1987년 8월 전대협 발족 당시의 회칙을 살펴보자.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 회칙 초안
 
  1. 명칭 : 본회의 명칭은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이하 전대협)라고 한다.
 
  2. 목적 : 전대협은 전국 백만 학도의 단결과 통일을 기하며, 민주적 학생자치 활동의 적극 옹호 및 보장과 분단된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의 실현에 기여한다.
 
  1) 외세의 배격과 독재의 종식을 위하여 완전한 민주주의 자주독립 국가의 건설을 위해 헌신한다.
 
  2) 민족과 민중에 근거한 진보적 민주주의의 구현에 기여한다.>

 
 
  전대협, 진보적 민주주의 추구
 
  회칙에서 전대협은 ‘자주·민주·통일’의 실현에 기여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정식화한 대남혁명의 3대투쟁 과제인 반미자주화투쟁, 반독재민주화투쟁, 조국통일촉진투쟁을 말하는 것이다. 더 있다. 2조 3항의 민족과 민중에 근거한 진보적 민주주의 구현에 기여한다는 표현이다.
 
  어디선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바로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해산선고를 받은 ‘통합진보당’의 강령에 있는 내용이 ‘진보적 민주주의’이다. 통진당 간부는 자신들의 내부 모임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는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인용해 보자.
 
 < 피청구인(被請求人) 주도세력은 우리나라를 미국과 외세에 예속된 천민적 자본주의 또는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로 인식하고 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본가 계급의 정권으로서 자본가 내지 특권적 지배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민중을 착취 수탈하고 민중의 주권을 실질적으로 강탈한 구조적 불평등사회로 인식하고 있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민중이 주권을 가지는 민중민주주의 사회로 전환하여야 하는데 민족해방 문제가 선결 과제이므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로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 정부로서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설정하였다. 한편,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데,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 이후 추진할 통일국가의 모습은 과도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거친 사회주의 체제이다. …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이를 기초로 통일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북한을 추종하고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거의 모든 점에서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분명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같다는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라는 뜻이다.
 
  안희정 지사가 소속되었던 반미청년회와 그에 의해 지도된 전대협은 북한의 대남공작부서인 한국민족민주전선의 노선에 따라 한국의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이것이 30년 전 젊은 안희정의 사상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라
 
  현재 안희정 지사가 보이는 행보와 말은 그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에게 의아하다. 현재 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과거 그가 가졌던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북한에 대한 추종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자신의 입으로 말해야 한다. 그가 일개 범부(凡夫)라면 자신의 사상과 역사관을 그의 내면에 그대로 간직한 채 있어도 좋다. 그러나 안희정 지사는 현재 충청남도 지사다. 그리고 이제 그는 한발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꿈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있다. 현재 그의 지지율은 폭등하여 문재인씨를 위협하고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안희정 지사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안희정 지사가 반미청년회에서 활동할 당시 나도 대학과 조직은 다르지만 주사파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반미청년회가 배후에서 만들어 낸 전대협에서 연대사업국장도 지냈다. 때문에 그 시절 주사파 운동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활동했는지를 잘 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로서는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지사의 행보에 대한 민주당 내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나 재야운동권의 대응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 그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경우, 그가 조금만 우(右)클릭하는 듯한 언행을 하면 당내외 할 것 없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아우성을 친다. 반면에 안희정 지사는 문재인 대표보다 더한 언행을 해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이는 과거 반미청년회 등 주사파 조직에서 활동했던 안희정 지사의 운동권 내 위상이 문재인 전 대표에 비해 그만큼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안희정 지사가 현재 보이는 모습이 거짓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진심 어린 성찰의 결과이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안희정 지사에게 현재 자신의 생각이 과거 젊은 시절 자신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철 지난 색깔 공세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는 정치인은 정직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고 그리고 국민들의 이해와 판단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월간조선 2017년 3월호 / 글=이동호 미래한국 편집위원]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02 09:31   |  수정일 : 2017-03-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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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justin choi  ( 2017-03-07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3
일개 도지사와 나라전체를 책임지는 대통령자리는 분명 다른 것이고 그의 국가관을 사전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본인의 신조를 밝히는 것이 어렵다면 이는 그의 정치 성향을 감춘 위장전향일 수 밖에 없고 공산주의와 전쟁을 벌였던 한국국민들이 검증요구를 반대한다는 것은 그 동조자들도 의심스럽다
안타까움  ( 2017-03-04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28
이런 글을 그럴듯하게 쓴 아까운 재능을 가진 집필위원이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댓글다는 사람들이나 옛 탁상공론이나 하던 비현실적인 정치 얘기가 말도 안되게 짜증나서 이 쓰레기 같은 기사에 댓글을 단다. 나는 농수산업에 종사하며 안지사처럼 좋은 정책을 펼쳐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난 개인적으로 알지못하지만 지금의 충남이 좋다. 한데 지금처럼 주사파니 뭐니 하는 되도 않는 주장을 하는 쓰레기들을 보면 니들이 살아봤냐고 말하고 싶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념등등 얘기하는 쓰레기 자식들! 니들의 지식능력 오남용으로 한국이 계속 이모양인거야! 최순실이 아니라 조중동이 감옥가야할 듯! 그리고 안지사 잘 모르면서 헛소리하는 사람들도 그러지마세요.
이견우  ( 2017-03-04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2
안지사의 현재 모습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길...대한민국을 책임질 정치인으로서 정직하게 국민에게 설명해 주길...
오용길  ( 2017-03-02 )  답글보이기 찬성 : 39 반대 : 9
이런 내용은 미 대사관의 정치보고로 미국에 다 보고 된다는 점을 아시길. 안희정이 당선되면 틀림없이 주한 미군을 철수(지휘부만 남기고) 할 것이다.
      답글보이기  안태호  ( 2017-03-02 )  찬성 : 15 반대 : 2
미국에 다 보고되니 이런 말 하지 말라고?
      답글보이기  인타까움  ( 2017-03-04 )  찬성 : 1 반대 : 5
안하면 어쩔꺼예요? 그 땐 안했네? 하면 그만이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글이나 남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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