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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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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결정을 내리라고?

엉터리 영어 써가며 헌재를 협박하는 논설을 읽고

글 |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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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든 외부 논객이든 한국 신문에 논설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꼭 필요하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영어를 몇 마디 넣는 경우가 많다. 자기 글의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인 것 같다. 그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영어가 잘못된 것이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12월31일자에서 고대훈 논설위원의 "헌재, 사법정치를 두려워 말라"는 제하의 글을 읽었다. 그 글에 사법의 정치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란 말이 나온다, 영어를 번역하면 "정치의 사법화"인데 고 위원은 거꾸로 "사법의 정치화"라고 오역했다. 이 영어는, 정치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법원으로 끌고가 판사들이 법에 따라 결정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법보다 판사들의 정치적 의견에 따라 판결하는 것 즉 politicization of judiciary(사법의 정치화)란 뜻으로 고대훈 논설위원은 오해하고 있다. 
 
잘못된 영어까지 넣어 장황하게 쓴 이 글의 욧점은 한 독자가 남긴 댓글 “뭐라고 시부라는 건지…그냥 촛불 보고  알아서 기라는 개소리 같다”가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헌재 판사들은 헌법조항에 집착하지 말고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박대통령의 탄핵을 가결하라는 소리 같다. 다시 말하면 고 논설위원은 사법의 정치화 (politicization of judiciary)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은 3권분립이다. 그런데 사법부가 정치화하면 입법과 행정에도 관여하게 되어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박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파면을 당할 정도로 잘못한 것인지 헌법재판소가 결정하게 된다. 법관들은 촛불시위가 계속될까봐 두려워 탄핵을 인용(가결)해서는 안된다. 오직 헌법정산과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워싱턴에서 조화유
 
* 아래는 고대훈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글 전문이다.
 
 
헌재, ‘사법정치’를 두려워 말라
 
시중에 이런 소문이 떠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퇴임(1월 31일) 전에 탄핵심판에 대한 결론을 내고 싶어 한다.” 헌재 관계자에게 확인해 봤다. “박 소장은 최근에 외부 사람을 절대 안 만난다.”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다는 뉘앙스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박 소장이 명시적으로 임기 중에 끝내자고 한 바는 없다. 하지만 재판관들 사이에는 신속하게 마무리하자는 공감대가 있다”고 전했다. 뭔가 긴박하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탄핵심판은 9명의 재판관 중 6명이 찬성해야 ‘인용’된다. 박 소장이 없어도, 오는 3월 13일 퇴임하는 이정미 재판관이 없어도 법적인 하자는 없다. 그러나 남은 7명 중 2명만 반대해도 ‘기각’되는 사태가 국민에게 용납될까. 9명 모두, 적어도 8명의 재판관이 모여 혼돈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박 소장이 ‘의리의 심판’이든 ‘배신의 심판’이든 매듭짓는 게 원칙적으로 옳다고 본다.
 
시간이 변수다. 그러나 탄핵심판에선 유·무죄를 따지지 않고 대통령이 헌법적 가치를 위배했는지가 관건이다. 헌재의 의지에 따라 시간은 탄력적이라는 얘기다.
 
‘탄핵심판은 재판인가, 정치인가’라는 의문에 그 해답이 있다. “탄핵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의미가 내포된 재판이다”(전종익 서울대 로스쿨 교수). 위법행위가 인정되더라도 ‘중대성(重大性)’이 인정돼야 파면할 수 있다는 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재판(2004년)에서 확립됐다. ‘중대성’이라는 게 뭔가. 고무줄이다. 재판관 개인의 소신과 법리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고도의 정치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재판이 정치적 고려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이인호 중앙대 로스쿨 교수). 정치재판이나 여론재판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은 맞다. 그래도 나는 ‘사법정치’에 무게를 더 두고자 한다.
 
2004년 10월 21일 헌재 대심판정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윤영철 당시 헌재 소장은 “우리나라 수도는 서울이라는 불문(不文)의 관습헌법”을 근거로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을 봉쇄해 버렸다. 5000년 한국 역사에서 고조선의 아사달, 신라의 서라벌, 백제의 웅진과 사비, 고구려의 평양, 발해의 상경용천부는 왜 수도가 안 되는지 여전히 의아하다. 이 결정은 성문헌법에서 근거를 못 찾자 관습헌법을 끌어들인 ‘사법의 정치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기각, 통합진보당 해산 인용(2014년), 친일파재산환수특별법 합헌(2011년)도 사법의 정치화로 설명된다. 당시의 여론조사 결과는 헌재 판단과 놀라운 일치성을 보였다. 국민의 뜻을 반영한 사법의 정치화는 오히려 빛을 발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재의 재판권도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뿐이다. 헌법은 국민과 ‘대화’하며 발전한다. 2006년 은퇴한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사법부와 국민, 그리고 헌법의 역사는 지배와 복종이 아니라 역동적 대화(dynamic dialogue)의 관계”라고 했다. 사법부와 헌법의 존재는 시대정신에 기초한다는 뜻이리라.
 
2017년은 헌재 재판관 9명에게 자신의 법관 인생에서 가장 고뇌와 번민에 찬 날들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의 파면 여부는 대한민국의 운명과 역사를 가름할 위대한 심판이다. 위법의 ‘중대성’을 찾았다면 재판과 정치 사이에서, 시간의 저울질 사이에서 곡예할 이유가 없다. 불합리와 부조리를 거둬내고 상식과 정의가 숨 쉬도록 대한민국을 리셋(reset)하라는 염원에 재판관들은 신속히 응답해야 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1-11 12:26   |  수정일 : 2017-01-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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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조화유 (曺和裕 / W.Y. JOH)

경남 거창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에서 韓美관계사를 연구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도미 전 응시한 TOEFL에서 어휘 및 작문 부문 세계 최고점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흉일”이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1998년 문학작품집 “이것이 정말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이다”를 냈고, 2010년엔 두 번째 작품집 “전쟁과 사랑”을 출간했다.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 “다대포에서 생긴 일”은 한국비평문학회가 “2003년의 문제소설”로 선정하였고, 이 소설을 직접 영어로 다시 쓴 Heaven Knows What Happened at Dadaepo는 amazon.com에서 eBook으로도 나왔다.

미주동포들을 위해 쓴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은 1990년대 조선일보사가 “이것이 미국영어다” 전10권으로 재출간,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 보급되었고,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각각 그 나라 글로 번역 출판되었다. 1996~7년에는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틀담”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씨이저” “왕자와 거지” 등 세계명작을 한영대역 만화로 재구성하여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워싱턴 교외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메일 johbook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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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두  ( 2017-01-14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1
고대훈 p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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