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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장애 아이들의 남다른 이야기

바람인형(Sky Dancer)의 이유 있는 침묵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 입을 다물어버리는 5살 바람인형 아작 이야기

3번 방에서 키 작은 삼총사 중 하나인 아작에게 몰래 바람인형(Sky Dancer)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왔을 때나 이해할 수 없는 뭔가에 마음이 틀어져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어두운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아작은 송풍기 작동이 멈춘 광고용 바람인형(Sky Dancer)처럼 축 쳐져 있다.

그런데 아침 간식으로 초콜릿 바나 쵸코 우유 부은 달달한 시리얼을 먹고 난 뒤, 또는 기분이 말짱할 때의 아작은 송풍기가 힘차게 돌아가는 바람인형(Sky Dancer)처럼 신이 나서 까불고 폴짝거리며 종알종알거린다. 심지어 대담한 말썽을 부리기도 한다.

글 | 박소풍 미국 초등학교 특수학급 보조교사 / 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9-11 12:19

TK(Transitional kindergarten) 아이들인 마키와 레시, 소삐, 잭스를 우르르 몰고 교실에 갔더니 먼저 온 아이들은 다들 알파벳 학습지를 하고 있는데 아작만 혼자 교실 구석을 서성이고 있었다.
담임교사 Ms. K나 다른 보조 교사들이 뭐가 필요한지 물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해도,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물어도 입을 꾹 다문 채 두 손으로 바지 허리춤을 잡고 혼자 교실 구석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그런 아작의 돌발 행동은 이제 3번 방에서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학기 초에 아작은 이런 아이가 왜 특수 학급인 3번 방에 왔을까 싶게 온순하고 규율을 잘 지키며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아이였다.
그런데 한 달 쯤 지난 어느 날 아침, 교실에 들어와서 입 꼭 다물고 한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다가 보물을 못 받는다고 협박을 해도 버텨서 결국 그냥 두고 수업을 하는데 숫자 공부를 시작하니 슬그머니 자기 자리에 앉았다.
 
며칠 뒤, 점심시간에 무료 급식 대상자인 마꼴과 같이 점심 받으러 가자고 아작을 부르는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아작은 교실 구석으로 달려갔다.
그러더니 꼼짝을 하지 않아서 보조 교사 둘이 다가가 양쪽에서 몰아서 붙잡았지만 아작은 온몸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말은 잘 안 하지만 숫자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내가 아작의 점심 번호 카드를 들고 이것이 네 번호니까 네가 들고 가라고 하니 아작은 슬그머니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번호를 읽으며 신이 나서 급식실로 걸어갔다.
아마 자기가 급식 번호 카드를 들고 급식실로 가고 싶었는데 말은 못 하고 교실 구석으로 달려가서 번호 카드 주기를 기다린 모양이다.
 
우리 학교는 학교 간식이나 학교 급식을 먹는 아이들이 직접 시스템에 자기의 급식 번호를 입력하는데 3번 방에서 유일하게 무료급식을 먹는 마꼴과 아작은 그동안 급식담당자가 알아서 입력을 해왔다. 며칠 전부터 번호 입력이 숫자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각자 번호 카드를 만들어 주었는데 아작은 그 번호 카드와 번호 입력 기계를 아주 좋아했다.   
 
처음에는 멀쩡하던 아이가 왜 저렇게 고집쟁이로 변하여 입을 꾹 다문 채 고집을 부리나 싶었는데 잘 살펴보니 그럴 때는 다 아작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아작은 Spanish(스페인어)만 사용하는 가정에서 영어를 거의 못하는 엄마와 살고 있다. 그러니 간단한 문장은 영어로 할 수 있어도 영어로 불만이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인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는데 자기 마음이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할 수 없을 때는 침묵을 선택하는 듯하다.
내가 심리학이나 특수교육 전공자는 아니지만 아마도 아작은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때문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되면 침묵을 선택하여 입을 닫아버리는 것 같다.
 
TK 아이들이 자리에 앉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 알파벳 학습지를 한 장 들고 다가가자 아작은 나를 피해 뒷걸음질을 쳤다.
“아작, 여기 봐봐. 네 이름에 있는 C가 있어.
그러자 아작이 두 손으로 바지 허리춤을 움켜쥐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읽어볼래? 이건 Upper Case C, 이건 Lower Case C
C. I have C.
하더니 학습지를 받았다. 그런데 여전히 한 손으로 바지춤을 잡고 있었다.
“화장실 가고 싶어?
의자에 앉지 않고 한 손으로 학습지를 든 채 쳐다만 보고 있는 아작에게 물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다아작이 별안간 침묵을 선택하기 시작하면서 도통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답답했을 때 손가락 하나는 Yes, 손가락 두 개는 No라며 손가락 신호로 원인을 찾기 위해 스무고개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작은 말은 할 필요가 없으니 괜찮았는지 내 질문에 손가락 신호로 답을 했다. 그다음부터 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손가락 스무고개를 시도했고 꽤 효과가 있었다. 오늘도 손가락 신호를 다시 확인하고 스무고개 질문을 시작했다.
“화장실 가고 싶니? Yes or No?
내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묻자 아작은 허리춤을 잡고 있던 손에서 손가락 두 개를 슬그머니 펴 보였다. 화장실이 아니라면 뭘까? 별안간 뭔가가 머리를 스쳐갔다.
“바지가 커서 불편하니?
그러자 아작의 눈이 커지더니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였다.
“너 바지가 크구나. 안 되겠다. 다른 바지로 갈아입고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 아작의 바지를 갈아입기로 하고 같이 보건실을 향해 걷기 시작하자 아작의 입이 열렸다.
“아작. 바지가 크지?
Yes. They are so big.
허리가 딱 맞는 바지를 입고 교실로 돌아오는 아작은 송풍기가 힘차게 돌아가는 바람인형(Sky Dancer)으로 바뀌어서 까불거렸고 교실에 와서는 자기의 이름의 한 글자인 C를 열심히 썼다.
 
아작과 나는 3번 방에서 영어를 가장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나는 아작의 돌변 행동의 원인을 다른 보조교사들보다 잘 알아채곤 했다. 아마도 말이 안 되니 눈치만 느는 모양이다. 아작이 고집을 부리며 버티기 시작하면 교실의 교사들은 다들 나를 쳐다보곤 했다. 그럴 때 영어 대신 눈치가 늘고 있는 나는 아작의 마음을 곧잘 읽어냈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버티는데 손가락 스무고개도 안 먹히고 이유를 못 찾겠을 때는 나도 난처하다. 그럴 때는 아작의 숫자 사랑을 이용한다. 특별히 숫자를 좋아하는 아작에게 시계를 보여주며 시각을 알려주거나 교실에 있는 시간표의 숫자를 보여주면 아작은 내 꼬임에 넘어가서 내 손을 잡고 졸래졸래 따라왔다.
 
첫 한 달간 너무도 멀쩡했던 것은 어쩌면 5살 짜리에게 아침밥을 챙겨주는 사소한 보살핌도 받기 힘든 아작이 3번 방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3번 방에 적응이 되면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영어가 어려운 아작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때마다 자신만의 의사소통인 고집스러운 침묵을 선택하고 있는 듯하다. 영어는 서툴지만 아이들 마음을 읽는 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빠른지 나의 잔꾀가 그런 아작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 참 다행이다.
 
아침 간식 시간이면 아작은 눈을 반짝이며 급식실로 향한다. 반짝이는 눈으로 무료 간식을 받으러 가는 아작을 보며 무료 스쿨버스를 타고 오는 5살 꼬마가 버스 안에서라도 먹을 수 있는 빵 한 조각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 그 아이의 처지에, 그 가정의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5살 꼬마가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싶을 때면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에, 점점 눈치만 늘고 있는 나는 마음만 아플 뿐이다.
 
그저 바람인형 아작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는 송풍기가 멈춤 없이 계속 돌아가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박소풍 미국 초등학교 특수학급 보조교사 / 작가

미국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들려주는, 가슴 아프지만 소풍같이 두근두근한 "남들과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

등록일 : 2019-09-11 12:19   |  수정일 : 2019-09-1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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