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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

너였어?

글 | 이연숙 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7-1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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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꽃이 피는 거야.”
“파란 꽃이요?”
 
시부모님은 12년 전에 귀농을 하셨다. 원래 농사를 짓던 곳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니 귀농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집을 지어서 입주한 그 곳은 산을 깎아 100평씩으로 전원마을 택지로 조성한 곳이라서 어머니가 농사를 짓는 그 자리는 사실상 정원 용도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밭을 일구려고 땅을 파는데 분명 산을 깎았다는 자리에서 파도 파도 콘크리트 잔해 등 건축 폐기물이 나오더라고 했다. 시부님은 집 주변을 돌아보며 창고도 짓고 마당 수돗가와 장독대를 손수 만들었으며 자투리 나무 조각으로는 스툴이며 테이블을 만들었다. 동갑인 두 분의 나이가 그 때 막 칠십 세였는데 내가 본 중 가장 왕성하고 활기에 찬 모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소출이 영 시원치 않다며 첫해와 두 번째 해를 보낸 후 어머니의 밭에서는 상추 고추며 참깨 들깨 감자 고구마 등 농작물이 제법 모양을 갖춰 생산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는데 지은 농사 갖다 먹는 것이 벅차다고 타박을 하는 것이 몹쓸 짓인 줄 알면서도 김장 때가 되면 손윗동서와 나는 저절로 한 숨이 나왔다.
 
분명 이백 포기를 심었다는 어머니의 밭에서 뽑은 배추를 절여 씻다보면 크고 작고, 속이 차고 빈 것들이 못해도 삼백 포기는 넘었다. 배추 열두 포기면 우리 식구가 일 년을 두고두고 먹는데 삼백포기 김치를 담가야 했다. 그나마 하루 전날 부모님이 뽑아서 절여 놓은 것을 새벽부터 씻어서 속을 넣기만 하면 되는데도 김장을 하고 온 다음날부터 꼬박 일주일 몸살을 앓고는 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소는 평상 바닥에 천막용 비닐을 깔아놓고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버무렸다. 액젓이 몇 통이었는지 고춧가루가 몇 근이 들어갔는지 양을 가늠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도 간이 맞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닭을 키울 때에는 낳아놓은 알을 모았다가, 봄이면 매일 솎아낸 상추를, 여름에는 날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울토마토를 가져가라고 전화를 하셨다. 어떤 때는 남편과 같이 그러다 한 번은 남편 혼자 갔다가 돌아오면 남편 품에 안겨 있는 이것들이 과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인가 싶을 만큼 황당할 때도 있었다. 남편은, 우리 어렸을 때는 고기 없이 상추만 먹었지, 뭐 꼭 상추를 고기랑 먹으란 법 있나? 라고 묻지도 않은 말에 이유를 달아가며 매 끼니 상추쌈을 싸서 먹었다.
 
나는 토마토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매일 토마토를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토마토는 줄지 않았고 플라스틱 통 아래쪽에 물이 고일 무렵이면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버린 적도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토마토 고문이 아닐 수 없었다.
2, 3년 전 부터 부쩍 기력이 떨어진 시모님이 어쩔 수 없이 의사와 자식들의 말을 수긍하여 일을 줄이면서 김장은 각자의 몫이 되었고 감자며 오이도 마트에서 소포장으로 사서 먹게 되었다.
 
지난봄에 시댁에 갔을 때 마당을 둘러보며 어머니와 얘기 중 꽃 축제에 갔다가 화분 사들인 이야기를 했다. 제라늄은 이제 안 사려고 했는데 축제장에 너무 싸게 팔길래 또 샀다고, 그 옆에 있던 수국 빛깔이 너무 예뻐서 사고 보니 집 안에 화분이 제법 늘었다고 말했다.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어머니 얼굴이 꽃 얘기에 화색이 돌았다.

“니가 전에 사줬던 수국이 잘 자랐었는데 마당에 옮겨 심으니까 죽었어.”

나와 어머니는 어느 한 구석 닮은 부분이 없었고 나는 늘 어머니 마음에 차지 않는 며느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내가 드린 선물을 만족했던 적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몇 해 전 어버이날에 드렸던 수국화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것이 지난겨울 혹한에 얼어 죽자 안타깝다는 얘기를 벌써 세 번째 하는 중이다. 

깨밭 가장자리에 줄지어놓은 화분에는 잎만 봐서는 도무지 뭔지 알 수 없는 풀이 심겨 있었다.
“노인정에 갔는데 파란 꽃이 이쁘게 펴서 내가 가져다 심었는데 이렇게 많이 퍼졌어. 너 하나 가져가든가.”
어머니는 플라스틱 화분을 가져다 포기가 많은 화분에서 옮겨 심고는 흙을 꾹꾹 눌렀다.
파란색 꽃이 핀다는 것 말고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식물하나를 베란다 화분걸이에 놓고 때맞춰 물을 주었다.
도라지 꽃인가?
패랭인가?
설마, 델피니움? 스타티스?
알고 있는 오만 파란 꽃을 다 끄집어 올리는 중에도 삐죽삐죽한 풀은 꽃을 피울 생각 따위는 없는 듯 잠잠했다.
드디어 지난 주말, 목마르면 늘어지고 물 주면 꼿꼿해지기만을 반복하던 잎 한가운데에 탱탱한 꽃몽오리가 생겼다.
“우왓! 드디어!”
그리고 월요일, 키만 멀쑥하게 큰 줄기 세 개 위에 나란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꽃이 피었다. 어렸을 때 어느 동네에선가는 여자아이들이 이 꽃을 계란프라이라며 소꿉놀이를 했다는 그, 개망초였다.
“너... 너였어?”
 
어머니 집 개망초는 파란색으로 피었을까? 그 많은 화분중 이 것은 미운오리새끼였던 걸까? 생명력 강한 개망초가 파란색 꽃을 밀어낸 것일까? 허탈한 마음에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무는 와중에도 개망초가 바람에 살살 몸을 흔든다.

‘가만 보니 파란빛이 도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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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연숙 작가

63년생 토끼띠 평범한 주부이자 작가. 2009년 문예지 <좋은수필>로 등단하고 2014년 친정엄마와 가족, 그리고 자신의 성장기를 엮은 에세이 <엄마 덕분입니다>를 출간했다. 에세이 작가에 이어 소설가에 도전하고 있다.

등록일 : 2019-07-15 00:39   |  수정일 : 2019-07-1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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