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이상근의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

부석사관음상 재판, 결연문은 가짜인가?

피고, 1심 판결에 불복 항소이유에서 결연문 진위 제기
탄소연대 측정 등 일본 측에 사실조회 요청, 2년 2개월째 무응답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근거로 판단해야 할 때

글 |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7-12 09:56

▲ 부석시불상 결연문과 복장물
지난 6월 25일, 부석사관음상 인도소송 항소심 변론기일 준비를 위한 조정회의가 대전고등법원에서 열렸다. 회의는 1시간 넘게 진행됐다. 2월 재판부가 교체된 이후 4개월 만이고 2017년 1월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한 지 2년 5개월 만이다. 1심 판결이 9개월 만에 끝났으나 항소심은 오랜 시간이 경과하고 있다.
 
이유는 부석사관음상이 1330년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기록인 ‘결연문’이 가짜 일수도 있다는 피고의 주장 때문이다. 피고는 항소이유서에서 이 사건 불상에서 발견된 결연문의 진위에 대해 ‘고려 말에 작성된 것인지를 입증할 자료가 없다’는 점, ‘따라서 탄소연 측정 등 과학적 측정이 필요하다’는 점과 2014년 문화재청 재감정 조사에 참여한 일부 위원의 위작 주장 등을 인용하여 항소를 제기했다. 이에 재판부는 탄소연대 측정 등 사실조회 요청을 2017년 4월 19일 일본 측에 하였으나 답을 듣지 못한 채 2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사이 불상의 훼손은 더해갔다.
 
부석사관음상 고려시대 발원문의 특징 보여
 
동아대 정은우 교수는 『서일본지역의 고려불상과 부석사 동조관음보살좌상(2013. 동악미술사학 제14호Ⅲ. 부석사 동조관음보살좌상의 내력』 중에서 “결연문은 유형화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구성을 보이는 점에서 일률적인 조선시대와는 다른 전형적인 고려시대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이두식 표현도 남아 있다.”라고 했다.
 
구체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결연문의 내용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그 시작이 ‘남섬부주 고려 서주지역의 부석사’라고 하여 불교식 주소 기입 방식을 정확하게 채택하고 있다. ②‘浮石寺堂主觀音’이라는 명칭에서 관음 독존상을 봉안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이 시기에 등장하는 전각의 주불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③‘결연문’이라는 제목은 발원 목적인 서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불상을 주조하고 ‘영충공양’을 실현하고자 하는 불사한다는 목적을 밝히는 것이다. ④결연문에 나오는 ‘영충공양(永充供養)’은 발원의 목적을 밝힌 것으로 ‘영원하고 충만한 공양’이라는 뜻으로 고려와 북송에서 유행했다.
 
또한 『고려의 성물, 불복장』(정은우·신은재 지음)에는 “부석사 관음보살조상의 조성에는 32명이 참여했다. 보살상의 조성은 보도권인 계진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며, 성씨 소유자는 유석, 전보, 김성, 서환 4명 혹은 김동, 김용을 포함하면 6명 정도로 전체의 18.75%를 차지한다. 한편 승려로 보이는 이들도 있는데, 현일, 심혜, 혜청, 법청, 도청, 환청, 달청 등 7명(계진을 포함하면 8명)은 승려로 판단된다. 이들 14명을 제외한 이들은 해당지역의 하층민 혹은 여성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산 부석사관음상의 눈물』(김경임 저)에는 “부석사 불상의 시주자 32명 중에는 석이(石伊), 악삼(惡三), 시수(豕守)와 같이 성이 없는 천민으로 보이는 이름도 여럿 섞여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불상 결연문은 마을 주민들이 계층 구분 없이 한마음으로 유대를 다짐하며 관음상을 조성하고 봉안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같이 주민들이 평등하게 참여하여 결연을 표방한 것은 고려시대 유행했던 ‘신앙결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부석사 관음상은 1951년 복장물이 발견된 이후 1973년 5월 나가사키 현 유형문화재로 지정, 1974년 『불교예술 95호 쓰시마·이끼의 미술특집』, 1978년 『대마의 미술』 등을 통해 소개됐다. 일본 정부가 일본 학계가 결연문의 위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는 점에서 진위 논란은 항소를 위한 이익 없는 이유일 뿐이다.
 
실제 2014년 문화재청이 진행한 『불상 재감정 조사보고서』의 결연문 진위에 대한 토론에서 덕성여대 최성은 교수는 “결연문의 행간이 너무 넓고 조악하기 때문에 위조 가능성이 있다. 아산 축서사의 목조아미타불좌의 발원문도 행간이 넓고 글씨가 조악하다. 또 서산 문수사 발원문도 조악하기 말도 못한다.”며 위조 가능성을 일축했다.
 
고려 민초들의 신앙결체로 이뤄진 부석사관음상, 지역민이 애환과 닮아 있어
 
따라서 관음상의 결연문의 내용과 같이 1330년 서산 부석사에서 32명이 중생제도와 영충공양 등을 위해 관음상을 조성하고 영원히 부석사에 봉안하기로 했다는 점과 이를 기초로 일본 학계와 일본 정부(나가사키 현)가 문화재로 지정하고 한국에도 소개되어 오랜 시간이 경과한 점, 문화재청 재감정조사에서 불상의 탄소연대가 1155년에서 1260년대로 측정된 점, 구리·주석·납의 3원제 합금으로 수은이 일부 검출된 점에 미루어 고대 전통 금속공예기법인 수은아말감 도금법(대표적으로 백제 금동대향로)을 사용한 점 등으로 보아 결연문의 위조나 불상의 위작 주장은 설자리가 없다. 오히려 피고 대한민국은 당시 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처럼 부석사에 영원히 봉안되어 지역민의 애환을 달래줘야 한다.
 
대마도 등 서일본 지역에는 130여 구의 한국기원 불상이 있지만 부석사불상처럼 기록이 명확한 것이 없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고려 후기 불상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650여 년 만에 귀국한 관음상이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길 기원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등록일 : 2019-07-12 09:56   |  수정일 : 2019-07-12 09:56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NS 로그인
  • 페이스북 로그인
  • 카톡 로그인
  • 조선미디어 통합회원 로그인
  • pub 로그인
댓글을 입력해주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