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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의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

돌아 온 성보, 돌아오지 못한 성보, 경남 고성 옥천사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임진왜란 승병을 일으켜 참화를 겪은 옥천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근거지, 부산대 설립기금으로 15만평 기부
최근 국내외에서 반출당한 성보 반환에 큰 성과 얻었지만 아직 8건 10점 환수 안 돼

글 |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7-03 09:25

▲ 옥천사 성보 유물과 환수 발표하는 원명 스님, 옥천사성보박물관장. 사진=문화유산회복재단.
경남 고성에 있는 옥천사는 신라 676,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남해안 일대를 대표하는 화엄십찰이다. 고려 시대에는 팔만대장경을 교정하였다. 그만큼 내력이 상당하다.
 
임진년 왜군의 조선침략에 맞서 서산대사가 조선팔도승병 총궐기격문을 발표하자 전국에서 승병이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유정스님, 영규스님, 처영스님이다, 이때 옥천사도 승군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정유재란 때에 전소된 참화를 겪는다. 다행히 인조 27년에 재건을 하여 과거의 사세를 회복하였다.
 
옥천사는 경남지역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애국지사 변상태가 활동하면서 조직하고 독립자금을 모은 곳도 옥천사였다. 해방 이후에는 인재양성을 위해 부산대 설립기금으로 15만평의 땅을 기부할 정도로 역사와 흐름에 당당히 함께한 가람이다.
 
역사의 숨결만큼 소중한 문화유산 남겨
 
천년고찰 옥천사에는 남은 문화유산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고려 청동북인 임자명반자를 비롯하여 지장시왕도 등 지정 성보문화재 155136점과 비지정 성보문화재 16178점이 옥천사와 성보박물관에서 보전되고 있다.
 
이 중 많은 성보가 도난 사건 등으로 반출당해 국내외에 떠돌았다. 1999년 대한불교조계종이 발간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에 수록된 옥천사 성보 문화재는 나한상 3, 삼장보살도 3, 영산회상도 1폭이다. 참고로 2017년 문화재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도난문화재는 28천여 점이다. 이 중에 회수된 문화재는 10% 정도이다.
 
최근 국제사회가 취득경위 입증 등 소장자에게 합법적 소유권을 강화하고 기원처와의 협력을 강조하고, 과거 도난품 등이 공개되면서 기원처로의 반환이나 기증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옥천사의 성보 환수는 시사하는 점이 크다

돌아온 성보 시왕도, 나한상, 삼장보살도
 
천만 영화 신과 함께를 보았다면 저승세계의 심판들을 보았을 것이다. 염라대왕을 비롯하여 저승세계를 심판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시왕도이다. 옥천사시왕도는 10폭으로 되어 있는데 제1진광대왕, 2초강대왕 제3송제대왕, 4오관대왕 제5염라대왕 제6변성대왕 제7태산대왕, 8평등대왕, 9도시대왕 제10오도전륜대왕이 있다. 이중 다섯 번째인 염라대왕은 시왕 중의 우두머리이다.
 
1976년 제1진광대왕도와 제2초강대왕도가 도난당했다. 그 후 2016년 파리의 기메박물관에 제2초강대왕도가 나타났다. 박물관은 개인 소장자로부터 구입 전에 도난 여부를 한국 축에 요청하였고 도난품임을 알림으로 기메박물관의 주선으로 소장자와 옥천사의 협의를 통해 유상기증방식으로 환수되었다.
 
17세기 조성된 나한상은 19887구가 도난당했다. 그 후 2014년 국내의 경매 도록에 나온 나한상은 경찰의 수사로 나한상 2구를 되찾았다. 하지만 소장자는 선의취득을 주장하면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도난당한 다른 2구의 나한상은 국내 사립박물관에서 전시되는 것을 발견하여 협상하여 돌려받았다. 미국의 경매시장에 출품된 나한상은 도난품을 확인하고 경매 중지 절차를 거쳐 소장자가 무상기증함으로 환수하였다.
 
옥천사 삼장보살도는 1744(영조 20) 조성된 것을 3폭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폭은 세로 180.5, 가로 127.7. 비단 바탕에 채색되어 있으며 각기 독립된 3폭으로 천장보살도, 지장보살도, 지지보살도로 구성되어 있다. 도난은 1988년에 당했다. 2015년 수선하려고 나온 지장보살도를 발견하고 추적 끝에 소장자인 사립박물관과 협의 끝에 유상기증형태로 환수하였다.
 
옥천사 성보 환수, 기록의 중요성과 환수의지의 중요성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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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도난당한 옥천사 청련암 동종. 사진=문화재청 홈페이지 캡처>
 

1970~80년대 도난당한 옥천사 성보의 환수는 <불교문화재 도난백서>같은 기록물이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조성내력, 출토 및 유통 경로 등을 과거 내력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환수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불교문화재 도난백서>1999년 발간 이후 증보되지 못하고 있어 하루빨리 증보판을 발간해야한다.
 
또한 환수과정은 유물이 처한 상황과 소장자의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난품은 원칙적으로 유통되지 못하고 따라서 선의취득이나 시효취득을 인정하지 않는 영미법과 달리 대륙법 체계를 수용한 한국의 법률로는 원천적 차단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따라서 유물의 처한 상황에 따라 반환, 무상기증, 유상기증(사례), 법률적 대응 등의 방안이 나올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관련 분야와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옥천사는 1999년 성보박물관 개관을 기점으로 그동안 보안 관리에 부족했던 부분을 해소하고 반출 성보의 환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지금도 제1진광대왕도, 대웅전 영산회상도, 나한상 2, 범천상 1, 인왕상 2, 동종 1, 신중도, 후불도 등 810점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경남도 도난문화재는 20196월 현재 835천여 점에 이른다.
 
이를 되찾기 위해선 옥천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경남도와 정부의 뒷받침이 시급하다. 천년의 역사를 지내며 의승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역사적인 가람인 옥천사가 온전한 면모를 회복하는 일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과제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등록일 : 2019-07-03 09:25   |  수정일 : 2019-07-0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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