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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

변호사의 길

글 | 엄상익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6-10 09:27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고교동창한테서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난감한 사건에 휘말려 젊은 변호사를 선임했어. 변호사가 영 성의가 없어. 법원에서 재판이 열린다고 의견서를 미리 써 내라고 통지가 왔는데 안 써 내도 된다는 거야. 그리고 재판날짜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
 
사무적으로 일하는 바쁜 의사가 환자의 고통이나 호소에 둔감하듯 젊은 변호사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재판에 걸린 당사자의 마음은 절실하다.
 
“바쁘다고 해서 내가 억울한 사정을 카톡으로 보냈는데도 열어보지도 않았어. 그러면서 무조건 돈을 주고 합의를 하래. 그래야 정상참작을 받는다고 말하는 거야.”
 
“무슨 사건인데?”
 
“내가 사람을 때린 적이 없어. 그런데 나한테 맞아서 상해를 입었다는 거야. 절대 그건 아니거든. 잘못이 없는데 왜 합의금을 내 차라리 국가에 벌금을 물고 말지.”
 
대충 감을 잡을 것 같았다. 뭔가 그에게는 억울한 점이 있는 것이다. 변호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아픔에 공감해 주는 일이다. 그리고 일단 의뢰인의 시각에서 그 일을 보아주는 것이다. 그 다음은 변호사의 시각에서 현명하게 사건에 대처해야 한다. 법원에 내야 하는 서류도 성의를 바쳐야 하는 그의 작품이다. 33년 전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 나도 그 변호사와 비슷했던 적이 있다.
 
의뢰인이 오면 내 눈으로만 그를 봤다. 법과 판례라는 프레임을 통해서만 판단했다.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불안과 고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단지 돈을 벌게 해주는 고객일 뿐이었다. 빨리 돈을 벌어 해외여행도 가고 상류층 생활에 편입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한 의사가 남긴 글을 읽고 변호사가 가야 하는 길을 알게 됐다. 그 의사가 쓴 글의 내용은 대충이랬다. 가난한 집에서 성장한 그는 어렵게 의사자격증을 땄다. 지금으로 치면 흙수저 출신인 그는 의사가 되어서도 취직할 병원이 없었다. 그는 탄광촌의 의무실로 가게 됐다. 어느 날 그 탄광에서 낙반 사고가 있었다. 그는 암흑 같은 막장으로 내려갔다. 광부 한 사람이 떨어진 바위에 다리가 깔려 있었다. 지하갱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소름 끼치는 소리가 공간을 울리고 머리 위에 박힌 돌이 쏟아져내리기 직전이었다. 그는 지옥 같은 상황에서 광부의 다리를 절단해서 데리고 나와야 살릴 수 있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광부의 다리를 자르고 그 광부를 세상으로 데리고 올라왔다. 그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원망과 저주만 쏟아졌다. 그게 세상이었다. 그가 쫓겨나 다음으로 간 곳은 시골 마을의 작은 의원의 대진의사였다. 그곳에서는 밤중이라도 어떤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왕진을 가야 했다. 비가 퍼붓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 진창길을 한참이나 걸어가서 환자를 보았다. 혼자 사는 임산부를 찾아가 진땀을 흘리며 아이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새벽에 돌아와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시고 쉬려고 할 때 다시 응급환자 가족이 문을 두드리면 그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의원의 노의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다시 젖은 외투를 걸치고 비가 쏟아지는 밤길로 나가게 그게 의사네.”
 
그런 생활을 평생 해온 노 의사의 말이었다. 나는 글 속에 나오는 젊은 의사처럼 변호사로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백 년 전 크로닌이라는 의사 출신 영국 소설가의 ‘인생의 도상에서’라는 작품에 나온 내용이다. 의뢰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변호사는 사건을 맡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등록일 : 2019-06-10 09:27   |  수정일 : 2019-06-0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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