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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의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

외국에 있는 우리문화재 국보, 보물은 얼마나 될까

18만여 점 21개 국가에 소재, 65년 한일문화재협상 등 통해 1만여 점 환수
2019년 기준 국보 4건, 보물21건, 문화재 5건 등 689점 지정
일본정부가 지정한 150여건, 사라진 국새, 어보 등 중요문화재
부여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국보급

글 |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6-03 17:29

▲ / photo by 개성 경천사십층석탑
“우리나라는 외국에 많은 문화재가 있잖아요? 그 중에 국보는 얼마나 있나요?”

얼마 전 고등학교 초청 강연에서 학생이 호기심 가득한 눈방울로 응시하며 물었다.   
 
“글쎄요. 얼마나 될까요? 문화재 감정이나 평가, 지정은 정부가 하는 일이라 정확히 답을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환수한 문화재 사례를 통해서 말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2006년 환수한 조선왕조실록은 국보로 지정되었고 2005년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은 북관대첩비는 북한에서 국보로 지정한 사실이 있어요. 미국에서 반환받은 어보는 보물로 지정되었어요. 이렇게 볼 때 상당수의 중요 문화재가 외국에 있어요”   

조사된 18만여 점 중 10,120점 환수, 30여 건 문화재 지정   
    
한국이 문화재 반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협상에도 인질과 함께 조선의 보물을 돌려받았다고는 하지만 기록을 확인할 수는 없다.   

1876년 일본은 조선과 수교를 맺자 군인은 물론 장사치 등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그 중에도 골동품 상인들도 많았다. 이들은 처음에는 고려청자 등 조선의 도자를 주로 수집, 판매하였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인 골동품 상인을 통해 수집한 고려청자가 2만 점에 이르고 상당수는 일본 왕실이나 고관대작에게 상납하였다고 한다. 

1900년 이후로는 일본인 학자들이 조선의 고적조사를 하면서 문화재 목록을 만들었고 이는 약탈의 수단이 되었다. 귀중한 보물은 왕릉이나 고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조선인에게는 금기시되었던 고분 도굴이 본격화되었고 사찰의 불탑이나 사리탑, 불상 등도 대상이 되었다. 이토 후임인 소네 아라스케 통감은 고문서를 집중적으로 수집하였고 테라우치는 약탈도서로 별도의 문고를 차렸다.   

이처럼 약탈과 반출이 심해지자 조선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반발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성 경천사십층석탑이었다. 일본 궁내대신인 다나카 미쓰아키는 군대를 동원하여 석탑을 조각내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에 대한매일신보는 약탈사실을 보도, 반환을 요구하였고 영국인 베셀과 미국인 헐버트는 다나카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일본에서 조차 반환여론이 일어나자 다나카는 약탈 11년만인 1918년에 반환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진단학회가 중심이 되어 문화재 반환 목록을 작성하였고, 미 군정에도 전달하였다. 1958년 시작된 일본과의 협상에서 한국은 4,400여 점의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였고 일본은 1,400여 점을 ‘인도’하였다. 이때 돌려받은 문화재 중에 국보는 ‘강릉 한송사지 석조 보살좌상’과 ‘ 녹유골호’ 뿐이고,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등 6건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테라우치가 수집해 간 고문서는 경남대로 돌아왔고 경남도 지정 문화재가 되었다. 2014년 오바마대통령이 방한하면서 돌려 준 국새 황제지보 등 3점은 201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2019년 현재 환수문화재 10,120점 중에 지정 문화재는 국보 4건, 보물 21건, 문화재 5건으로 689점이 지정되었다. 이처럼 국보나 보물급의 문화재 환수는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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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한일문화재협정으로 돌아온 국보 제 124호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사진=문화유산회복재단

일본국보 고려불화, 불상, 세계유산 등재된 어보 등 환수 시급한 문화유산  
 
대마도에는 일본 정부가 국보로 지정한 한국기원 문화재가 두 점이 있다. 2012년 한국인이 절도했다가 환부한 ‘신라여래입상(해신신사 소장)’ 과 ‘고려 쇠북(다구두혼신사)’이 있다. 고려 말 왜구에 의한 약탈품이라는 의혹이 있다. ‘신라 연지사종(조구신사 소장)’은 임진왜란 때 약탈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최대 규모의 ‘고려수월관음도(가가미신사 소장)’는 개성 흥천사에서 왜구가 침입하면서 반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정부 지정 국보이다. 이처럼 일본에는 약 150여점의 한국기원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다. 
  
1987년 재미동포 조창수 선생이 조선 왕실어보, 국새 등을 환수한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조선왕실의 국새와 어보, 옥책, 교명 등이 반환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 국새 22과, 대한제국 국새 8과, 어보 45과, 옥책 8책, 교명 4책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어보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국새, 어보 등 조선왕실유물은 보물급 문화재이다.  
 
부여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국보급으로 늦기 전에 환수해야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7세기 백제금동관음상의 환수여부가 뜨거운 논란이다. 대체적으로 백제미술을 대표하며 백제의 미소를 상징되는 걸작으로 1907년 함께 발견된 보살입상이 국보 제293호로 지정된 만큼 환수되면 국보급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소장자와의 협상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관건이다.   

문화재 반환은 국제적인 원칙과 방향, 국내법과 국민여론 등이 중요하다. 하지만 처한 상황이나 시기, 조건, 소장자의 입장에 따라 같은 경우가 없어 언제나 새로운 접근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한 지극한 정성이 출발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등록일 : 2019-06-03 17:29   |  수정일 : 2019-06-04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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