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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

동전 두 잎과 금 한 냥

글 | 엄상익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5-17 09:26

그게 언제였는지 정확한 연도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에 대한 기억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졌다.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잔잔한 감동의 물결만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있다.

내가 변호를 맡은 아이의 누나인 그녀는 일찍 부모를 잃고 남매 둘이서 살았다. 누나가 학교에 가 있을 때면 남동생은 늘 혼자 지내야 했다.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청계천 뒷골목의 허름한 빌딩에 있는 회사의 사원으로 취직을 했다. 회사라고 해야 철 책상 두 세 개와 그 사이에 오래된 비닐소파 하나가 놓여있는 궁색한 사무실이었다. 그녀는 청소도 하고 차도 타고 그 외 허드렛일을 다 맡아하는 자리였다.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간 어느 겨울아침 출근길이었다. 그녀가 육교를 건너고 있는데 그 끝 난간 쪽 계단에 머리가 하얀 노파가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었다.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코트 주머니 속에 있는 오백원짜리 동전 두 개를 만지고 있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갈 차비였다. 그 동전이 없으면 퇴근 후 밤길을 몇 시간 걸어가야 했다. 노파의 팔다리는 죽은 나무껍질 같이 거칠어 보였다. 

그녀는 결국 가지고 있던 동전 두 개를 노파에게 주었다. 그녀가 사무실로 들어가는 삐걱거리는 낡은 나무계단을 올라갈 때였다. 영혼 깊은 곳에서 원인 모를 훈훈한 기운이 솟아올라 자신을 덥혀주는 느낌이 들었다. 표현하기 힘든 처음 맛보는 깊은 쾌감이었다. 그 감정을 맛본 후 그녀는 직장의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매달 천원이나 이천원씩 돈을 보냈다. 비록 되찾을 수는 없지만 은행 대신 하늘에 맡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나뿐인 동생을 공부시키고 먹고 살기 위해 그녀는 결혼도 포기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작은 회사의 직원으로 있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녀는 보따리 무역상을 시작했다. 동대문 시장의 옷들을 중국에 가서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국의 옷을 멕시코에 가서 팔았다. 이따금씩 텔레비전 화면에서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계속 만원씩 이 만원씩 작은 돈을 보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가슴속으로 어떤 기쁨이 퍼지곤 했다.

그녀가 해외로 장사를 간 사이 동생이 싸움을 하다가 상대방을 다치게 해서 구속이 됐다. 그녀는 주위 사람의 소개로 내게 동생의 변호를 의뢰했다. 동생은 누나에게 탄원서를 써서 재판장에게 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왕이면 선행을 했던 사실이 있으면 증빙서류와 함께 자신을 소개하는 과정에 조금 집어넣으라고 권했다.

그녀는 동생 때문에 처음으로 그동안 소액기부가 얼마나 되는지 대충 합계를 내 봤다고 했다. 그 돈은 어느새 억대가 넘는 거액이 되어 있었다. 작은 물방울이 하나하나 떨어져 큰 병을 꽉 채운 것 같아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잔잔한 감동을 받았었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나 잘 사는 것 같았다.

어떤 사회단체 모임에서 포항의 해변가에서 포장마차를 한다는 아주머니를 봤다. 바닷가에서 번데기, 오징어, 떡볶이와 커피를 팔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 매상에서 삼천원씩을 따로 떼어 꾸준히 모은다고 했다. 그 모은 돈으로 금을 한냥 사들고 그 단체에 들고 온 것이다. 그 돈으로 좋은 일에 써달라고 했다.

성경을 보면 예수는 동전 두 잎을 바치는 과부를 보고 부자가 내는 돈보다 그 돈이 더 많다고 하면서 칭찬한다. 불경에서도 가난한 여인이 바치는 등이 부자가 기부하는 등보다 낫다고 한다. 쓰고 남은 걸 주는 게 아니라 꼭 써야할 돈을 남에게 주고 그만큼 고통을 받는 게 진짜 기부인 것인지도 모른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등록일 : 2019-05-17 09:26   |  수정일 : 2019-05-1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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