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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주의자 박동운 교수의 대한민국 가꾸기

[위대한 7인의 정치가 4]마거릿 대처, 구조개혁으로 영국과 세계 시장경제로 바꾸다

<국가와 세계를 바꾼 위대한 7인의 정치가>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세 가지다. 첫째, 나라와 국민은 뒷전에 두고 오로지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 정치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둘째, ‘거꾸로 가는 정책만 고집하여’ 잘 나가는 한국경제를 침몰시키고 있는 현 정부와 청와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경종이란 바로 7인의 정치가들의 위대한 통치철학이다. 셋째, 언젠가 오게 될 통일을 염두에 두고 통일된 한국의 정치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7회에 걸쳐 연재한다.

글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5-13 10:00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1928∼2013)는 총리직을 세 차례 역임하면서 사회주의와 노조파워에 만연(漫然)된 영국을 구조개혁을 추진하여 자유시장국가로 말끔히 바꿔놓았다. 대처의 구조개혁은 세계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 이 공로로, 대처는 초대 총리 로버트 월폴 경부터 현 총리 테레사 메이에 이르기까지 약 300년 동안에 배출된 78명의 영국 총리 가운데 이름 다음에 ‘ism’(주의, 철학)이 붙는 유일한 총리다. 그래서 마거릿 대처의 통치철학은 ‘대처리즘(Thatcherism)’으로 불린다.
 
대처는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신자유주의’ 탄생에도 기여했다. 신자유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정책이다. 1980년대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의 신자유주의 기간에 세계는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좌파들은 신자유주의가 삶을 피폐(疲弊)시켰다고 비난한다. 세계는 지금 신자유주의 체제로 회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대안이 등장하지 않은 데다 구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전환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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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사진=조선DB.

대처는 1992년 9월 고려대 ‘인촌기념강의’에 초청받아 ‘대처주의가 무엇인가?’를 손수 설명했다. 대처는 대처주의에 관해 “첫째, 내 믿음의 뿌리에는 자유가 도덕의 본질이라는 확신이 있다. …. 셋째, 우리는 기업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했다. …. 다섯째, 나는 자유로 인해 무정부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자유는 법에 의해 만들어진다(freedom is the creature of law.)” 등 일곱 가지 내용을 열거했다.
 
대처는 이 같은 신념은 “나의 가족―개인의 존엄성을 믿는 나의 크리스천 가족에 의해서 형성되었다”라고 강조했다. 대처는 ‘사업과 종교와 정치’에 열정을 바친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정치를 배웠다. 대처는 총선에서 승리한 후 1979년 5월 4일 총리관저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뒤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그리고 선거 때 호소한 것은 모두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대처는 자신이 ‘항상 정치에 매료되었다’고 털어놓았다.
 
마거릿의 아버지는 순회재판이 열릴 때마다 시장으로서 판사와 함께 판사석에 앉곤 했다. 마거릿이 16살 때 재판 방청이 가능하게 되자 아버지는 딸을 재판에 초청했다. 그날 마거릿은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1명 뽑는 옥스퍼드대 장학생 시험에 떨어졌는데 어느 단체가 화학을 전공한다면 학비를 보조하겠다고 제안하여 화학도가 되었다. 옥스퍼드대에서 마거릿은 학생회장을 맡아 정치활동에 열중했다. 그녀는 하이에크가 1944년에 쓴 『노예가 되는 길』을 읽고 자유주의·시장경제에 심취했다.
 
마거릿이 화학 공부를 마친 후 정치는 그녀의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갔다. 그녀는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법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런데 법을 공부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런던에서 화학 관련 직장을 얻어 학원(學院)에서 법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거릿은 런던에서 직장을 얻지 못하고 콜체스터의 플라스틱 회사에 취직했다. 콜체스터에서 런던까지는 너무 멀어 런던 학원에 다닐 수 없었다. 마거릿은 법률공부를 잠시 늦추고 콜체스터에 거주하는 동안 그 지방 보수당 지부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에 전념했다. 마거릿의 강한 의지는 결국 그녀를 변호사로 만들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여성이, 정치에 꿈을 갖고 쌍둥이 애까지 가진 여성이, 대학 졸업 후 7년 만에 변호사가 된 것이다.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다
 
마거릿은 대학 졸업 직후 200여 명이 넘는 후보 경쟁을 뚫고 보수당 하원의원에 출마했으나 노동당에 패배했다. 이 과정에서 나이가 11살 위이고 이혼 경력이 있는 데니스 대처와 결혼했다.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대처는 세 번째 도전하여 34세 때 드디어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선거에 참가한 지 10년 만에 꿈을 이루었다.
 
대처는 하원의원에 당선된 지 2년이 지난 1961년에 보수당 해럴드 맥밀런 정부에서 연금 관련 정무차관에 임명되었고, 이어 보수당 에드워드 히스 정부에서 주택공사장관, 연금장관, 재무장관, 연료전력장관, 두 차례의 교육장관, 교통장관을 역임했다.
 
히스 총리는 보수당을 9년 동안 이끌면서 부유층, 지주, 사업가의 이익을 변호하고자 시장경제 정책을 채택했는데, 이 덕분에 1970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히스는 정책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특히 경제정책이 계속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런 사태를 심각하게 본 일부 보수당 의원들은 재빨리 총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히스를 갈아치울 계획이었다.
 
키스 조지프가 보수당 당수 후보로 당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조지프가 말 한마디 잘못한 바람에 스스로 후보를 사퇴해야 했다. 대처는 절망했다.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키스, 만약 당신이 입후보하지 않겠다면 내가 하겠어요.” 우연히 대처는 영국 최초의 보수당 여성 당수가 되었다. 보수당 당수 대처는 예비내각을 구성하여 다음 총선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1979년 5월 3일, 보수당이 총선에 승리하여 마거릿 대처는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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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회의사당과 빅벤 앞. 사진=조선DB.

구조개혁을 추진하여 영국을 시장경제로 바꾸다
 
대처는 1979년 5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집권하면 ‘노조파워를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를 추방하겠다’고 공약했다. 대처는 정권을 잡자마자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첫째, 다섯 차례에 걸친 노동 관련법 제·개정을 통해 노조파워를 완전 무력화시켜 영국을 ‘노조천국’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 과정에서 대처는 ‘법과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했다.

둘째, 대처는 정권을 잡자마자 예산을 과감하게 삭감해가면서 ‘작은 정부’로 가는 길을 닦았다. 이어 대처는 정부 관리방식을 개선하고, 정부의 일하는 틀을 다시 짜서 정부개혁을 추진했다.
 
셋째, 대처는 세금으로 보전되어 정부부채만 가중시키는 공기업을 3단계에 걸쳐 48개나 민영화했다. 민영화된 공기업은 생산성이 증가했고, 고객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했고, 무엇보다도 정부부채를 가중시키지 않았다. 1980년대에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웨덴, 핀란드, 인도네시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중국 등이 ‘민영화 기법’을 배우려고 영국에 요청하자 민영화는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이 결과 대처는 ‘영국을 세계 최초의 민영화 수출 국가’로 만든 통치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넷째, ‘빅뱅’이 되리라던 금융개혁을 추진하여 영국을 금융 중심 국가로 만들었다.
 
다섯째, 친시장적 분배·복지정책을 추진하여 영국병을 치유했다. 대처는 가정의 지불 능력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기초교육과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약 집단에게 자본축적을 통한 재산 획득 기회를 마련해주고, 복지정책 시행에서 개인의 선택을 최대화하고, 복지정책이 시장을 왜곡시키지 않고 근로의욕을 꺾지 않도록 했다.
 
여섯째, 교육에서 평등주의를 추방하고, 교육을 수요자에게 돌려주었다.   
 
‘구조개혁 교과서’가 되어 세계를 시장경제로 바꾸다
 
대처는 구조개혁을 추진하여 성공했다. 대처의 구조개혁은 1984년에 집권한 뉴질랜드의 데이빗 롱이 총리에게, 이어 1987년에 집권한 아일랜드의 찰스 호이 총리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를 지켜본 OECD는 1990년에 《구조개혁의 진전》이라는 보고서를 출간하여 회원국들에게 영국, 뉴질랜드, 아일랜드처럼 구조개혁을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 대처가 추진한 구조개혁은 OECD가 회원국들에게 권고한 ‘구조개혁 교과서’가 되었다. OECD가 권고한 구조개혁의 내용은 9개 항목인데, 이들 항목은 ‘구조개혁이란 경제에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바로 대처가 추진하여 성공한 구조개혁 내용이다.

대처가 추진한 구조개혁은 ‘신자유주의’를 탄생시켰다. ‘신자유주의’란 ‘시장경제’에 새롭게 붙여진 이름이다. 대처는 구조개혁을 추진하여 세계를 시장경제로 바꿔놓았고, 레이건은 ‘작은 정부’를 실현하여 신자유주의 탄생에 기여했다.
 
신자유주의란 마거릿 대처가 ‘큰 정부와 사회주의 정책으로 만연된 영국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꾼 구조개혁 정책’이다. 신자유주의란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정책’인데,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좌파들은 이를 이념이나 사상으로 오해한다. 신자유주의는 경제 개방, 무역자유화, 경쟁 강화, 규제 완화 및 철폐,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경제 정책을 통해 경제체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정책이다.
 
세계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회귀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정부지출 감소 통한 작은 정부 실현, 개인소득세 최고세율 감소 통한 개인의 자유 강화, 법인세 최고세율 감소 통한 기업의 자유 강화’로 가고 있다. OECD 자료는 이에 관한 증거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좌파들은 신자유주의가 소득불평등을 악화시켰다고 보고 대처와 레이건을 혹평한다. 그들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신자유주의는 죽었다’고 외치면서, 금융위기는 ‘탐욕에 빠진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정부 역할이 더욱 강화되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놓고 『4.0 자본주의』를 쓴 칼레츠키는 “좌파들은 시계추를 무려 50년 뒤로 돌려 정부만능, 노조만능의 시대로 돌아가려 한다”고 지적하고, “정부만능의 2.0 자본주의(주: 1930년대부터 대처·레이건 등장까지의 기간)는 현재의 시스템(주: 대처·레이건부터 2008년 금융위기까지의 기간으로 3.0 자본주의)만큼이나 현란하게 부서졌다”며 좌파들의 주장을 일축(一蹴)했다. 좌파들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대안은 등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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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사진=조선DB.

좌파의 ‘신자유주의 비판’은 궤변
 
좌파는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비판하는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표적 좌파 비판자는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일 것 같다. 여기서 나는 장하준 교수를 ‘외국인 교수’로 간주한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번역 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을 출간했다. 제목에서 ‘그들(they)’은 신자유주의자들을 말한다. BBC 방송은 그를 ‘좌파’라고 이름 붙였다.
 
장하준은 저서에서 “자유무역, 자유시장 정책을 사용해서 부자가 된 나라는 과거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며 ‘자유무역,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가 허구(虛構)인양 비판했다. 그러나 세계 제1의 ‘자유시장·자유무역 국가’ 싱가포르는 장하준의 비판이 궤변임을 간단하게 입증한다. 싱가포르는 ‘자유시장·자유무역 정책’으로, 22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 1만→5만 달러대로 진입한 나라이고, 현재 미국을 앞선 세계 초일류국가다. 또 시장경제국가 남한은 1인당 국민소득이 2018년에 3만 달러대에 진입했으나 지구상에서 유일한 사회주의국가 북한은 2017년 667달러를 기록했다. 남한의 발전은 남한이 자유시장·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해서 얻은 결과다. 
 
마거릿 대처가 문재인 정부에 주는 교훈
 
대처는 1992년 ‘인촌기념강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성공의 비결은 기업이라는 한 단어로 나타낼 수 있다(The secret of success is one word―the firm.” 이 말은 기업을 살리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뜻이다. 대처의 구조개혁은 한 마디로, 기업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에 취임하자마자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하게 법인세율을 올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을 부추겼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조는 파워를 더욱 강화하여 기업 활동과 노동시장을 엄청나게 경직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여 저임금 일자리 감소로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현상을 심화시켰다. 실제로 소득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음이 드러났다. 기업 규제가 강화되어 기업 활동이 위축되었다. 문재인 통치 2년 만에 한국경제는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KBS와의 대담에서 ‘한국경제는 잘 되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거꾸로 가는 정책’을 버리고, 마거릿 대처처럼 구조개혁을 추진하여 경제를 살려야 한다. 많은 나라의 선거에서 이슈가 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한국에서는 예외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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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운 저 | 북앤피플 | 420쪽 | 2만 3,000원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1941년 광주 출생, 광주제일고‧전남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업. 美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 받음.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미국에서 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1979)를 읽고 ‘시장경제’에 빠져들었고, ‘시장경제’ 강의를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교수로 인정받고 있다.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적잖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대처리즘: 자유시장경제의 위대한 승리』는 마거릿 대처의 삶과 정치를 연구·정리한 중요한 저작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외에도 ‘자유시장경제가 우리를 잘살게 해준다’는 확신을 갖고, 『좋은 정책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성경과 함께 떠나는 시장경제 여행』, 『노동시장 개혁은 슈뢰더처럼, 대처처럼』 등 자유시장경제를 널리 알리기 위한 책들을 30여 권 집필했으며, 지금도 어느 작업실에서 다음 책 집필에 혼신을 쏟고 있다.

등록일 : 2019-05-13 10:00   |  수정일 : 2019-05-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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