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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트레커 이경섭의 ‘남자의 길’

7일의 봄날, 올레를 걷고 인생을 보았다_7

글 | 이경섭 아마추어 마라토너·트레커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5-01 11:04

드디어 트레킹 마지막 날이다. 시작할 때는 갈 길이 까마득하더니 이젠 아쉬운 맘뿐이다. 출발하며 두 가지 정도 신경이 쓰였다. 하나는 종착점에서 마땅한 숙소를 못 구한 것과 또 하나는 오늘 걸어야 할 오후 일정이다.
 
오늘 일정은 8코스(월평아왜낭목쉼터~대평포구 19.6km)와 9코스(대평포구~화순금모레해수욕장 7.6km)이다. 7코스가 4km정도 남아 8코스 거리까지 더하면 오전에 걷는 길이 거의 24km가 됐다. 여기에 오후 일정인 9코스가 힘들다는 평가가 있어서 고민이다.
 
제주올레 안내에 따르면 올레순환길 21코스 중 난이도 ‘상’인 코스가 2개가 있는데 3-A코스(20.9km)와 9코스(7.6km)다. 오전에 걷는 길이 제법 길고 오늘밤 숙소를 정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난이도 ‘상’ 코스를 가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 얼마나 힘들기에 최단 거리 코스가 난이도 ‘상’일까 싶다. 경험상 험한 오르막 산길은 속도 2km/h정도여서 시간도 신경쓰인다.
 
어제 묵은 게하는 강정마을 내에 있었다. 남매가 운영하는 제법 깨끗한 곳이었는데 두 주인이 꽤나 애주가인 듯 했다. 방해치 않으려고 조용히 먹는 듯 했지만 잠깐 잠이 깬 새벽 1시가 넘어서도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개인 사생활을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보통의 게하는 10시 이후 소등한다. 게하 주인의 이런 생활패턴 때문인지 조식 제공도 9시다. 

오늘 일정이 제법 바빠 8시 조식 제공이어도 고민할 상황에 9시는 맞지 않는다. 아침식사는 가는 도중 식당을 이용하겠다고 생각했다. 새벽 어둠이 가실 때쯤 출발하려 조용히 현관을 나와 의자에 앉아 신발 끈을 매는데 엉덩이가 이상하다. 고약한 냄새와 함께 토사물이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들어가 화장실에서 하의와 속옷까지 세탁을 하고 축축한 옷으로 출발하는데 분이 안 풀린다. 게하에 대하여 길게 글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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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스러운 나의 마음을 넓혀준 망망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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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라는 약천사. 대웅전불상도 최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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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규모의 주상절리대는 관람이 무료다.

오늘 일정을 시작한다. 식사를 안했으나 크게 허기가 느껴지지도 않고 차라리 몸이 가볍다. 금방 해평포구 쪽의 바다로 나오니 찜찜했던 기분도 젖은 옷도 다 좋아졌다. 넓은 바다를 보니 옹졸한 나의 맘도 넓어졌는지 금방 잊어진다.
 
포구를 지나서 7코스 종착점인 월평마을이다. 기분 좋게 스탬프에 날인한다. 갈 길이 멀다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마음은 여유롭다. 마지막 날이어선지 더 힘이 나고 아쉬움만 커진다. 8코스 들어 얼마 안 가서 약천사다. 동양 최대 규모라 한다. 우리나라 종교시설 중 동양 최대, 세계 최대 같은 걸 많이 들었다. 종교가 금전, 명성 등 세속적인 것과 멀리 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교직자나 신도들은 아닌 모양이다. 물론 개인 생각이다.
 
약천사를 지나 이국적 모습인 야자수 길을 지났다. 유명한 주상절리가 보인다. 해안을 따라 있는 대포 주상절리는 어제 지나온 정방폭포처럼 유료입장이다. ‘이러다 한라산 백록담 조망도 유료화하진 않겠지’하며 혼자 웃는다. 주상절리 매표소 앞은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명성만큼 관광객들로 가득이다. 중간 스탬프 날인 후 관광지와 휴게소에 꼭 있는 핫도그가 늦은 아침을 대신한 간식이다.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늘 핫도그를 먹는다. 나의 소울 푸드다. 분잡한 이곳을 종종걸음으로 벗어난다.
 
중문지역이다. 중문 온 지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최소 세 번 이상은 온 것 같다. 처음이 신혼여행이었다. 전에야 관광으로 왔으니 점만 찍었다. 걸으며 중간 중간 예전 생각이 났다. 여러 호텔과 컨벤션 센터를 지나 중문 색달해수욕장, 하얏트 리젠시호텔이 보인다. 오래 전에 가족들과 왔었다. 하얏트 말고도 이 주변에 묵은 숙소가 몇 곳 있다. 신라호텔이 그랬고 앞쪽에 (명칭이 정확치는 않지만) 그린호텔인가가 있다.
 
지금 이 길을 걸으며 예전을 기억해보니 사는 게 어찌 점점 뒤로 가는가 싶다. 그래도 그때가 부럽지 않다. 생각이 달라졌을 뿐이다.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와도 저런 호텔에서 안 묵을 것 같다. 이 지역을 지나면서 뜻밖에 추억여행이 되고 있다. 맥도날드가 보인다. 아침식사 메뉴는 햄버거 세트다. 걸은 길을 검색해 보니 8코스의 반 이상은 지난 것 같다. 앞으로 2~3시간이면 오전 일정을 마무리 할 것 같다.
 
식사 후 생태공원을 지나는데 제주도의 공원들은 대체로 잘 꾸며졌음에도 이용객이 안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전세 낸 듯 공원을 지나 다시 바다조망길이고 등대와 포구를 지나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오전 종착점이 가까워진 것. 거의 다 와서 잘 지어진 백색의 커다란 건축물이 보이는데 놀랍게도 피자집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피자집은 서울에서도 본 적이 없다. 지나서는 8코스 종착점인 대평포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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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조망되는 곳이 한라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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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산방산이 보이고 오후 일정 9코스 시작점에 있는 박수기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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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어느 피자집보다 큰 규모의 피자집이다.

조금 늦은 점심이다. 식사 후 트레킹 7일의 대미를 장식할 9코스다. 시작점에서 올레꾼 한 분을 만났는데 서귀포에 숙소를 정해 두고 그날 그날 갈 곳을 정해서 걷고 있단다. 오늘은 9코스를 걸으려 버스를 타고 와서 나를 만났다고 한다. 동행하기를 원하는데 나는 점심을 먹어야 해서 양해를 구했다. 이분은 나중에 다시 만나 나의 숙소를 해결해줬다.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 결의를 다지는 마음으로 힘을 내어 본다. 얼마나 힘들기에 8km가 안 되는 코스 난이도가 ‘상’일까? 투지가 타오른다. 신발끈을 다잡아 매고 스틱까지 준비했다. 출발하면서 전면에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주상절벽이 있는데 바가지로 마실 샘물이 솟는다는 뜻을 가진 박수기정이다. 옆쪽으로 제법 급경사의 길이다. ‘아, 이래서 힘들다 했었나’ 하는데 잠깐 올라 바로 능선길이다. 제주 오름이 다 이랬는데 난이도 때문에 내가 너무 과하게 생각한 듯하다. 이후로도 계속 길이 평탄해 어제부터 노심초사한 내 맘이 너무 허탈할 지경이다. 동네 언덕보다 조금 힘든 평범한 산책용 동네 뒷산이다.
 
2시에 시작하여 엄청난 각오로 시작한 난이도 ‘상’의 9코스는 2시간 반 만에 싱겁게 끝났다. 트레킹의 마지막이 너무 허탈하게 끝을 맺었다. 9코스 시작점에 만난 분을 도중에 만나 마지막을 같이 했다. 7일간 거의 혼자 걷다 마지막이 돼 동행자를 만난 거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9코스 종착점을 지나버려 다시 돌아오는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예상 시간보다는 빨리 도착했다. 동행자가 막걸리 한잔으로 트레킹 마무리를 축하해줬다. 숙소를 못 구해 고민이라 하니 트레킹을 마무리 지었으니 여기보다 서귀포 제주올레여행자센터를 추천해 준다. 거기서 하루 묵는 것이 의미 있지 않느냐는데 맞는 이야기다. 바로 전화 예약을 한다. 동행자는 오늘 서귀포에서 봄맞이 축제가 있으니 잠깐 구경하고 술 한 잔을 하자는데 생면부지의 사람과 술자리는 불편하다. 축제까지만 같이 하고 숙소에서 일찍 쉬는 걸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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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레낭길을 지나며 산방산이 가까이 조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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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코스 종착점이자 이번 트레킹의 종착점인 화순금모레해수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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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끝내고 서귀포에 와서 이중섭 거주지가 있던 공원에서 봄맞이 축제 공연을 즐겼다. 간단한 저녁도 제공해줘서 맛있게 먹었다.

7일간의 트레킹을 무탈하게 잘 끝냈다. 너무 아쉽다. 이리 계속 걸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강해졌지만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올 가을을 기약한다. 그때 다시 마무리를 할 거다. 아쉬운 마음을 다음이 있다는 희망을 스스로에게 한다. 내일 마지막 귀가 길에 한 코스라도 더 끝내고 싶지만 그냥 편하게 접기로 한다. 오늘만 살 것도 아니다.
 
9코스 끝나고 그동안 잘 가지고 다녔던 스틱을 분실했다. 마지막 식당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 전화를 했으나 없었다. 안내센터 직원이 스탬프 확인 자리에 둔 내 스틱을 보관중이라고 이야기해줬다. 다음날 아침 서귀포에서 다시 9코스 종점인 화순금해변을 경유해 제주공항으로 가니 시간이 자로 잰 듯 딱 떨어진다. 7일간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행복을 느꼈으면 한다. 명소만 찾아서 보는 것은 재미가 없다. 평범 속에 비범이 있는 거니까.
 

제주 올레 트레킹 7일차
기록
| 53,968보, 39.49km
경비 | 37,400원
아침(햄버거세트) 4,900원
점심(새우떡뽁이외) 7,500원
저녁(축제장)
숙박 25,000원

제주 올레 8박 9일 트레킹 개요
기간
| 3월 15일~3월 23일
총경비 | 485,300원 (버스비 제외)
7일 트레킹 기간 숙식비 외 326,000원
항공료 114,000원
패스포트 구입비 20,000원
트레킹 전일, 귀가일 숙식비 등 25,300원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경섭 아마추어 마라토너·트레커

수십 년간 마라톤과 수영으로 체력을 다진 아마추어 트레커. 걷고 뛰기를 좋아해 매년 3~4회씩 국내외 트레킹 코스에 도전하고 있다.

등록일 : 2019-05-01 11:04   |  수정일 : 2019-05-0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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